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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주 Mar 03. 2021

나만의 작업 공간, 꾸비꿀로

시간 한정 스터디룸

이 글은 하트온 작가님과 함께 하는 '자기만의 서재 공간 꾸미기 이벤트'에 참여하는 인증 글입니다.


꾸비꿀로

<중년도 스페인어 하고 싶다>라는 매거진을 발행하시는 김 선 Sun  Kim 작가님이 계신다. 예전에 멕시코에 주재원으로 계시면서 사용하셨던 스페인어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주시고, 생활 속에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는 언어들을 스페인어와 연관 지어 재미있게 알려주신다. 그중에 뇌리에 선명하게 박힌 것이 바로 'cubiculo[꾸비꿀로]'이다. cubi(정육면체) + culo(명사형 접미사)로 만들어진 이 단어는 작은 방이나 연구실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때부터 '나만의 꾸비꿀로'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현재 집에서 주로 생활하고 있지만,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만의 작업 공간'은 어떤 곳이길 원하는지 생각해 보았다.


첫째, 작업하는 중에 시선이 분산되지 않는 환경이 좋겠다. 책상 위나 주변에 작업과 관련 없는 것들이 쌓여있으면 치우고 싶어 진다. 그러면 집중력이 흐려지게 되므로 시선 닿는 곳은 정리하기로 했다.


둘째, 습도, 온도, 조도가 일정하게 조절되면 좋겠다. 알레르기성 결막염과 비염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그래서 습, 온, 조 이 세 가지가 딱 맞아떨어지지 않으면 어느샌가 '에취'소리를 내게 된다. 온습도계로 방 안 공기 상태를 늘 점검하면서 가습기와 안방 문으로 방 안 습도와 온도를 조절하기로 했다. 낮엔 커튼을 열어 자연광을 방안에 들이고 스탠드로 조도를 높여주었다. 그랬더니 작업물 위에만 빛이 비치어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무얼 하여도 푹 빠져들게 만드는 밝기인 것 같다.


셋째, 아늑하면 좋겠다. 그래서 인형들을 함께 배치했다. 인형들마다 지난 추억이 담뿍 담겨 있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포근해진다. 집중 안될 때, 잠시 바라보고 있으면 침실을 인형 천국을 만들고 싶었던 어릴 적 소망이 실현된 것을 보며 만족감을 얻을 수 있다.


넷째, 창을 잘 이용하고 싶다. 학창 시절부터 공부할 때, 창을 조금씩 열어두었다. 공기의 질을 조절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더 큰 이유는 ASMR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살았던 곳들이 조용한 주택가였으므로, 아이들이 골목에서 노는 소리는 꽤 괜찮은 백색소음이 되어주었다. 평소에는 창을 책상 앞에 두거나 창을 책상의 왼편에 두어 밝기를 조절했다. 그러나 이번 배치 때에는 책상에 앉았을 때 창이 내 등 뒤에 있도록 했다. 지금 사는 곳이 큰 도로 옆이기도 하고, 바람이 많이 불기도 해서 시끄러워서다.


다섯째, 전자 기기를 사용하기 편리했으면 좋겠다. 노트북이나 아이패드, 스마트폰, 블루투스 스피커, 스탠드 등 다양한 전자 제품을 작업대에서 사용하고 있다. 안방으로 오기 전에는 충전하려면 콘센트까지 이동해야 해서 불편했다. 그래서 독서대 뒤에 4구 멀티탭을 놓았다. 무척 편리해서 즐거워졌다. 생각만 하고 실행에 옮기지 못했던 것이 현실화되면 이렇게 기쁘다.


남편이 사준 큰 곰인형과 토끼인형, 코알라 인형 세트. 그리고 내가 미니소에서 데려온 스탠딩 토끼. 이 정도면 나한테는 적당히 깨끗하다.

위의 4가지 조건을 다 갖추었기 때문일까? 안방에 자리한 작업 공간에서 글을 쓰는 일은 무척 즐겁다. 집중도 더 잘 되고 무엇을 하든 더 재미있는 것 같다. 클럽하우스에서 '스타벅스 매장 음악방'에 들어가 재즈음악을 틀어놓으면 마치 도심의 어느 한 스벅에 앉아 글을 쓰는 것만 같아서 아주 좋다.


그러나 한 가지 아주 큰 안타까움이 있다!! 안방에다 책상을 놓는 순간!! 시간 한정 스터디룸에 갇히게 된 것이다. 독특한 집 구조로 인해 안방이 거실 역할을 동시에 감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식사 시간, 영상을 보는 시간, 운동 시간 등 뭘 하든 안방에서 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남편이 일하러 간 사이에는 뭐든 할 수 있지만 남편이 있는 동안에는 책상을 사용할 수 없다. 이 문제를 놓고 남편과 다시 논의해보았다. 책상을 원위치하거나 옷방으로 옮기는 것을 어떨지, 아니면 안방 안에서 다른 곳으로 위치를 바꾸는 건 어떨지 말이다. 하나 뾰족한 수는 없었고, 여러 가지 이유를 충족하는 지금 작업 공간은 퍽 만족스럽기에 이 집에 살고 있는 동안에는 이대로 두는 것이 좋겠다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함께 이벤트 글을 써주신 '하트온 작가님'께서 올려주신 글에서 비슷한 일화를 발견했다. 식탁에서 안방으로, 그리고 지금의 작업 공간으로 옮기시면서 작가님만의 꾸비꿀로를 만들어가신 역사가 있었다. 나도 언젠가는 작가님처럼 온전히 나만을 위한 작은 공간을 마련하고 싶다. 하트온 작가님처럼 분명히 이 집에도 '나오미 만의 꾸비꿀로'를 만들어낼 작은 공간이 분명 있을 것 같은데! 아직 찾지 못했다. 닥터 스트레인지처럼 시간을 돌려 이사 직전, 아무것도 없던 상태를 떠올리며 이 집에 대한 고정관념을 버리고 다시 생각해보아야겠다.


전업주부이자 작가인 이것이 나에게는 무척 행복한 고민이다. 가족들이 쾌적하게 살 공간을 마련하는 동시에 나의 작업을 순조롭게 진행할 수 있는 꾸비꿀로를 찾아 헤매는 이 시간이 나는 참 좋다. 혹시 '나만의 작업 공간'을 원하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어떤 조건을 갖추고 싶은지 생각해보고 일단 한 번은 옮겨 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어떤 곳에서든 자신 만의 꾸비꿀로를 만들어 내는 일은 가능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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