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술이 쓰는 걸지도 모르겠다. 신랑은 2박3일의 짧은 출장을 마치고 백만년만에 친구를 만나러 갔다. 아마 내가 목격하는 1년 중 가장 많이 마신 모습으로 새벽 1시쯤 집에 나타날 것이다. 집돌이인 신랑에게 친구를 만날 일이 생기면 나는 응원한다. 밖에서 에너지를 바꾸고 오라고!
그러나 출장 후 돌아오면 토요일인 오늘, 가족 외식을 계획하고 있던터라 신랑의 갑작스러운 약속에 대한 정보는 밖에서 식사하고픈 미련의 끈을 놓아주지 않는다.
카카오택시를 호출하여 시내로 타고나가는 신랑을 배웅하며 우리는 소고기와 돼지고기 중 고민한다. 그리고 동네 맛집에 가성비 좋다던 소고기집으로 향했으나 이미 만석이다.
우리는 막창집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돼지막창 2인분에 목살 2인분, 소주 1병, 사이다 1병을 주문했다. 다 먹을 수 있을까?
걱정은 기우다. 불쑥 커버린 몸집 만큼이나 먹는 양도 늘어난 8, 10살의 두 아이 덕분에 식당에 와도 민망하게 과하게 남기는 일이 없다(잘 먹는 내 덕분이기도 하다ㅋㅋ). 닌텐도를 챙겨와 먹을만큼 먹고 게임해도된다는 허락이 떨어지기 무섭게 두 아이는 자세부터 고쳐앉아 게임 한판을 부셔버리리라는 다짐을 하는 듯 이 세상에서 분리되었다. 시간이 지나면 두 아이 손에 들린 물건이 닌텐도대신 핸드폰이 되겠지..하며 아이들의 빠른 손놀림을 바라본다. 나는 소주잔에 소주를 따라 마시며 입의 침묵을 즐긴다. 다물어진 입술은 알콜 문과 같아서 뭔가 말하지 않으니 더 빨리 취하는 것 같기도, 평소만큼 제정신인 것 같기도 하다.
[누군가 술주정을 글로 한다면, 그건 바로 지금의 나다]
대화할 이들이 게임 속으로 들어갔으니 물리적으로만 함께할 뿐, 다른 테이블의 대화들이 귀로 더 잘 들어온다. 이 느낌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순간, 계획했지만 실행하지 못하던 그림책 이야기나 박사학위논문의 꼭지들이 떠오르다가 가라앉는다. 일상의 고민 속도보다 템포가 빠르다.
얼마전, 특강 제안을 받고 내 기록들을 살펴봤다. 20대부터 기록물이 쌓였는데 당시에 일기장을 고를 때 신경썼던 부분들이 떠올랐다.
1. 일기장처럼 보이지 않을 것
2. 펼쳤을 때 면이 편평할 것
3. 너무 크지 않을 것
여기 저기 흩어진 과거의 몇 권을 찾았다
내용을 펼지니 놀라운 사실은
[과거의 나도 지금의 나와 별반 다를 바가 없구나]
별 쓸데 없는 고민들을 몇년이나 품기도 하고
아이의 권리와 성인의 위치에 대해 오랫동안 새기기도 했지만 세월의 흐름이 만들어낸 지금의 나는 내 새끼들에게 소리도 지르고 화도 내며 자주 사과하는 주변의 삶들과 차이가 없다. 그럼에도 많이 고민하고 생각많고. 괴로워하는 모습이 어쩌면 내 고유성일지도 모른다는,
과거와 아주 많이 바뀐 삶을 살고 있다는 착각에서 일기들은
"아니야, 너는 너지, 그대로였어."라는 말을 하는 듯 하다.
바뀌어 좋거나 변함없어 좋다는 것이 아니라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발버둥치며 책을 읽고 공부를 하며 삶의 경험을 넓혀왔다는 살아냄 중에, 그럼에도 "너는 너다"라는 고유성을 받아들이게끔 한다.
[누구나 자기 삶을살아간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삶은 살아지는 거다. 그러니 너무 발버둥치지도, 걱정을 이고 살지 마라.]는 엄마의 말씀이 내게 더 와닿았다고 할까?
시끄러운 술집(고깃집)에서 나의 침묵 안으로 파고들며 그녀(엄마)가 건넨 이야기들이 생각많은 딸을 향한 사랑이었음을 다시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