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과, 소아과, 이비인후과, 정형외과, 산부인과, 안과, 피부과, 신경외과, 신경정신과, 응급의학과, 치과 이제껏 살면서 방문해 본 병원들이다.
사람이 아프면 으레 가는 곳이라지만 어렸을 적부터 다양한 병치레를 해 온 내게 병원과 약국은 크든 작든 낮이든 밤이든 익숙한 장소다. 사람이 가장 약하고 아픈 곳을 내 보이는 곳이 병원이기에 한껏 모든 신경과 기억이 집중되는 그런 곳이었고 병원에서의 일과 거기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기억도 제법 또렷하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그들은 때론 친절하고 다정했으며 때론 매몰차고 냉정했다.
일화 1. 내과
어느 일요일 아침, 눈을 떠서 몸을 움직이려는데 눈앞이 뱅글뱅글 돌았다. 마치 몇 가지 색의 물감을 비현실적으로 섞어 마구 휘젓는 듯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아침부터 웬 현기증인가 싶어 몸을 뒤척이는데 유독 한쪽 방향으로 몸을 기울였을 때만 어지러움이 극에 달했다. 어렸을 적에나 해 보았던 코끼리코를 스무 바퀴는 돌았을 때와 비슷했는데 차이점이 있다면 코끼리코를 돌고 웃으며 목표물을 향해 돌진하던 흥분 가득한 그 느낌과 달리 이것은 친숙하지 않았고 불쾌하게 낯설었다. 이게 말로만 듣던 이석증이구나 싶어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바른걸음을 걷기 어려울 정도로 몸을 가누기 힘들었다. 하필 일요일이라 병원도 열지 않았고, 급한 대로 근처 24시 산부인과를 겸하는 내과를 방문해 증세를 설명했고 처방된 약을 복용하자, 정말 다행스럽게도 증세는 호전되었다.
다음날 나는 이석증이 재발 가능성이 높다는 것과, 무엇보다도 감기나 복통처럼 흔한 아픔이 아닌 어떤 것이 내 몸에서 급진적으로 일어났다는 두려움으로 병원을 다시 방문했다. 내가 경험한 것이 이석인지 불확실했지만 이석은 그 증세가 나타날 때가 아닌 이상 이비인후과에 가도 진단을 내릴 수 없다는 것 때문에 가까운 아파트 상가 내 한 자그마한 내과로 향했다. 사람이 별로 없는 오후 서너 시의 내과, 차례가 되어 들어간 진료실엔 평범한 표정의 의사 선생님이 평범한 얼굴로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 선생님, 제가 어제 아침에 눈앞이 뱅글뱅글 돌며 천장이 돌아가는 경험을 했는데 근처 산부인과에 가서 급한 대로 약을 처방받아먹고 다행히 어지러움은 가라앉았어요. 또 그런 일이 있을까 봐 왔습니다.
- 음, 이석은 동공이 돌아가는 외적 증상이 관찰되지 않는 한 진찰이 어려워요. 오늘은 괜찮으셨나요? 자주 재발하기 때문에 약으로 고치려 하기보다는 나쁜 자세를 하지 않고 스트레스 잘 다스리시는 게 중요해요. 인터넷 보면 빠진 돌을 다시 집어넣는 자세도 있는데 검색해 보셨죠?
- 네. 해 보진 않았지만 잘 될 것 같지는 않던데요.
- 맞아요. 그런데 이석이 참 골치 아픈 게 대부분 완치라는 게 없어요. 요즘 스트레스 많이 받으셨었나 봐요.
이상했다. 이석이라는 명백한 하드웨어적 증상에 대해 왜 내과를 왔냐고나 할 법한 내과의가 자꾸 병세에 몰두하며 소프트웨어적 요인인 스트레스를 운운하는 게 좀 신기하기도 했다. 귓속 돌의 위치와 앞으로 주의해야 할 행동과 자세 등에 대한 의외의 상세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미간을 살짝 찌푸려가며 열심히 설명하시는 선생님의 진료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동해 '저도 열심히 경청하고 있어요' 하는 의미로 고개를 몇 번 끄덕이는데 의사 선생님은 갑자기 소리를 지르다시피 그런 나를 제지했다.
