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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주 Mar 23. 2021

이별 여행

사랑하는 그를 두고 오다.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음을 받아들이며.





태어나 자란 곳은 안동이지만, 제2의 고향은 경기도 고양시이다. 두 지역에서 약 20년씩 살았다. 1998년 겨울, IMF로 인해 경제 사정이 어려워진 우리 가족은 일산으로 이사했다. 강도, 산도 없는 삭막한 곳이었다. 가장 가까운 강은 한강이었고, 최근거리의 산은 북한산이었다. 물멍과 산멍으로 키워진 시골 소녀에게 도시는 안식을 주지 못했다.


일산에 살면서 꽤 오래 방황했다. 우울증으로 괴로워한다는 말을 들으신 친척분들이 지방으로 내려와 근처에서 같이 살자고 권유하셨다. 여러 사정으로 인해 혼자 먼저 내려와 있다가 지금도 계속 지방에 살고 있다.  후에도 엄마는 동생과 함께 일산에 살고 계셨다. 작년 가을, 동생이 결혼하면서 혼자 남게 되시자 드디어 이사를 결정하셨다. 이사를 도우러 올라갔다. 이사 전날 도착하여 예전에 거닐던 곳도 가보고, 살던  근처에도 가보았다.


만감이 교차한다는 것이 이런 것일까. 두려워했던 감정들이 한 번에 살아났다. 불안, 공포, 노이로제도 살짝 느꼈지만, 주된 감정은 그리움과 섭섭함이었던 것 같다. 마음이 잔잔하게 들끓었다. 추억들과 함께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들이 모두 떠올랐다. 그러나 마지막이라는 마음가짐은 그 모든 것을 갈무리하려 했다.




1998년 12월 21일. 고3 겨울 방학 날. 드디어 일산 가는 날이다. 아빠는 차 뒷자리에 잠들었던 나를 깨우셨다.

"OO야, 다 왔어. 일어나 봐."

차창 밖으로 주먹만 한 주백색 전구가 대로변 가로수에 여유롭게 장식되어 있는 것이 보였다. 지하철 한 정거장 정도의 범위가 밝은 주황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꿈속을 거니는 것 같은 황홀함, 시간이 멈춘 것만 같은 몽롱함으로 설레기 시작했다. 대입이 잘 안 풀려 좌절했던 마음에도 새로운 도시는 따스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눈물이 펑펑 쏟아진다. 모니터가 잘 보이지 않는다. 아빠가 세상에 안 계시는구나 하며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첨부터 일산이 싫었던 건 아니다. 아빠가 늘 함께 해주셨기에 학교에 괴로운 일이 있을 때에도, 인생의 방황기에도 견딜만했다. 우울증이 아빠가 돌아가신 후에 온 것도 그 영향이 큰 것 같다. 인생의 버팀목을 잃어버린 슬픔과 상실감으로 인한. 엄마가 일산을 떠나시게 되니, 아빠를 영원히 두고 오는 것 같아 많이 슬펐다. 돌아가신 지 10년이나 지났지만, 이제야 아빠를 떠나보내는 느낌. 서럽고 속상하고 미안했다. 아빠도 이번에 함께 가시면 좋을 텐데.

 

"아빠, 엄마가 이번에 지방으로 이사를 했어요. 가보니까 원래 살던 곳보다 방도 많고 널찍하더라고요. 평생 친척들 돌보시고 어려운 사람들 보살피시느라 좋은 집이나 멋진 차, 예쁜 옷 포기하시고 사셨는데.. 아빠도 이런 곳에서 살아 보시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빠, 보고 싶어요. 많이 많이 보고 싶어요."


집으로 돌아온 후 며칠을 울었다. 격동하던 감정의 파도는 단지 제2의 고향을 떠난 서운함 뿐 아니라, 그곳에서 돌아가신 아빠를 혼자 남겨두고 와야 했던 아픔으로 인한 것임을 글을 쓰면서 깨닫는다. 아빠 장례식 때 꽁꽁 숨겨두었던 눈물이 모두 터져 나온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제라도 그를 위해 마음껏 애도할 수 있게 됨에 감사했다.



(Pixabay로부터 입수된 Free-Photos님의 이미지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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