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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 수집가 Feb 27. 2024

무언가 멋이 깃든 단어, 반추(反芻)하다

반추(反芻)하다

인간의 일생에서 어휘력이 가장 급증하는 시기는 아마도 유아기가 되겠지요. 세상을 점점 알아가며 어휘를 습득해 가는 어린이는 그 어떤 국어학자보다도 언어에 높은 호기심을 갖고 있을 겁니다. 이처럼 어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1차 시기가 있다면, 그 다음으로 어휘의 확장이 찾아오는 2차 시기라는 것은 언제쯤이 될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고등학생이 되어 국어를 배울 때 수업 시간에 읽게 되는 다양한 제재를 통해 일상 언어생활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었던 여러 고급 어휘들을 익히면서 어휘 그 자체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치솟았던 것 같아요. 유년기가 아무것도 없는 백지의 상태에서 어휘를 차곡차곡 쌓아나가는 시기였다면, 청소년기어휘들의 다양한 의미 관계 속에서 양질의 어휘를 대상으로 깊이와 넓이를 확장해 가는 시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지금도 그때 배웠던 백미(白眉), 창궐(猖獗), 압권(壓卷) 같은 단어들이 주던 강렬한 인상과 그런 단어를 실제 말과 글에서 꺼내어 쓰던 순간의 쾌감이 생생합니다. 그때 알게 되어 지금까지 인상 깊게 기억하고 있는 단어 가운데 ‘반추하다’를 소개해 보겠습니다.     


● 반추(反芻)하다: ①『동물』 한번 삼킨 먹이를 다시 게워 내어 씹다.   ② 어떤 일을 되풀이하여 음미하거나 생각하다.

   [에] ① 소나 염소 따위는 먹이를 반추하는 동물이다.

            ② 지나간 50년을 곰곰 반추하여 보니 후회되는 일이 허다하다.     


‘반추하다’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소나 양처럼 반추위(反芻胃)를 가진 동물, 즉 소화된 음식물을 입으로 게워 되새김하는 위장을 가진 동물들이 있어요. 한번 삼킨 먹이를 다시 입으로 되돌려 잘게 분쇄한 후에 다시 씹어서 삼키는 것이죠. ‘반추하다’의 한자는 ‘되돌릴 반(反)’과 ‘꼴 추(芻)’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꼴이라는 것은 말이나 소에게 먹이는 건초(乾草)를 뜻하는데요. 도시 생활에서는 자주 들을 수 있는 말이 아니지만 가축을 기르는 농축산업에 종사하시는 분들은 흔하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은혜를 잊지 않고 갚겠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꼴을 베어 신을 삼겠다’라는 속담이 있기도 하고요. 이 한자만 보더라도 ‘반추하다’의 기본 의미가 ①번이라는 것이 쉽게 납득됩니다.   

  

한번 삼킨 먹이를 다시 게워 내어 씹는다는 이 위장의 특성이 인간의 삶으로 들어오게 되면서 ②번 의미가 주변 의미로 형성됩니다. 소가 먹이를 다시 게워 내어 씹는 행위와 사람이 어떤 일을 되풀이하여 음미하거나 생각하는 사고 행위의 유사성이 존재하니까요. 그래서 이제는 일반적으로 ②번 의미가 더 보편적으로 사용되며 ①번 의미는 생물학이나 동물학 등 특정 맥락에서만 제한적으로 사용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멋진 단어를 사용할 때에는 약간의 주의가 필요합니다. 어떤 일을 떠올린다고 해서 무조건 이 단어를 쓰긴 어렵거든요. 예를 들어 대화 도중 주말에 먹은 식사 메뉴가 생각나지 않는 친구에게 ‘어디서 무얼 먹었는지 잘 반추해 봐.’ 라고 말하는 것은 마치 격식을 갖춘 정장을 입고 등산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만약 실제로 저렇게 표현하는 친구가 있다면 언어 외적 의미 말고 숨겨진 표현 의도가 있진 않은지(해학적 맥락이나 풍자적 맥락 등) 생각해 봐야 합니다.      

지금 생각하면 좀 웃음이 나기도 하지만, 제가 처음으로 이 ‘반추하다’라는 단어의 뜻을 이해하고 직접 그 단어를 썼을 때 왠지 진짜 어른이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답니다. 물렁한 버섯이나 호박처럼 어렸을 때는 먹지 않던 식재료의 음식을 어른이 되어 먹어 보고 그 참맛을 알게 되었을 때와 비슷한 감정이었다고나 할까요. 무언가를 되새기는 사고 행위 자체도 훌륭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러한 사고를 이 ‘반추하다’라는 단어로 표현하는 것은 진정한 어른의 말을 배우고 쓴다는 느낌을 주었던 것 같아요. 여러분이 ‘반추하’고 싶은 것은 어떤 것인가요?     




<문해력이 쑥쑥, 한 줄 요약>

‘반추하다’는 지난 일을 진지한 마음으로 되새겨 보는 것

(‘진지한’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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