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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주 Jul 03. 2021

그들의 시작

[글모사 9기] 주제 3: 시작

어느 토요일 아침, 거실. 효성이 옛날 앨범을 들고 와 혜정과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엄마, 이 사진은 어디서 찍은 거예요?"

"아, 이거. 신혼여행 가서 찍은 건데 외삼촌이 찍어주신 거야."

"외삼촌이요? 신혼여행에 외삼촌이 따라가신 거예요?"

"아니. 신혼 여행지 근처에 출장 오셨다가 잠시 들르셨어. 숙박했던 호텔에."

"아하, 그렇구나. 근데 엄마 여기 너무 이뻐요. 공원인가?"

"응. 해상공원이래. 식물들이 아름답게 자라고 있었지. 날씨도 너무 좋았고."

"엄마 기분 좋았겠네요. 사진 속에 엄마 되게 젊고 예쁘다."

"그럼. 사랑하는 사람이랑 결혼해서 처음으로 여행 갔는데 기분 좋지."

"나도 엄마처럼 마음씨 좋은 사람이랑 만나서 결혼하고 싶어."

"우리 효성이 벌써 결혼하고 싶은 거야?"

"응. 엄마랑 아빠가 너무 좋아 보여서. 나도 그러고 싶어."


방에 있던 진성이 거실로 나온다.

"무슨 이야기 해요? 되게 재밌는 거 같아서 나와봤어."

"우리 진성이 나왔구나. 여기 앉으렴."

"형, 엄마랑 아빠 사진 보고 있었어. 이것 봐봐. 엄마 되게 이쁘지?"

"응, 그러네. 이거 신혼여행 사진이잖아."

"어, 형은 알고 있었어?"

"응, 엄마한테 물어봤지."

"진성아, 우리 효성이 벌써 결혼하고 싶대."

"11살인데?"

"응. 나도 엄마랑 아빠처럼 즐겁게 살고 싶어."

"그렇구나. 나는 그래도 하고 싶은 거 좀 해보고 싶은데."

"진성이 생각도 좋고, 효성이 의견도 너무 좋은데, 엄마는. 무엇보다 자기를 알아갈 시간을 갖는 게 중요하니까. 천천히 생각해보렴."


혜정의 말을 듣고 있던 효성이 갑자기 질문을 한다.

"아빠, 엄마랑 왜 결혼했어요?"

"우리 효성이, 아빠랑 엄마 만난 게 궁금해?"

"네. 저 빨리 결혼하고 싶어서요."

"하하하. 우리 효성이가 엄마 아빠한테 손주 안겨주고 싶어?"

"그것도 그거지만 엄마랑 아빠처럼 사랑하면서 살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은 사람 만날 수 있는지 너무 궁금해서요."

"하하하하. 그랬구나. 효성이는 엄마랑 아빠가 만난 이야기가 궁금한 거야?"

"네, 얼른 이야기해주세요."

"그러니까 말이지. 엄마랑 아빠는...."


혜정과 남식은 소개로 만났다. 혜정의 동생 정호와 남식이 대학원 동기였고, 둘은 아주 친한 사이였다. 남식이 정호보다 3살 많지만 기숙사 생활까지 함께 한 그들은 거의 형제 같은 느낌이었다. 함께 먹고 함께 운동하고 이야기하면서 우정을 쌓았다. 가끔 서로의 의견이 다를 때에도 결국에는 웃으며 마무리할 수 있을 정도였는데, 그건 남식의 인품 때문이었다. 정호는 성격이 화통하고 껄껄 잘 웃는 성격인 반면에 가끔 욱하는 면이 있어 사람들이 대하기 어려워하는 면이 있었다. 그러나 남식은 정호의 인품 전체를 볼 줄 알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작은 단점 정도는 그냥 품어버리는 사람이었다. 그러기에 정호가 남식에게 자신의 누님을 소개해 주는 일은 너무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정말요? 그래서 외삼촌이 신혼여행 갔던 두 사람을 만나러 가셨던 거구나."

"그렇지. 정호 외삼촌이 엄마도, 너희들 아버지도 너무 좋아하고 아끼셨던 거지."

"외삼촌도 그때쯤 결혼하지 않았어요?"

"응. 맞아. 그리고 서로의 신혼집이 근처에 있어서 서로 가깝게 지냈어. 아이들 낳고 키우고 하면서 아주 재미있었지."

