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아이들이 가르쳐 준 마음의 언어_01화
그 아이는 그날도 느렸다. 유난히 그날은 더 느린 것 같았다. 다른 친구들은 벌써 2시간 전에 끝나고 다들 집에 갔는데 J는 아직도 마무리를 못하고 있었다. 아니, 내 눈에는 마치 안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쩜 저리 여유로울까.... 나도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기에 J를 계속 신경 써주면서 업무를 하기가 이젠 지친 순간이기도 했다.
"J야, 아직 다 못했어도 마무리하고 갈까?"
"아니요, 선생님. 저 다 하고 갈래요."
"그럼, 너무 늦을 것 같은데..."
"그래도 다 할래요."
"으응,,,, 그래...."
40분여를 더 마무리 한 뒤 J는 활짝 웃으며 일어섰다. 늘 나에게 보여주는 그 특유의 환한 웃음. 교문까지 손잡고 데려다주며 물었다.
"J야, 내일은 더 빨리 챙기자!"
"선생님, 왜 빨리 해야 돼요?"
"응, 친구들이 많이 기다리고 선생님도 기다리니까..."
"선생님, 전 느리게 하는 게 좋아요."
"이렇게 늦게 하면 안 속상해? 다른 친구들은 다 갔는데..."
"아니요, 안 속상해요"
"왜? 선생님은 나만 늦게 하면 속상할 것 같은데..."
"느리게 하면요, 훨씬 더 잘할 수 있거든요. 저는요, 느리게 해서 더 멋지게 할 수 있어요. 전 느리게 하는 게 좋아서 계속 느리게 할 거예요!"
순간 말문이 막혔다. 뭔가 커다란 망치, 아니 거대한 구름방망이로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아, 그렇구나, J는 그렇구나... J말이 어쩌면 맞는구나...'
나는 J처럼 늘 다른 이들보다 느리게 수행하고, 더디게 진도를 나가서 그즈음 나 스스로가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터였다. 그래서 J의 느린 마무리가 더 힘들었는지도 모른다. 나의 모습과 겹쳐지면서 말이다.
'아, 그런데 그게 아닐 수도 있구나. 나도 느리게, 섬세하게 다가가기에 더 잘할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구나...'라고 생각한 순간 너무나 큰 위안과 위로를 얻었다. 때론 답답하고 갑갑했던 나 자신의 작업 스타일이 어쩜 강점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난 정말 그 후로 천천히 작업하는 내 모습을 사랑하게 되었다.
나를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는 거, 내가 싫었던 내 모습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건 얼마나 값진 선물인지... 그리고 나는 J처럼 천천히 해야 잘할 수 있는 사람인 것을 알았기에 그 지난한 과정들을 더 즐기는 사람이 되었다.
더더욱 과정 중심의 사람이 되고, 그 과정 속에서 기쁨을 향유하는 내 모습을 감사하게 된 것은 온전히 J 덕분이다. 그날 J가 내게 준 선물, 앞으로 내가 살아갈 삶 속에서도 아마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고마워...
아이들은 오히려 매일매일 나의 스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