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아이들이 가르쳐 준 마음의 언어_03화
"아, 짜증 나. 저리 가라고!"
아침에 등교하자마자 어김없이 들려오는 그 아이의 거친 언어. 이어 혼자 중얼거리는 말들에는 이상하게 다른 날의 표현 방식보다 더 화가 가득 담긴 느낌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Y야, 안녕!" 하고 언제나처럼 먼저 인사를 건네는 내 앞에서도 이유 없이 짜증 섞인 탄식을 내뱉는다. 다른 날은 그래도 인사는 했는데 말이다. 고개를 푹 숙이고, 가방은 내던지듯 내려놓고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자리에 앉는다.
그날은 나도 불쑥 화가 나려 했다. 실은 그즈음 Y가 자꾸만 미워지려 하고 있었다. 매일매일 친구들을 괴롭히고 갈등을 일으키는 그 아이가 진짜로 미워지려 하는 중인데, 그날 아침 그렇게 버릇없이 구는 모습에 내 마음 깊은 곳에서도 짜증이 올라오고 있는 것 같았다.
아이들을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려고 늘 노력했지만, 가끔은, 정말 얄미우리만큼 친구들에게 피해되는 행동만을 하는 친구들이 종종 있었다. 그런 친구들도 다 좋은 면들이 있기에, 멋진 모습들을 애써 바라보며 내 마음을 다독이곤 했다. 하지만, Y는 3학년이 시작되고 2달여 가까이 지났는데도 늘 친구들 위에 군림하여 괴롭히려는 모습만 자꾸 보였다. 힘들어졌다. 나도... 점점...
그날 그 아이의 예의 없는 모습을 보고 안 되겠어서 아이들이 아침독서를 하고 있는 동안 잠깐 복도에서 이야기를 하자고 했다. Y는 툴툴거리며 나왔다. 투덜대는 그 모습에 한 마디 훈계를 하려는 순간, (그때 왜 갑자기 그 생각이 떠올랐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차, Y 아빠가 오셨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Y는 아빠를 좋아하면서도 무서워했다. 아빠가 직장 때문에 아주 가끔씩만 집에 오셨는데, 어쩌다 Y가 잘못을 할 때면 매를 호되게 맞는다고 했다. 그 생각이 불현듯 떠오르면서 나도 모르게 "Y, 오늘 아침에 집에서 속상한 일 있었니?"라는 말이 먼저 나왔다.
지금 생각하니 정말 다행이었다. Y가 아침부터 툴툴대고, 들어서자마자 아이들에게 짜증 낸 것을 먼저 훈계하지 않았던 게 정말 다행이었다. 나의 질문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아니 '아침에~'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왈칵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
"아침에 엄마가 저만 엄청 혼냈어요. 내 잘못도 아닌데 형은 안 혼내고 나만 혼내요... 어젯밤에는 아빠한테 매 맞았어요."
아...
아침에 나에게까지 짜증을 낼 때는 나도 괜스레 '내가 뭘 잘못했지? 난 Y에게 인사한 것밖에 없는데...'라는 생각이 들며 억울한 마음이 들었었다. 하지만 그 마음은 어느새 사라지고 한없이 속상하고 마음 아파하며 계속 눈물을 흘리는 그 아이가 너무나 안쓰러웠다. 다른 아이들에 비해 키도 크고 체격도 있는 그 아이가 등을 웅크리고 그토록 서럽게 울고 있는 모습에 마음이 쓰라렸다. '아,,, 이 아이에게 지금 필요한 건 오직 사랑밖에 없구나..' 하는 생각에 나도 눈물이 밀려왔다.
안타까웠다. 미안했다. 잠시 미워했던 마음이 너무 미안했다. 그렇구나... 아이가, 아이들이 미운 행동을 할 때에는 다 이유가 있는 거구나. 사랑이 필요한 거구나. 더 많은 사랑이 필요한 거구나... 내 자녀들의 모습도 스쳐 지나갔다. '아, 말 안 듣고 삐지고 그럴 때는 더 많이, 더 귀 기울여 자신의 마음을 알아달라는 거였구나...'
어쩌면 누군가에겐 너무 당연한 사실을 나는 그날 온몸으로 느끼게 되었다. 그날 아침 엄마에게 혼나고 너무 서러워하던 Y의 눈물을 통해 나는 너무 귀한 깨달음을 얻었다.
미워 보이는 때가, 가장 사랑이 필요한 때
그날부터 난 나 스스로 다짐을 했다. 그간 Y가 자꾸 미워지려던 내 마음을 다잡기 위해서도, 사랑이 더 필요한 Y를 위해서도.
매일 아침 나는 Y를 처음 만나는 거라고 생각하자. 매일 처음 만나는 아이이니,
Y가 이전에 보여주었던 거친 행동들과 언어들을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매일 새롭게 그 아이를 바라봐주고,
사랑의 마음을 주자
그 다짐을 실천하는 것은 정말 큰 효과가 있었다. 아침마다 새로운 눈으로 그 아이를 바라보았다. 물론 처음엔 쉽지 않았다. Y의 친구들에 대한 행동들엔 여전히 거침이 가득했으니...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난 매일 아침 Y를 처음 만나는 것처럼 그 아이의 어제 행동을 잊고, 새로이 사랑을 주려 노력하는 것에 익숙해졌다. 그리고... 그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그 해가 마무리될 무렵, 우리 반 아이들이 놀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자, 자, 이리 와봐. 내가 알려줄게." 하고 의젓한 형처럼 말하고 있는 Y의 모습이 보였다. 픽 웃음이 나왔다. 자기가 무슨 중학생 형이나 된 것처럼... 예뻤다.
어쨌든 그 이후 나는 아무리 미운 행동을 하는 아이일지라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잃지 않을 수 있는 나만의 방식을 갖게 되었다.
매일 그 아이를 처음 만난다고 생각하기.
새로운 첫 만남의 마음으로 사랑하기
고맙다 그 아이에게.
사랑할 수 있었기에
나를 더욱 행복한 선생님으로 만들어준 Y
너도 어딘가에서 더욱 행복하게 지내고 있기를..
절대 마음 아파 서럽게 울고 있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