"지나 누나랑 지온이랑 놀던 생각난다. 외할아버지 댁 가서 같이 놀았잖아요."

"그렇지. 너희들 넷이 나이가 비슷해서 참 좋았어. 우리는 아들만 둘인데 그 집은 딸만 둘이라."

"그러고 보니 지나랑 지온이 못 만난 지 좀 됐네요. 우리 가족이 이사 와서 멀어져서 그런가 봐요."

"응. 아빠 사업 때문에 경기도로 와 버려서."

"방학 때 되면 외삼촌네 집에 놀러 갈래요."

"그러자. 엄마랑 진성이랑 효성이랑 다 같이 가자."

"이야, 신난다. 그렇지, 형?"

"응. 그러네."


초등학교 4학년인 효성은 이제 중학생이 된 형 진성을 쳐다보며 씽긋 웃는다. 어릴 적부터 가깝게 지내던 지나와 지온을 만날 생각을 하니 진성도 즐거워진다.


저녁이 되어 남식이 퇴근을 한다. 혜정이 아이들을 부른다.

"얘들아, 아버지 오셨네."

"네~!"

"아버지 잘 다녀오셨어요."

"오냐, 우리 진성이, 효성이 잘 지냈어?"

"네, 어서 들어오세요."

"여보, 시장하시죠? 바로 식사하실래요?"

"응, 많이 고프네. 근데 먼저 좀 씻어도 될까?"

"그럼요. 저는 밥 차릴게요."

"아냐, 여보 같이 해. 빨리 씻고 올게."

"고마워요."


혜정과 남식의 대화를 진성과 효성이 쳐다보며 둘이 쿡쿡거리며 웃는다.

'형, 엄마랑 아빠는 아직도 신혼인가 봐. 킥킥'

'그러게. 크크크'

"이 녀석들, 아빠랑 같이 샤워할래?"

"저는 아까 했어요. 엄마랑 상 차릴게요."

"아빠, 나는 같이 할래요. 잠깐만요."


다정한 네 식구가 식탁에 둘러앉았다. 소박하지만 맛깔난 음식, 잔치국수가 메인이다.

"여보, 정말 당신은 면의 달인인가 봐요. 소면이 너무 탱탱하고 부드러워요. 와. 진짜 맛나네."

"진짜 맛있어요, 아빠."

"잘 삶겼어? 하지만 잔치국수의 메인은 양념장이지. 고마워요. 좋아하는 잔치국수 해줘서."

"별말씀을요. 애들아, 우리 집 면의 달인은 누구지?"

"아빠요!"

"그럼 엄마는?"

"엄마는 주부 9단!!"

호호, 하하 작은 것에 만족하며 즐겁게 살아가는 그들의 식탁에 작고 예쁜 웃음꽃이 피어난다.


어느 날, 남식이 공부하고 있는 진성을 찾아간다.

"진성아, 잘 되어 가니?"

"네, 재미있게 하고 있어요."

"아빠가 도와줄 일은 없고?"

"저기... 실은 저 영어학원이랑 수학학원에 다니고 싶어요. 다른 과목은 성적이 꽤 괜찮은데 영수는 학원을 안 다니고 혼자 하려니까 한계가 와서요."

"그랬구나, 혼자 해보니까 힘들었구나."

"네, 암기 과목들은 아빠가 알려주신 대로 하니까 쉽게 이해도 되고 점수도 잘 나오더라고요. 근데 영수는 선생님들이 진도를 너무 빨리 나가셔서 설명을 제대로 안 하시니까 세세하게 알지 못해서 좀 답답해요."

"진도가 빠르고 상세하게 설명 안 해주시면 우리 진성이 많이 답답했겠네."

"그런데... 학원이나 과외 같은 거 받는 친구들은 별로 어렵지 않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혹시 우리 형편에 너무 힘들지 않으면... 학원 가고 싶어요..."

"응, 우리 진성이 학원 필요하면 가자. 혹시 과외도 괜찮니?"

"과외요? 과외하면 좋지만 너무 비쌀 거 같아서.."

"공부하는 것도 힘든데 부모님 사정까지 생각하느라고 우리 진성이가 말을 못 했구나. 걱정하지 말어. 엄마랑 아빠는 진성이와 효성이를 위해서는 뭐든 할 수 있어. 그리고 회사도 열심히 성장하고 있으니 큰 무리가 되진 않을 거야."

