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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비야 May 19. 2023

유치원의 스승의 날

5월 15일, 스승의 날이다. 초임때는 김영란법이 시행전이라 스승의 날이 오면 받은 선물을 돌려보내느라 진땀을 뺐던 것 같다. 어느새인가 부담스러운 날이 되었다가 휴직한 몇년 사이 선물을 주고받는 문화가 없어진 것이 반갑다!!


스승의 날을 위해 유치원에서는 오예스 몇통과 하리보젤리 한통, 카네이션 초 하나가 반별로 주어졌다. 그리고 아이들 하원 후에 선생님끼리 모여 치킨과 피자를 시켜놓고 자축하는 행사가 예정되어 있던터라 아무도 신경쓰지않는 스승의 날을  '굳이 이렇게까지 챙겨야하나'하는 생각과 함께 씁쓸했다.


스승의 날 아침이 되었다. 하♡이는 등원하면서

"오늘 선생님 날이죠? 사랑해요."한다. 나는 갑자기 녹아내리며 울컥하다.

♡윤이는 교실에 들어서며 나를 꼭 안아준다. 그리고 귓속말로 "나 좀 봐요."하고 배를 앞으로 쭉 내민다. 티셔츠에는 [선생님 사랑해요]라고 적혀 있다.

꼬깃꼬깃 접은 보라색 카네이션을 ♡람이가 꺼내서 "어제 밤에 제가 직접 접었어요. 자요(여기요의 사투리)."하고 내민다.

개구쟁이 ♡찬이는 카드에 [선생님 인사 잘해줘서 고마워요 사랑해요]라고 적었다. 평소에 ♡찬이에게 인사말고 잘해준게 없었나 돌아보며 미안해진다.

♡윤이는 엄마와 함께 접었다는 꽃을 내밀며 "안에 편지도 있어요. 읽어보세요~"한다.

♡우는 등원하는 아이들에게

"야! 오늘 선생님 날이다. 알고있어?"하고 아이마다 찾아다니며 말한다. 연♡이는

"우리 형아는 엄마가 편지써라해서 학교 선생님한터 썼는데 저는요, 할 말이 없어서 안썼어요. 아니, (쓸 말이)생각이 안나서요"하고 두 번이나 말한다.

아이들의 순수함 앞에서 행사의 날이라 생각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그리고 아이들의 관심은 오예스상자로 향한다.

"저거 우리 줄꺼예요?"

ㅎㅎㅎㅎㅎㅎㅎ


는 오예스하나에 카네이션 초를 꽂았다.

"우와~ 예쁘다."

"우리~촛불도 할꺼예요? 불 끌까요?"


작은 초 하나에도 설레는 아이들 덕에 행복한 스승의 날이다.


나는

"촛불 끄기 전에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대. 선생님은 너희들이 쭉 많이 웃고 좋은 일들을 오래 기억해서 행복한 어른이 되면 좋겠어. 이루어져라~ 이루어져라~~사랑해."하고 말했다.

오예스 한봉지에 이토록 공손한 대답들이라니.. 평소와 달리 "잘먹겠습니다.", "고맙습니다"하는 아이들 덕에 나는 또 웃는다.


하원길에 다♡이 엄마는 카네이션을 가지고오셔서 사진만 찍고 감사와 미안함을 실어 돌려보냈다. 다음날 지♡엄마는 감사하다는 말을 전화로 전해주셨다. 감사와 격려가 교사를 춤추게 한다.

뭔가 한해를 잘 걸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보람찬 기분이 드는 스승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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