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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 수집가 Jan 23. 2024

시쳇말(時體말), 무섭거나 으스스한 것과는 상관없는

시쳇말(時體말)

뭔가 오싹한 느낌의 단어, 시쳇말(時體말)


이 단어를 처음 듣거나 보았을 때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무언가 좀 으스스한 것을 떠올리지는 않으셨나요? 단어가 주는 어감과 예스러운 느낌 때문인지 현대 언어생활에서 아주 자주 쓰인다고는 할 수 없지만 글을 읽다 보면 가끔 나오는 표현입니다. 죽은 몸과는 전혀 상관없는 단어 시쳇말, 그 뜻을 알아보겠습니다.    

 

● 시쳇말(時體말): 그 시대에 유행하는 말.

[예] 그들이 왜 그렇게 서둘러 결혼했는지 아십니까? 시쳇말로 속도위반을 조금이라도 가리려고 그랬던 겁니다.     


‘시체(時體) + 말’의 구성으로 ‘ㅁ’ 앞에 ‘ㄴ’ 소리가 덧나므로 사이시옷을 받쳐 적습니다. 발음은 [시첸말]이라고 합니다. 단어의 형태 때문에 흔히 시체(屍體), 즉 주검, 송장을 떠올리게 되지만 일단 한자어부터 다릅니다. 시쳇말은 ‘때 시(時)’와 ‘몸 체(體)’로 구성된 단어로 ‘그 시대의 풍습과 유행’이라는 뜻의 ‘시체(時體)’에서 파생된 말이지요. 즉 시체(時體)는 유행이고, 시쳇말은 유행어, 요샛말이지요. 죽은 몸을 의미하는 시체와는 반대로 ‘아주 활발히 사용되고 있는 요즘의 말’을 가리킨다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그래서 이 표현 뒤에는 요즘 많이 쓰이는 유행어나 속된 표현들이 뒤따라 옵니다. 또한 유행어나 요샛말이라는 단어가 단독으로 쓰이는 것과는 달리 이 단어는 거의 ‘시쳇말로’의 형태로 쓰인다는 것도 함께 알아두면 좋겠습니다. 다음에 제시된 표제에서 ‘시쳇말로’ 다음에 오는 단어들에 주목해 보세요.    

      

시쳇말 국방부 시계마냥 촬영 현장의 시계 또한 어김없이 돌아간다.

(파이낸셜뉴스, 2023. 9. 15.)

대통령 수카르노는 시쳇말 바지사장에 가까웠다.

(한겨레21, 2023. 9. 7.)     


‘국방부 시계’, ‘바지사장’은 모두 공식적 자리에서 쓰기에는 다소 부적절해 보이는 유행어, 속어의 느낌을 주는 단어들입니다. 즉 신문기사처럼 공식적 장르의 글에서 이러한 유행어를 갖다 써야 하는 상황일 때 마치 독자에게 ‘요즘 유행하는 말 좀 쓰겠습니다.’ 하고 미리 양해를 구하는 듯한 활용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시쳇말과 같이 쓰이며 경쟁하던 동일한 의미의 말에는 같은 한자어 계열인 ‘시셋말(時世말)’이 있었습니다. 함께 쓰이다가 시쳇말만 남게 되었는데요. 현재는 표준어 규정 3장 4절 제25항의 규정에 따라 시쳇말만 표준어로 인정되고 시셋말은 비표준어로 인정되고 있습니다.   

                      

[표준어규정 3장 4절 25항]

의미가 똑같은 형태가 몇 가지 있을 경우, 그중 어느 하나가 압도적으로 널리 쓰이면, 그 단어만을 표준어로 삼는다.


그렇다면 이 말은 어디에서 유래된 말일까요? 이 말이 문서상 처음으로 발견되는 것은 놀랍게도 조선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요. 바로 영조(1694~1776) 임금 때였습니다. 영조 임금 시절의 조선은 어떤 상황이었을까요? 왕권 강화와 경제적 안정을 추구하던 조선 초기를 거쳐 영조 임금 때에 이르러서는 시장과 교역이 번창함에 따라 백성의 삶이 풍족해지고 시대도 빠르게 변화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1757년 영조 임금이 내린 윤음(綸音, 국왕이 관인과 인민을 타이르는 내용을 담은 문서)에 바로 ‘시쳇말’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지금의 사치는 옛날의 사치와 다르다. 의복과 음식은 빈부에 따라 각자 다른 것인데 요즘은 그렇지가 않아 한 사람이 하면 백 사람이 따라 하며 ‘시체’(時體)라고 말한다.”


한 사람이 하면 백 사람이 따라 하는 것을 ‘시체(時體)’라고 불렀던 것이지요. 현대 사회의 ‘유행’과 같은 개념으로 보입니다. 자신의 주관이나 의지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시체를 따라가는 풍조, 당시의 시체(時體)는 성리학이 아닌 서학(西學)(서양의 학문, 또는 천주교를 가리킴)에, 한문이 아닌 한글에 있었습니다. 이에 양반 사대부들은 이와 같은 세태를 통렬히 비판했고 조정은 사치를 단속하는 방식으로 이에 대처했습니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순 없었고 시간이 흘러 이는 곧 대세가 되었지요. 조선시대의 사람이나 현대인들이나 시체(時體)의 것을 따라 하고 싶은 속마음은 비슷했나 봅니다.    

 


<문해력이 쑥쑥, 한 줄 요약>

시쳇말은 유행하는 요즘의 말


* 이 매거진의 글은 일상생활에서 자주 헷갈리는 단어를 중심으로 그 차이점들을 짚어 보자는 기획 아래 집필하고 있는 글입니다. 대개 중학생 정도의 수준에서부터 일반인도 까먹었을 법한 어휘나 문법 지식도 나올 수 있습니다. 부담 없이 읽다 보면 국어 문법 지식도 함께 이해할 수 있길 바라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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