- 안 돼요! 안 된다니까. 그렇게 고개도 끄덕이지 마세요. 이석이 한번 왔을 때 조심하셔야 다시 재발되지 않는다니까요. 그러니까 앞으로.......
생각보다 진료가 길어졌다. 고개도 끄덕이지 말라는 의사 선생님의 호통에 나도 모르게 몸이 굳어 꼼짝 못 하고 눈만 끔뻑이며 그의 이야기를 듣는 모양새였다.
진료가 끝나고 돌아 나오면서 나는 확신했다. 그 역시 이석증을 겪은 혹은 이석증을 겪고 있는 환자였을 것이다. 결코 자신의 병력은 공개하지 않았지만 그의 잔소리와 적당한 진심이 섞인 진료는 결코 경험에서 나온 게 아닐 수 없었다. 다행히 나는 그 뒤로 다시 이석을 경험하지 않아도 되었다. 의사 선생님의 잔소리를 내 귓속에서 '돌이 박히도록' 들어야 했기 때문이었을까.
일화 2. 응급의학과
늦은 밤, 하루 일과를 마친 나는 반듯하게 누워 있었다. 가면과 같은 낮 시간을 보내느라 몸의 어딘가가 닳아 없어진 것 같은 심정을 간신히 다독이던 깊은 밤이었다. 어떤 두 가지의 생각이 내 안에서 격하게 충돌한다는 느낌을 받았고, 그 순간 발끝에서부터 간지럽고 뜨거운 무언가가 빠르게 차 오르기 시작했다.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산 채로 익수하듯 그것은 내 가슴을 지나 묵직하게 코 밑까지 올라왔다.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달렸다. 그리고 그것만큼 뜨거운 눈물이 이유도 없이 흐르기 시작했다. 숨이 벅찼고 제대로 들숨 날숨을 쉴 수가 없어 가슴은 쥐어짜듯 아팠다. 의지와 상관없이 몸의 모든 기관이 폭주하고 있었고 그로 인해 화장실을 여섯 번도 넘게 다녀오면서 몸은 탈수 직전까지 이르렀다. 까닭도 없이 몹시 두려운 감정에 사로잡혀 화장실을 오가면서도 베란다 창문 쪽을 바라볼 수 없었는데 그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내 발이 저절로 나를 베란다로 데리고 가 저 아래로 몸을 던져버릴 것만 같은 진짜 느낌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 나 이렇게 끝나버리는구나, 도저히 내가 나를 어찌할 수가 없다 이 생각만이 반복적으로 들었고 다만 그 시간을 어떻게든 버티고 날이 밝으면 나을 것 같은 생각에 끝없이 어떤 노래인가를 불렀고 그것은 원치 않게 불쑥 튀어나온 또 다른 나에게 불러주는 본능에 가까운 처절한 노래였다. 그렇다. 그것은 내가 처음으로 겪은 공황발작이었다.
병명을 모르던 당시 나는 대학병원 응급실로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정말 응급해 보이는 많은 환자들 속에서 겨우 한 자리 침대를 차지할 수 있었고, 숨을 쉴 수 없다고 끝없는 눈물을 흘리는 30대 여자가 다급해 보였는지 차례로 폐 사진 촬영과 심전도 확인이 이어졌다. 당연히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그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의식과 의식 사이에서 도저히 통제가 안 되는 눈물을 흘리는 것, 그리고 지나치게 빠르게 숨을 쉬는 것 두 가지였다.
그런 나에게 의사 선생님 한 분이 성큼성큼 걸어와 나를 바라보았다. 보호자를 침대에서 떨어지게 하고, 커튼을 쳤다.
- 숨 천천히 쉬세요. 이렇게 많이 몰아서 쉬시면 큰일 나요.
나는 무어라고 무어라고 횡설수설 항변했다. 그러나 목소리는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던 것 같다.
