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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비야 Oct 11. 2022

'왕따봉~'을 외치는 손가락

화상 주의

사고는 내가 가고자 하는 곳에 미리 기다리고 있는 걸까?

저녁시간이 되자 계획에 없던 외식이 너무 하고 싶어 졌다.

"차돌박이 어때?"

얼마 전, 길 가다 콧구멍 사이로 들어온 차돌박이 냄새는 강력하게 각인되어 다음 메뉴로 대기 중이었다. 서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차돌박이'이야기에 같은 식당을 떠올린 신랑도 그날 길을 걸으며 나와 같은 상태였겠지!


기분 좋은 리듬으로 식당에 도착하니 당일 예약까지 모두 완료되어 대기 자체가 불가능하단다. 신랑과 나는 서로를 쳐다보며 "여기 대단한 맛집이었나 봐"하며 놀란다. 그리고 우리처럼 차돌박이 냄새에 홀린 사람들이 이렇게 많음을 확인한다.(ㅎㅎㅎ)


빈 식당을 찾아 헤맨다. 갑자기 차가워진 날씨에 가장 가까운 가게로 들어가니 또 만석... 대기를 걸어두고 걷다 보니 한우구이집 앞이다. 배고픔과 쌀쌀한 기온, 아이들의 성화까지 더해져 한우구이 가게로 들어간다. 3인분을 주문한다. 커피 쟁반 크기의 접시에 3인분이 다 들어가다니...신랑과 나는 눈을 의심하며 함께 놀란다. 다시 차림표를 보니 1인분에 100그람이다.(ㅠㅠ) 적게 먹어도 5인분은 주문할텐데....고민없이 바로 라면을 추가한다.


라면은 양은냄비에 나왔는데 아이들이 앉은 방향 쪽으로 서빙하길래 우리 쪽으로 받으려다가 그만... 냄비 손잡이에 손가락이 데었다. 정말 한순간이었다!! 작은 부분이지만 바로 수포가 올라오는 듯 보였다. 몹시 따갑다. 종이컵에 냉수를 받아 손가락을 담그니 그나마 낫다. 지난번에도 손가락을 데어 가본 적이 있는지라 식사를 마치자마자 근처 화상전문병원으로 갔다. (글루건에 데었을 때도 화상전문병원에 갔었는데, 병원에서 열을 식혀주는 밴드를 붙이면 통증이 많이 줄어든다. 화상을 입으면서 남은 열기를 지속적으로 식혀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그런 일은 없어야겠지만 혹시라도 화상을 입는다면 데인 상처가 작아도 화상전문병원에서 처치를 받기를 추천한다!)


병원에는 2살 배기 아이가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화상전문병원에는 어린이 화상에 대한 주의와 대처법이 한쪽 벽면에 게시되어 있었는데, 그만큼 아이들의 사고가 많은 거란 생각이 들었다. (정수기의 온수, 글루건, 뜨거운 국, 아메리카노 등 정말 조심해야한다)


진료 순서를 기다리며 사건을 되짚어본다. 종업원이 아이들 자리와 먼 곳에 라면 냄비를 놓아줬다면 좋았겠지만, 그나마 다친 것이 나여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냄비를 받을 때도 '조심해야지~!'하고 생각했는데, 그런데도 손을 데다니...

사고는 내가 가려던 곳에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던 걸까?


그래도 큰 상처가 아님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이 일로 사고는 눈 깜짝할 새에 일어난다는 걸 한 번 더 생각하게 되었으니 당분간 더 조심할 수 있겠지.


병원을 나오며 내 엄지는 왕따시만하게(?) 커졌다. 치료받는 동안 차에서 기다린 아이들에게 최고의 손가락을 들어 "따봉~~!"을 외친다.


다음날 둘째는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태권도 학원 놀이를 한다고 거실에 인형 학생들을 자리 잡는다. 무대의 중간에서 '태권도'동작을 어설프게 하고 내게 와서 말한다.

"엄마, 어제 그거, 왕따봉? 한 번만 더 해봐. 너무 재밌어!"

발차기와 찌르기는 따봉과 장단을 주고 받으며 다시 시작된다. 나는 쌍따봉을 딸에게 몇 번이고 날려 보낸다.

'그래, 즐거우니.. 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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