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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notoly Dec 05. 2020

후츠파로 독서 토론을 해보았다.

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ejkGb=KOR&mallGb=KOR&barcode=9791135490798&orderClick=LAG&Kc=


후츠파, 이스라엘의 강력한 국력을 만들어낸 정신이다. 

이 책을 읽고 난 뒤, 여러 발제문을 통해 의견을 나눠보았다.


발제문은 아래와 같다.

1) 실패에서 배운 경험, 실패로부터 회복하는데 도움이 되었던 것들


2) 후츠파 정신이 유용하다고 생각되는가? 개인마다 이러한 정신을 어떻게 적용시킬지, 후츠파 정신은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날 텐데 이를 공동체에서 어떻게 융합시킬지


3) 위험요소가 많은 곳에서의 아이들의 자율성 - 어디까지 허용 가능한지(기준), 그리고 부모의 부담감은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참여 인원이 많다 보니 내 생각을 말하면서 정리하는 시간이 부족했다. 그래서 글로 내 생각을 다시 한번 생각하면서 발제문을 정리하고자 한다. 


1. 실패에서 배운 경험, 실패로부터 회복하는데 도움이 되었던 것들

사실 이에 대해서는 뼈 아프게 실패한 뒤, 정리한 글에 어느 정도 담겨있다.

https://brunch.co.kr/@nanotoly/8

이 글에서 내가 실패에 대해 다루는 방식이 완전히 달라진 것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간단히 말을 하자면, 

'실패는 실패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라고 정리할 수 있겠다.


토론에서 실패에 대해 과소/과대평가하는 태도에 대해서 이야기가 나왔다.

사실 실패는 그냥 현상에 불과하다. 그래서 과소/과대평가할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실패를 심각하지 않게 받아들이되, 그 실패에 대응하는 시스템을 곧바로 수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경험은 적지만, 나도 나름의 실패를 겪으면서 많은 좌절을 했다. 그러면서 난 정말 못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많이 우울해하기도 했다. 그래도 난 계속해서 다시 도전했다. 그러면서 알게 된 점이 있다.

어떤 일이 잘못되거든, 내가 잘못된 사람이 아니라 방법이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이를 인격체와 알고리즘이라고 부른다. 뭔가 좋은 일을 하려고 했지만 실패하거든, 나의 인격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걸 수행하는 알고리즘이 잘못되었다고 표현한다.


우리는 지속적으로 알고리즘을 수정해 나가면 된다.

예를 들어 나는 아침잠에서 깨기 위해 로봇팔로 아침에 전등을 켜주는 알고리즘을 만들었다.

https://youtu.be/H-bcRsqCcVM

하지만 어떤 날은 로봇과 서버의 통신 장애로 인해 로봇이 고장 나고 오후 1시에 일어날 때도 있다.


나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세상에 어떤 영향력을 미치고 싶어 하는 인격체이지만, 알고리즘이 잘못되어 아침에 제대로 일어나지 못했다.


나 스스로를 "아침에 로봇 없이는 혼자 못 일어나는 멍텅구리에 잠만 좋아하는 게으른 놈"이라고 깔 필요는 없다. 사실 내가  "아침에 로봇 없이는 혼자 못 일어나는 멍텅구리에 잠만 좋아하는 게으른 놈"이라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사실은 그 무엇도 바꿔주지 못한다.


나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세상에 어떤 영향력을 미치고 싶어 하는 사람"인 동시에  "아침에 로봇 없이는 혼자 못 일어나는 멍텅구리에 잠만 좋아하는 게으른 놈"이다. 그냥 받아들이자.


내가 바꿀 수 있는 알고리즘에만 집중하면 된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싶은데 게으르고 멍텅구리인 나를 위해 서버 프로그램의 알고리즘을 수정하기만 하면 된다. 덕분에 통신 장애는 일어나지 않게 되고 로봇은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매일 아침, 로봇은 스위치와 나의 하루를 켠다.



2. 후츠파 정신이 유용하다고 생각되는가? 개인마다 이러한 정신을 어떻게 적용시킬지, 후츠파 정신은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날 텐데 이를 공동체에서 어떻게 융합시킬지


우선 내가 어떻게 후츠파를 적용했는지는 여기에 잘 나와 있다.

https://brunch.co.kr/@nanotoly/42


그런데 위의 내용은 나에게 최적화된 사례이다.

요즘 유행하는 MBTI만 봐도 사람은 적어도 명확히 구분되는 16개의 성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다양한 성향에 맞게, 서로 각자 어떻게 적용하고 있는지에 대해 원활한 소통이 이뤄진다면 서로 더 많이 배우고 사회가 성장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특히 한국의 유교 문화 때문인지, 스스로가 잘한 내용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덕목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 듯하다. 이런 문화로 인해 좋은 사례를 공유하기 힘들고 자신에게 맞는 후츠파의 적용 사례도 찾기 힘들다.

이는 연구할 때 참고 문헌이 없는 것과 같다. 그러니 자신의 사례를 소개하는 것도 누군가에게는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는 열쇠라고 생각한다.


3) 위험요소가 많은 곳에서의 아이들의 자율성 - 어디까지 허용 가능한지(기준), 그리고 부모의 부담감은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나는 '부모의 마음'이라는 단어를 정말 안 좋아한다.

너무 과대평가되고 있는 말이다. 그리고 합리화의 도구로 악용되는 사례가 너무 많다.


쉬운 이해를 위해 나는 '남자 친구의 마음'이라는 것과 '부모의 마음'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성친구가 있으면 진심으로 그 친구가 잘되길 바란다. 그리고 정말 아끼고 예뻐한다. 그런데 괜히 직장에서 내 여자 친구에게 남성인 상사가 친절하게 이것저것 알려준다면 갑자기 감정이 밀려온다. 그래도 그 감정을 억누르며 쿨한 척한다. 

어느 날 여자 친구가 혼자 여행을 가겠다고 하면 덜컥 내가 더 겁이 난다. 그래서 가지 말라고 말리고 싶다. 하지만 말릴 수 없다. 그것이 그 친구의 성장에 도움되며, 혹여나 그 여정에서 상처가 생기더라도 모두 양분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성적인 사랑이 아닌 진정으로 서로가 잘되길 바라는 남녀의 사랑은 부모의 마음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부모의 마음은 아기를 지키라는 DNA의 명령으로 인해 그 강도가 더 강한 듯하다. 하지만 '부모의 마음'대로 행동하는 것은 말 그대로 부모가 그냥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에 불과하다.

여자 친구에게 다가가는 상사에게 깽판을 쳐서 여자 친구를 곤란하게 하거나, 여행을 못 가게 해서 꿈을 펼치지 못하게 내가 내 마음대로 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부모는 아이에게 육체적으로 생존하는 방법만 알려주면 충분히 부모의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그 이상의 추가적인 교육은 아이가 부모만큼만 자라도록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부모가 자신의 생각을 주입하는 만큼 딱 부모만큼만 자랄 확률이 높다. 어쩌면 시대에 맞지 않는 부모의 낡은 지식과 편향 때문에 부모보다 더 못 살 확률이 상당히 높다.



느낀 점

또 한 번 미친척하고 새로운 시도를 했다. 지금까지는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분들과 독서 토론을 진행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내가 날갯짓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 피디님도 없고, 아는 사람이 더더욱 없는 새로운 그룹에서 독서 토론에 참여했다.

아쉽게도 참여자가 많아 여러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작은 임계점을 뛰어넘을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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