- 지금 환자분 심장이랑 폐에 아무 문제가 없어요. 과호흡 때문에 산소포화도만 아주 조금 높아요. 아시죠? 뭐가 문제인지 본인이 아시죠? 이건 본인이 갖고 있는 문제이고 본인이 해결할 수밖에 없는 거라는 거.
나는 무어라고 횡설수설 항변할 수도 없었다. 의식과 무의식을 넘나드는 듯한 혼돈 속에서도 나는 약도 안 주면서 무슨 소리냐고, 그런데 당신 도대체 어떻게 그걸 알았냐고 물어보고 싶었고 아니 여건만 된다면 내 모든 서사를 다 쏟아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간신히 한 가닥 잡고 있는 의식 속에서나 떠오른 생각이었을 뿐 도저히 불가능한 몸 상태였다. 여기서 약을 처방해 줄 수도 없다는 말에 나는 그저 알겠으니 이 증세를 가라앉힐 수 있는 주사나 제발 놓아 달라고, 그렇게 말을 하고 말았다.
잠시 후 정맥을 통해 흘러간 수액은 과호흡과 터질 듯한 심장박동을 조금 가라앉혀 주었다. 응급실에서의 예상치 못한 박대에 약 한 봉지 받지 못한 나는 그제야 근처 신경정신과를 방문해 조금은 차분하게 어젯밤부터 오늘까지 있었던 일을 설명하고 약을 받아올 수 있었다.
이렇게 연예인들이나 걸리는 병으로만 알았던 공황장애가 병력에 추가되었지만 그 후로 다시 이런 일을 겪진 않았다. 공황장애의 가장 중요한 억제 기제 중 하나가 환자 스스로의 '인지'인데, 이는 어떤 상황에서 공황이 시작될 듯한 느낌이 오면 그 자리를 벗어나거나 다른 일을 해서 의도적으로 정신을 분산시키는 것이고 내 경우 그것에 꽤 효과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 뒤로 내가 특히 지나치게 감정을 이입할 우려가 있는 사건사고에 대해서는 일부러 관심을 갖지 않았다. 사람들과의 점심 식사 자리에서, 근무 중 책상 앞에서, 지인과의 대화 자리에서, 어느 관광지의 사방이 막힌 낮은 터널 속에서 등등 문득 불쑥 그것이 올라오는 경험은 했으나 다행히 딱 한 번의 응급실행을 빼곤 6개월의 약 복용만으로 좋은 효과를 보았고 먼 사촌의 작은아버지의 친구 같던 의사 선생님과의 면담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이석과 공황장애는 겉으로 병세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순간의 고통이고 혼자만의 전쟁이다. 그래서 타인에게 쉽게 말해지지 않는 병력이고 잘 아는 사람이 아닌 이상 공감과 위로를 얻기 힘들기도 하다. 사실 직접 겪지 못했다면 감정 이입을 잘하는 나라도 쉽게 무언가를 표현하기 어려웠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류의 전쟁을 치르는 동안 심신은 나약해지고 허름해지기에 진료 상황에 지나치게 의존하거나 아니면 정 반대로 의사의 말을 잘 듣지 않고 스스로를 방치하는 상태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어떤 현명한 의사들은 환자와 무관한 사이에서만 건넬 수 있는 그래서 더 현실적인 조언을 해 줄 수 있는지 모르겠다. 그들의 얘기는 마치 구불구불한 우회도로가 아닌 직선도로를 이용해 내달리듯 매끈하고 단호하다. 직선도로에서의 대화는 호흡에 맞춘 발걸음처럼 자연스럽게 순응하게 되는 미덕이 있다. 의사와 환자는 서로의 서사를 알지 못하는 맥락이 없는 사이지만 그래서 만능이기도 하다. 냉정한 조언이지만 그래서 통한다. 그리고 그 냉정함이 어떤 환자에겐 잊히지 않는 인생 조언이 되기도 한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불필요하게 그 이상으로 공감을 표현하느라 나를 돌아보지 못하는 일을 하지 않기로 했고, 나에게 일어난 문제의 열쇠는 내게 쥐어져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새겼다. 나에게 두 사람은 그들은 알지 못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나를 절뚝거리며라도 걷게 한 낯선 부축이었고 진한 위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