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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 수집가 Jul 07. 2023

사소한 것들은 대체로 기억된다

중요하지도 인상 깊지도 않은 시절 인연들의 흔적

20여 분의 드라이브가 필요한 퇴근 길, 중심가를 조금 벗어난 고가도로는 차가 거의 없어서 저절로 속력이 붙는 길이다. 차선을 변경할 때면 그래도 사이드 미러로 룸 미러로 앞 뒤 옆 차선의 상황을 살피는데, 갑자기 불현듯 어떤 사람의 말 한 마디가 떠오른다.

'우리 와이프는 차선 변경할 때 꼭 룸 미러만 본다니까. 내가 그렇게도 사이드 미러로 확인하는 거라고 말을 해도 듣지를 않아.'


그건 연락이 끊긴지가 십 수년이 되어가는 어느 직장 동료의 말이었다. 나는 당황스럽다. 나는 왜 그 말을 기억하고 있단 말인가.

그러나 희한한 일이다. 어떤 장소마다, 어떤 사물마다 떠올리게 되는 어떤 말들이 있으니 말이다. 이를테면,


"난 사무실 전화기를 물티슈로 닦는 사람은 박 선생이 처음이야."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은 젓가락을 하도 짧게 잡아서 늘 음식이 손에 닿곤 했어."


문제는 그 말들은 중요하지도 인상 깊지도 않으며 그 말을 했던 사람도 이젠 더 이상 의미가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그저 한때는 꽤 친밀했겠지만 더 이상 연락을 하지 않는 시절 인연들이 남긴 세포 속의 기억은 그것을 떠올린 나조차 의아하도록 맥락이, 없다.


오늘 기억해야 할 것 한 가지


이럴 때면 문득 걱정되는 게 있다.

나 아닌 누군가도 무맥락으로 소환되는 나에 관한 자잘한 기억들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언제나 최선을 다해 진심을 사용해 말을 하지는 않고 나도 마찬가지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내뱉은 말들이 누군가의 뇌리에 아무런 이유 없이 남아 그 어떤 시간과 장소와 사물과 함께 소환되어 버린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든 일. 십 수년 전의 시절 인연이었던 그 직장 동료도 자기가 투덜하듯 와이프의 운전 습관에 대해 한 마디 한 것을 내가 주기적으로 떠올리고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기억되는 사소한 것들은 대체로 잊혀지지도 않는다. 이유가 없이 기억된 것이므로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대신 오늘은 기억해야겠다.

내가 뱉은 중요하지도 인상깊지도 않은 말이 누군가에게 기억되고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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