"아, 그래요? 몇 달 전에 엄마한테 말씀드리니까 아직 회사가 틀을 잡는 중이라 조금 어려울 것 같다고 기다려 보자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아빠한테 이야기를 못했구나. 이제 안정기에 접어들었어. 아주 좋아, 지금은."

"너무 감사하네요. 걱정했어요."

"그랬구나. 실은 아는 친구 아들이 과외를 하고 싶어 한다고 하더라구."

"그래요? 와!! 신난다. 누군데요?"

"너도 본 적 있을 거야. 재철이라고 낚시 좋아하는 친구 알지? 그 아들이 이번에 대학 들어갔거든."

"재철이 아저씨요? 알죠~. 그럼 일휘 형이 과외해주는 거예요?"

"응. 일휘한테 부탁하려고."

"아빠, 감사합니다! 아빠 최고!!"


진성이 양손 엄지 손가락으로 따봉을 날리자 남식이 씩 웃으며 방을 나선다. 거실에서 남식이 재철에게 전화를 걸어 대화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남식과 혜정은 서로를 많이 사랑했고, 또 아이들도 아주 많이 아꼈다. 진성과 효성도 그걸 잘 알았고, 서로의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할 만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가족은 자라고 있었다. 남식의 회사가 탄탄하고 규모 있게 성장해가고, 아이들도 쑥쑥 커서 진성은 18살, 효성은 15살이 되었다.


"진성이랑 효성이, 아빠랑 이야기 좀 할까?"

"네, 아빠."

"네."

"고마워. 이리로 앉아봐."


가족이 모두 식탁에 둘러앉았다. 혜정은 남식이 좋아하는 사과를 깎고 있다.


"우리 진성이한테 먼저 이야기할게. 진성이 이제 내년이면 고3이 되지? 그동안 열심히 공부해주어서 고마워. 아빠 회사가 잘 되고 있으니까 혹시 내년에 수능 시험에서 원하는 성적 나오지 않더라도 아빠가 재수까지 보장한다. 마음 편히 공부하렴. 알겠지?"

"아, 진짜요? 아빠~ 너무 감사해요. 수능 시험 아직 멀리 있지만 벌써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아요."

"응, 아빠 회사가 잘 되고 있단다. 걱정하지 말고 공부하면 좋겠어."

"네, 아빠. 정말 고마워요."

"아빠, 그럼 나는?"

"우리 효성이~ 아빠가 오랫동안 봐 왔는데 효성이 혹시 음악 할 생각 없니? 늘 이어폰을 끼고 살고 흥얼흥얼 하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아."

"음악? 뭐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 같은 거? 그쪽은 별로인데..."

"음악이 싫은 거야? 아니면 바이올린, 첼로 같은 게 싫은 거야?"

"음악은 좋은데... 클래식 말고 다른 쪽이 좋아서..."

"알지, 아빠가. 우리 효성이 음악 취향. 아빠도 실용음악 쪽으로 이야기한 거야."

"정말? 정말? 아빠 나 실용음악 시켜줄 거야?"

"응, 엄마도 좋을 것 같다고 하셨지. 그렇지, 여보?"

"네, 노래 듣고 부르고 할 때 즐거워 보여서요."

"난 공부는 하기 싫고 노래만 부르는 배짱이 될까 봐, 그럼 엄마, 아빠가 싫어할까 봐 걱정했는데..."

"그것 봐, 형이 아니라고 했지? 형은 공부를 좋아해서 하는 거고. 부모님이 지지해주시는 것뿐이야. 이제 믿을 수 있겠니?"

"당연히 알고는 있었지만.... 형이 공부하는 거 보면서 자랑스러워하시니까 나도 그래야되나 했지."

"하하하하 우리 효성이도 걱정 근심이 많았나 보네. 아빠가 진작 알아주지 못해서 미안해."

"우리 효성이 그랬구나. 엄마랑 아빠는 우리 효성이나 진성이 형이나 타고난 대로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즐겁게 사는 모습 보면 그걸로 족하단다."

"엄마, 아빠~!"

효성이가 애교를 부리며 엄마와 아빠를 동시에 끌어안는다. 자녀들의 진로에 대해 자신들의 생각을 강요하기보다 타고는 재능과 흥미를 충분히 살려 각자의 최선을 향해 갈 수 있도록 지지하는 부모님 안에서 진성과 효성은 열심히 자라 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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