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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nudayoo Apr 26. 2022

두 번째 스무 살의 도전기

쫄보의 운전면허취득기

"엄마, 나 바본가 봐"

'누가 내 얘기를 하지?'하고 고개를 돌리니 바로 옆에 앉은 학생이 울상이다. 여기는 운전면허 장내 기능 수업이나 시험을 보는 사람들이 대기하는 곳. 아마도 수업 후 쉬는 시간 동안 엄마와 전화를 하는 모양이다. 심각해 보였다. 마스크 위로 보이는 눈만으로도 그녀의 심정을 알 수 있었다. "면허는 포기해야 하나 봐"라고 이어지는 말에 나도 모르게 마스크 속으로 공감의 웃음이 새 나왔다. ('나도야...')


운전면허를 취득하려면 1차 필기시험, 2차 장내기능, 3차 도로주행 순서로 합격해야 한다. 장내기능은 총 4시간의 교육을 듣고 시험을 볼 수 있고, 50분 수업 후 10분간의 쉬는 시간으로 구성된다. 나도 첫 수업을 듣고 망연자실 상태로 앉아있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란 걸 알게 해 준 학생이 반가웠다. 운전면허가 뭐라고 잔뜩 의기소침해 있는 내 모습 같아 안쓰러워 보이기도 했고.


수능을 보고, 그리고 스무 살이 되면 실행에 옮기는 것 중 하나가 '운전면허학원 등록하기'가 아닐까 싶다. 내 주위에도 당연한 듯 운전면허부터 취득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나는 20살이 되었을 때도, 30살이 되어도 운전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우선 겁이 많은 쫄보라 운전을 한다는 건 상상도 하지 않았고(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운전 감각도 없어 자전거를 타도 계속 멈추느라 걸어서 30분이면 갈 거리를 자전거로 1시간 걸리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가끔 운전을 하는 꿈은 무서운 꿈이 되었다. 꿈속에서도 나는 운전을 못하는 사람인데, 운전을 하느라 진땀을 빼기 때문에.  그런데 자동차라니! 말도 안 된다. 그런 내가 도전했다. 운전면허 취득하기에!


운전은 처음이라서...
진지하게 바보인가 생각했다


 "쉴 때 운전면허 따 놓으면 어때?" 아빠가 말을 꺼내셨다. 나와는 거리가 멀고 두렵기만 했던 운전면허를 두 번째 스무 살을 맞아 큰 도전을 해보기로 한다. 학원을 알아보기 위해 검색할 때는 일주일 만에 땄다는 블로그 후기들이 있어 '오 그래 10일 정도면 여유 있겠다'라고 생각했다. 큰 오산이 아닐 수 없었다.


수능도 끝난 겨울방학인 성수기 2월에 호기롭게 등록했기에 3월에나 장내 기능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나의 계획 10일은 물 건너갔다. 그럼 그 사이 필기시험부터 어서 합격해두자 하고, 학원에서 준 얇은 문제집을 열심히 풀었다. 96점으로 시험장 감독관에게 칭찬을 받으며 합격했다. 이 정도면 시작은 좋았다. 자신감도 붙었다. 문제는 장내 기능 수업 시작부터 삐걱댔다.

 


오랜만에 씩씩하게 결심한 나의 결단력이 민망해지게 운전면허학원이란 나에게 자존감과 자신감을 잃게 만드는 곳이었다.  땀나는 긴장 속에 수업을 듣는 건 기본이고 웬만해선 혼남으로 수업이 마무리가 되었다. 수업이 끝나면 내가 진짜 바보는 아닐까 하고 진지하게 의심을 하게 하는 곳.


"아니 그렇게 하지 말라고요. 말라니까요!" 처음에 핸들 잡는 연습을 하는데 강사님의 언성이 자꾸 높아졌다. 한번 알려주면 한 번에 아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그렇지 못하다. 참다가 순간 화가 나서 결국 "지금 긴장해서 하고 있는데 왜 언성을 높이세요! 더 주늑들어서 안되잖아요. 한 번에 못할 수 있죠"라고 마음에 있는 말들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래, 운전은 생명과 연관되니까 제대로 잘 배워야 하는 건 나도 잘 안다. 당연히 긴장하면서 배워야겠지만 대체로 그러면 더 긴장이 되어 못하는 수강생이 더 많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강사님도 기분이 안 좋아지셨는지 그 이후로 시간 채우기를 하신 느낌이 들었다. 왜냐하면 우회전 좌회전을 감으로 하라고 하셨으니까(나 운다ㅜㅠ). 처음 운전대 잡는 사람에게 감이 있는 건가요?(나한테 왜 그러세요? 엉엉ㅠㅜ) 집에 가고 싶었다.


그렇게 첫 2시간의 수업은 어쩌면 당연하게도 정말 무엇을 배웠는지 모르게 지나갔다. 그리고 다음날 다른 강사님에게서 2시간을 마저 배우는데 핸들 잡는 것부터 다시 배웠고, 시험은 바로 안보는 게 좋을 것 같다는 강사님의 결론으로 교육을 마쳤다. 휴. 결국 2시간 추가 장내기능교육을 받고 커트라인 80점으로 합격했다. 너무 신나더라. 그리고 엄마가 운전할 때 옆에 앉아 "엄마, 브레이크는 3번에 나눠 밟아야 해"라고 했던 게 생각났고(필기 공부할 때 배웠다), 전화해서 사과드렸다.



두 번째 스무 살, 세 번째 스무 살에도 도전을


도로주행 교육 때 만난 강사님은 당근과 채찍을 적절하게 주셔서 다행히 추가 도로주행 교육은 안 해도 될 것 같았다. 그렇게 6시간의 교육을 마치고 도로주행 시험을 앞두었다. 점심도 안 먹었는데(사실 오트밀 셰이크는 마심) 소화도 안 되는 것 같고 심장이 터져 나올 듯 너무 떨렸다. '나는 천재다! 잘할 수 있다!'를 속으로 외치며 마인드 컨트롤을 하고 있었는데 옆에서 "화장실 가고 싶어, 아니 집에 가고 싶어"를 크게 외치는 시험을 앞둔 다른 수강생 때문에 나도 흔들렸다. '나도야!!'


두둥 드디어 도로주행 시험을 봤다. 다른 수강생이 서로 참관인이 되어 다른 코스를 시험 보게 되는데 둘 다 가까스로 합격했다. 시험이 끝나고 감독관한테 엄청 혼남과 우려와 조언의 시간을 갖기는 했지만 결론은 합격했으니 기뻤다!! 나는 두 번째 스무 살의 큰 도전이었고, 서로 참관인이 되어줬던 수강생은 세 번째 스무 살의 도전이었다. 우리 다 어쨋튼 스무 살의 도전이었다. 뭔가 기분이 말랑말랑해졌다.


10일이면 합격할 줄 알았던 나의 운전면허는 두 달이 걸렸고 꽤 비싼 자격증을 얻은 느낌이다. 나의 합격 소식을 전하자 가족들은 내가 대학에 합격한 것처럼 기뻐했다. 조카들을 제외하고 8명의 가족 중 면허가 없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고, 면허를 따려는 의지가 전혀 없던 사람이었기에 놀랐나 보다. 집 앞에 합격 현수막이 걸려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분위기였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성취감이었다. 그리고 극도의 긴장으로 피로가 몰려왔지만 바로 호수공원에 가서 돗자리를 펴고 자축파티를 했다. 풍경도, 공기도 이토록 좋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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