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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비야 Nov 16. 2022

나 가을타나 봐

아른이는  어른이 되어야 할까요?ㅠㅠ

# 1.

  어떤 계절을 가장 좋아하는지의 물음에 내 답변은 늘 '가을'이다. 얼마전, 가을이 왔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가을이 진다. 유치원 버스에 아이를 태워 보내고 나는 횡단보도를 건넌다. 쌀쌀해진 아침 공기가 바지통과 운동화 사이의 살결을 스치고 지나가며 나는 가을의 체온을 몸에 담는다. 색색의 나뭇잎들이 하룻밤 사이 다시 쌓여 폭신한 느낌을 만들어낸다. 나뭇잎을 밟으며 지나가면 가을 나뭇잎의 향기가 따라온다. 분명 은은하게 좋아야하는데...

그보다는 이 모든 것이 곧 사라질까하는 두려움이 든다.


# 2.

  나의 최애 계절 가을을 즐길 때 경계해야 하는 것은 열매맺음의 위대함과 저무는 것들을 향한 슬픈 감성 사이에서 균형을 잃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그만, 나는 저무는 것의 슬픈 감성에 빠져버렸다. 요 며칠 사이에 지나간 일들을 떠올리고, 무엇하나 집중해서 손에 잡기 어렵다. 어디 이야기하거나 글로 남기면 지키지 못할까 두려워 혼자 다짐했던 '일주일에 글 두 편 쓰기'의 의지는 스르르 사라진다. 누군가 나를 건드려 터트려주었으면 좋겠다.


# 3.

브런치에 올라온 글들을 읽는다. 야채찜 요리를 보며 한번 해먹어봐야지~하는 다짐도 하고, 부모님과 자식, 남편, 친구의 소중함을 되새기기도 한다. 부지런히 사는 작가님들의 모습을 읽으며 널부러진 집을 다시 정리하기도 하고 소파에 붙어있던 몸을 일으켜 밀린 집안일을 한다. 투병일지를 읽으며 빨리 나았으면하고 염원하다가도 덩달아 불안해한다. 그림일기들을 읽으면서 그 재능들에 감탄하고 내게 없는 재능이 부럽기도 하다. 다른 글에서 잊고있던 고전 소설들을 떠올리기도 하고 삶의 의지를 다지며 감사의 마음을  띄운다. 브런치에서 읽은 생기있는 글들을 하나씩 에 옮기며, 나는 이해와 공감이 바탕되어야 실천하는 타입임을 깨닫는다.(대왕 피곤하다)


# 4.

이번 가을이 힘든 것이 나이탓인가?

나는 석사과정이 너무 힘들었다. 25살에 취직하고 27살에 석사과정을 직장과 병행했다. 28살에 결혼하는 와중에 내가 짊어진 정체성은 교사, 대학원생, 아내, 딸, 며느리였다. 점차 나를 나타내는 특정 단어들이 많아지며 삶이 이전보다 조금 무거워졌다고 느꼈다.

대학원 수업을 마치고 나보다 나이가 한참 많았던 한 선생님께

"시간이 너무 빨리가요."라는 말을 했다. 그 선생님은 내게,

"쌤, 시간 빠르제? 근데 30대의 시간은 30킬로, 40대의 시간은 40킬로로 간데이~~! 20대는 느린거다~!"하고 말씀하셨다.

당시 스스로가 너무 벅찼기때문에 앞으로가 더 바쁘고 빨리 지나갈것이라는 선생님의 이야기를 믿고 싶지 않았다. 그 날 집에 돌아오는 길, 차가 드문 갓길에 주차를 해두고 깊어가는 가을에도 봄, 여름처럼 바쁘게만 움직여야했던 나는 꺼이꺼이 소리내 한참을 울었다. 마치 장면 밖에서 스스로를 본 듯, 여전히 그날은 잊혀지지 않는다.


# 5.

 30대를 모두 보내고 곧 새 숫자를 맞이하게 되어서일까? 중년에 들어선다는 느낌은 지금까지 나이먹어온 것처럼 마냥 설레지는 않는다. [아기-아린이(우리집 용어)-어린이-아이-아른이(아기어른, 우리집 용어, 현재의 나를 지칭함ㅎㅎ)]가 되어오는 과정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느껴졌는데,  [어른]이 되어야하는 중년은 그 상태로 잘 익어가야하는 느낌이랄까?* 에릭슨의 심리사회적 발달과업에서도 6단계가 지나가버렸다니...

그리고 올해 발표한 박사논문계획을 내년에 실행해야한다는 부담과 '무엇을 위해?'라는 근본적인 물음이 마음 한자락을 잡고있다. 또, 건강 염려증이 심해졌다(뉴스기사란은 왜 매번 갖가지 암 지표들을  띄우누 걸까?). 불현듯 잔잔한 일상이 깨져버리는 것은 아닐까하고 경계해도 어쩔 수 없는 손 밖의 일들을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불안하게 버티고 있다. 모든 걱정은 생각이 하는 것이라는 엄마의 말씀을 떠올리며 생각을 털어버리려 무진장 애쓰고 있다. 그 와중에 브런치를 기웃거리며 나를 일으켜 줄 글들을 읽는다.


# 6.

몇개월로 1살 차이가 나는 신랑은 내가 나이탓을 할 수 없게 "지금이 좋~~을 때다. 기분 이상하제?"하며 먼저 앞 숫자를 바꾼 자의 여유를 보인다. 신랑은 언젠가부터 연말과 연초가 되면 먼저 먹은 나이 한 살의 차이를 부각시켰는데 올해 초 40이 되고나니 마음이 편하다는 그의 말이 떠오른다. 이제 얼마남지않은 시간이 지나면 나도 체념하게 될까???


에릭에릭슨의 심리사회적 발달과업 8단계
1) 신뢰감 대 불신(영아기)
2) 자율성 대 수치심(2~3세)
3) 주도성 대 죄책감(3~6세)
4) 근면성 대 열등감(아동기)
5) 정체감 대 정체감 혼란(청소년기)
6) 친밀성 대 고립(청년기)
7) 생산성 대 침체감(장년기)
8) 자아통합 대 절망(노년기)
※ 에릭슨은 인간의 심리사회적 발달을 인간의 전체 생애주기로 나누어 설명했다. (A 대 B)로 나타난 것 중 A를 많이 획득할 수 있도록 돕는 주양육자의 노력이 필요하지만, B의 경험이 필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불신이나 수치심,  죄책감, 열등감 등등 우리가 부정적으로 여기는 과업들도 인간의 삶에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이는 주양육자의 실수가 잠시 빠져나갈 수 있는 지대를 제공해준다고 생각한다. 나는 에릭슨의 발달과업을 아이들과 내 삶에 적용할 때면, 삶에서 적절히 경험하여 두 가지의 과업을 모두 균형있게 갖추어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실천하려 노력한다.
※ 오랜만에 전공을 살려보니 재미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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