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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주 Jun 13. 2023

날아오르기 위해 활주로는 존재한다

코로나 이후 처음으로 비행기를 탔다. 죽는 줄 알았다.




마지막 비행은 2019년 9월. 신혼여행지에 다녀오면서 탔던 비행기가 대형 여객기였기에 날아오를 때에도, 땅으로 내려앉을 때에도 굉장히 부드러웠다. 몸은 딱 그 상태로 '이륙'을 기억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제주행 국내선 비행기는 날아오르기 위해 활주로를 힘차게 달렸지만 바람 속으로 들어가면서 심각하게 흔들렸다.


우르릉 하며 날아오르는 비행기 안에서 눈을 감았다. 아찔했다. 비행기는 굉장히 안전한 운송수단임을 자각하고 있음에도 바닥에서 떨어지는 건 불안한가 보다. 순간 글감이 떠올랐다. 글밥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날아오르기 위해 활주로는 존재한다'


뇌리에 박혔다. '꼭 이건 글로 써야겠어!' 마음먹으며 브런치스토리 앱을 켰다. '제목으로도, 마지막 한 줄로도 너무 괜찮은데?' 제목창에 입력하고 저장했다.


일본만화 <하이큐>가 떠올랐다. 혼자 밥을 먹을 때에나 외출 준비를 할 때, 즐겨본다. 하이큐 세계관은 일본 남자고등학교 배구부가 중심이다. 씩씩하며 즐거운 기운이 넘치는 남고생들의 으쌰으쌰 하는 모습에 같이 뛰고 싶어 진다. 가장 좋아하는 인물은 주황색 머리의주인공 히나타이다. 키가 매우 작지만 탄력성과 운동 신경이 뛰어나 새처럼 날아오른다.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배구를 잘하기 위해 달려가는 걸 주저하지 않는다. 그게 참 부럽고 신기하기만 하다.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히나타의 포지션은 (장신의 선수들이 주로 맡는) 미들 블로커이다. 아주 높이 뛸 수 있기에 먼저 날아올라 블로킹을 하는 것이다. 이때 히나타의 도움닫기 거리는 일반 선수들의 몇 배나 되고, 다른 선수들보다 먼저 날아올라야만 블로킹을 성공할 수 있기에 이야기 속에서 히나타는 경기 중 계속해서 뛰고 날고 또다시 점프한다.


처음에 히나타를 봤을 때는 좀 이상했다. 승리에 대한 집착과 끊임없이 노력하는 모습이 나와 너무나 달라서다. 하지만 전체 시즌을 다 돌려보고 또 보면서 그의 매력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일에 순수함으로 올곧게 나아가는 그는 참 멋졌다. 고등학교 1학년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는 가정이긴 하지만, 단신임에도 스파이커로서 배구를 잘하고 싶다는 열정으로 도전하고 실패하고 다시 일어나 전투를 치르는 그의 모습에서 듬직함이 느껴졌다.


어쩌면 나는 어릴 적부터 활주로 없이 날아오르길 강요받았던 건 아닐까? 한두 번의 기회만으로 늘 뭔가 잘 해내길 원하셨던 부모님 때문에 항상 긴장했고, 실패하면 어김없이 질타를 받았다. 한 번 더 해보면 잘할 수 있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면, 처음에는 실수할 수 있다는 다독임을 받았더라면 날아오르길 포기하지 않았을 텐데.


작은 몸집의 국내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급작스럽게 터뷸런스가 발생했다. 긴급하게 승무원의 안내 방송이 울렸다. 이 근처는 이런 기류가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그 말 한마디가 긴장했던 마음을 달래주었다. 그게 뭐라고. 그 후에도 몇 분간 작은 비행기는 탈탈탈 떨며 계속 비행했다. 아무도 놀라지 않았고 자기 자리에 앉아 안전하게 날게 되기까지 눈을 감고 쉴 수 있었다.


처음 하이큐를 보았을 때보다 요즘 나는 조금 더 히나타에 가까워지고 있다. 무엇이든 한 번에 잘하려고 하지 않는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에 부족한 부분이 있더라도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일단 해봐야 더 잘할 수 있을지, 재미를 느낄 수 있는지 알 수 있으니까.


아직 공기의 저항에 무섭고 떨리는 아기새지만

언젠가 큰 여객기처럼 묵직한 덩어리와 날개로

바람을 가르며 날고 싶다.


더 높이 날기 위해

더 길게 활주로를 달려갈 수 있는 몸집을 키우자.


날아오르고자 하는 이에게

활주로는 언제나 열려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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