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와 마른오징어
-2019.06.11.의 단상-
그런 날이 있다.
화장실에 들어가 걸쇠를 왼쪽으로 걸어 잠그기는 했는데, 잠시 후 오른쪽으로 다시 풀고 밖으로 나갈 생각이 없는 날, 나가야 하나? 하는 의문이 드는 날,
4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는 엘레베이터를 탔고 문이 열렸는데, 한 발 내디어 전진할 생각이 없는 날, 내 생각보다 너무 문이 빨리 열렸다고 느껴지는 날, 다시 문이 닫혀도 서두르지 않는 날,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을 찾았다는 내면의 기쁨을 누리다가 곧장 그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날,
이게 사는 행복이지 되뇌이다가 당장 돌아오는 내일이 싫어지는 날,
은밀한 심리적 타격을 입고도 바로 그것을 잊는 날,
그런 날은 나 자신이 이 세상 먼지 같다는 생각을 한다. 한번 거나한 불길 속에서 실컷 불타오른 적도 없으니 재도 되지 못한다. 번 아웃 증후군이지도 못한다. '번'한 적이 없으니, 그저 아웃 증후군 정도라고 할 수 있을지. 약간의 재능과 약간의 위대함과 약간의 정의로움 속에서 나는 그저 약간 먹을거리 같기도 하고 약간 생물 같기도 한 마른오징어가 된다. 약간의 작가노릇과 약간의 일상인 생활에서 약간의 의지를 갖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 약간의 하루를 보낸 그런 날은 깜박거리며 사멸해 가는 형광등에도 시력을 잃을 것만 같고 아스팔트 위에 붙은 껌딱지에도 발이 걸린다. 번하지 않고 아웃되어버리는 약간의 삶은 위태롭다.
그저 세상이라는 동그란 원의 중심에 놓이고 싶다, 라는 생각은 사람들이 말하는 명예욕도 그 무엇도 아니다. 좀 더 중요한 사람이고 싶고, 좀 더 중요한 일을 향해 몰입하고 싶고, 그럴 뿐이다. 세상의 중심에 놓이고 싶다는 약간의 의지는 결국 그 원의 중심에서 같은 거리에 놓인 다른 지점들만 뱅글뱅글 걷다 제자리로 돌아올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