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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주 Jul 13. 2023

지금 여기, 수다

초임 시절, 시간만 나면 모여서 수다 떨던 선배들이 참으로 이상해 보였다.




며칠 전, 사회복지 현장실습을 시작했다. 2015년쯤, 사회복지사 2급 과정 이론 과목은 모두 끝냈는데 여러 사정으로 실습을 하지 못해 자격증을 취득하지 못하고 멈췄다. 같이 공부했던 동생이 사회복지 실습을 해보자 권유하여 이번 여름에 도전하게 되었다.


우리가 선택한 사회복지기관은 한 지역아동센터이다. 학생을 계속 만나왔던 동생과 나는 아동들을 주 클라이언트로 하는 기관을 실습지로 자연스럽게 섭외했다.


실습 첫날 새벽, 오랜만에 스트레스 가득한 학교 꿈을 꿨다. 가기 전부터 괴로울 것을 상상하며 긴장했던 것 같다. 그러나 현장은 생각보다 평화로웠다. 워낙 많은 학생들과 지내다 보니 크고 작은 트러블은 매일 있기 마련이라 아주 힘들진 않다고 여겼다. 혼자 30명 이상의 학생을 지도하고 한 학급 또는 한 학년 전체를 책임지던 것과 비교하면 전체 책임자가 따로 있기에 훨씬 수월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5시에 잠이 깼음에도 일어나지 못했다. 몸이 말을 안 들었다. 그래서 계속 누워있었다. 지난주까지는 학원 숙제하느라 새벽에 억지로라도 일어났어야 하는데 지금은 그런 상황은 아니라서 그냥 좀 더 잤다. 동생은 둘째 날을 마치고 몸과 마음이 굉장히 지쳤다고 했다. 나는 그래도 평화로운 편이라고 생각하며 돌아왔다.


그런데 삼일 째 되던 날 오전,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음식물 쓰레기를 정리하고 들어왔는데 이상하게 몸에 땀이 너무 많이 났다. 재활용 분리수거도 하려다가 쓰러질 것 같아 씻고 시원하게 해 놓고 쉬는데 땀이 주룩주룩 흘렀다. 몸이 무겁고 잘 움직이지 않았다. 글을 쓰고 싶은데 집중이 안 되고 슬라임처럼 축축 늘어졌다. 몇 시간을 그렇게 있다가 갑자기 알았다. 몸살이 난 것이다.


그날은 실습 후 동생과 함께 저녁을 먹을 여유가 생겨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눌 수 있었다. 3일 간 있었던 일들, 적응하느라 느낀 고단함, 사회복지사님들과 실습생 선생님들, 그리고 클라이언트인 초등학생들. 잘 맞아서 기분 좋게 학습지도를 한 경험, 우리를 거부하고 젊은 대학생 멘토링 선생님만 찾아가는 아이들로 인해 느낀 거절감, 사회복지 실습을 하면서 느낀 것들.

한참을 떠든 후, 동생이 외쳤다.

"언니, 더 이상 그곳의 일이 생각나지 않아! 신기하다!"




초임 때, 자칭 제일 자주 모이고 가장 사이가 좋기로 유명한 학년에 소속된 적이 있다. 쉬는 시간마다, 점심시간마다, 방과 후마다 어찌나 자주 모이는지 정말 귀찮았다. 시간을 죽이는 수다는 싫었지만 학년회의라는 명목으로 어쩔 수 없이 모여 앉아 있어야 했다.


아줌마들이 대부분이었던 선배들은 집안 이야기, 씨월드 욕, 자녀 이야기, 저녁 반찬, 집안일 등 주부라면 늘 달고 사는 레퍼토리에다 자기 학급 어린이들과 학부모에 관한 넋두리까지 매일 풀어놓곤 했다. 젊은 나는 끼어들지도 못하게 하면서서 어찌나 말이 많은지 엄청 짜증도 났다.


그런데 동생과 몇 시간 동안 충분히 이야기하고 나서 느낀 '지금 여기'에 있는 '나'에게로의 복귀 현상을 경험하고 나서, 매일의 수다가 선배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부분이었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스트레스 해소. 대충 느낌으로는 알겠는데 설명하기 힘든 단어다. 관계적인 일이든 업무적인 사고든 타격을 입는 일이 있다면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러면 소용돌이에 빠진 것처럼 그 일에 정신적인 함몰을 경험하게 된다. 곱씹고 곱씹으며 이미 지난 일을 지속적으로 경험하는 복합적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것이다.


'내가 가장 평화로운 수 있는 나 자신'에게서

자꾸만 멀어지는 그때,

'지금 여기에 있는 나'에게로

다시 돌아올 수 있게 하는 어떤 방식이

스트레스 해소법이구만!


며칠 간 택시를 타고 통근하다 오늘은 드디어 자차로 이동했다. 가고 오는 길, 동생과 나는 살기 위해 적극적인 수다를 떨고 경청하며 정신을 '현재의 나'에게로 돌렸다.


스트레스를 털고 날려버리니 글을 쓸 수 있는 힘, 저녁을 만들어 먹을 힘, 지친 나를 돌볼 힘이 새록새록 생겨남에 감사가 솟아난다.


지금 여기, 수다!

언니들의 생존법을 드디어 터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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