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효주 Aug 16. 2021

글 1편에 1억을 받는 방법

현대, 아주 최근에 화폐 위조가 너무 심각한 나라가 있었습니다. 위조가 너무 심하다 보니 조폐국에서 만든 정품 화폐의 가치가 액면가의 1/2 수준이 될 정도였어요. 1000원짜리 콜라를 하나 사려면 1000원짜리 2장을 내야 하는 거예요. 왜냐면 내가 낸 돈이 위조된 것인지 정품 지폐인지 알 수가 없어서요 ㅠ 그러다 보니 화폐의 가치가 날짜 지난 신문지보다 못해지는 상황이 되고 말았어요.


국민들은 무엇으로 가치를 증명할까 고민했어요. 가치 있는 것을 찾아 그것으로 화폐를 대신하고자 한 것이죠. 위조가 넘치는 곳에 살던 그 나라 사람들은 가장 중요한 가치가 '진짜'라는 것에 동의했어요.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함께 사용하는 화폐 대신, 각자 만든 것들 중 제일 '진품'이라고 할 만한 것이 무엇인지 머리를 맞대고 생각했답니다.


진정한 가치가 있는 것들을 가려내기 위해 사람들은 몇 가지 조건을 결정했어요.

[조건]
1. 각 개인이 만들 수 있는 것으로 한정한다.
 (공장에서 찍어낸 것 같은 상품 제외)
2. 독창성이 있어야 한다.
3. 휴대성이 좋아야 한다.
4. 진품 여부를 증명하기 쉬운 것으로 한다.


1번 조건에서 획일화, 규격화된 제품들이, 2번 조건에서 남들이 만든 것을 따라 만든 상품들이 모두 제외되었어요. 그리고 3번 조건에 의해 요리, 큰 그림, 너무 큰 예술 작품, 손기술 등이 제외되었어요. 4번 조건을 만족시키기 위해 진품 여부를 증명할 수 있는 AI를 도입하기로 하였어요.


결국, 4가지 조건을 다 만족시킬 수 있었던 건 사람들이 직접 쓴 글자와 글, 사인 등으로 제한되었어요. 그러자 이미 자신의 이름으로 된 폰트(글씨체)를 가진 이들이 큰돈을 벌어들이기 시작했어요. AI에게 인식시켜 진품을 증명하기만 하면 글씨를 쓰기만 해도 그걸 바로 화폐로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죠! 처음엔 글자 한 개의 가치가 100원 정도였는데 1개월이 지나지 않아 글자 하나의 값이 1만 원으로 급등하였어요. 그러자 모든 국민들이 너도 나도 자신의 글씨체를 AI에게 인식시키는 작업에 뛰어들었어요. 하지만 생각보다 종이 위에 펜으로 글자를 쓴다는 것이 얼마나 고된 작업인지 아시죠?


단순히 사인의 위조 여부를 확인하는데 들어가는 양이 아니라 한 사람이 쓰는 모든 글자가 화폐가 되려면 자기만 쓰는 고유한 필체를 증명할 충분한 양, 즉 AI 머신러닝에 필요한 양의 필사(1000장에 육박...)를 해야 했어요! 그래서 시작하는 사람은 많았으나 끝내는 사람들은 극히 적었답니다. 편하게 하려고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순간, 고유함과 독창성이 사라지니 그렇게 할 수도 없고요.


폰트를 미리 가진 사람들에게는 진품 확인 AI가 설치된 매장으로 가서 글자만 써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회가 열리는 듯하였어요! 그러나 이 나라, 어떤 나라인지 아시죠? 위조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은 시중에서 유명해진 폰트를 따라 쓰며 사문서 위조를 하기 시작했어요. 자기 글씨체가 아닌 다른 사람의 필체를 도용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알려진 폰트의 글자 가치가 빠른 속도로 추락하게 되었어요.


그러자 이번에는 AI 머신러닝을 위한 1000장짜리 필사를 마친 사람들의 글씨체가 각광을 받기 시작합니다. 어마 무시한 양을 필사해내고 나서 언제든 진품을 가리는 AI를 통과할 수 있으니 글자를 쓰기만 하면 뭐든 살 수 있고, 할 수 있는 사회가 열린 것이죠~! 게다가 대중에 알려지지 않은 글씨체라는 점에서 이들은 늘 안전하게 자신의 글자를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세대로 등극합니다.


국가에서는 이러한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모든 국민들이 기본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AI 머신러닝을 위한 기초 정보를 50장에 넣을 수 있는 필사 노트를 만들어 무료로 제공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나 위조 화폐로 돌아가던 시대보다 더 빈익빈 부익부가 심각해진 사회를 돌이키는 건 어려워 보였어요. 50장짜리 필사를 끝내고는 생필품을 겨우 살 수 있을 정도의 글자밖에 쓸 수가 없었거든요.


이제 사람들은 유일하고 창조적인 글자, 다른 사람의 생각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 글과 책에 더 높은 가치를 두기 시작했어요. 그러자 이러한 것들을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은 매우 큰 부를 누릴 수 있게 되었어요. 화폐 가치로서 글자 하나하나의 가치를 매기던 사회에서 새로운 글, 아무도 생각해내지 못한 아이디어를 써내기만 해도 하루아침에 갑부가 되는 세상으로 변모하게 된 거예요!


가장 큰 혜택을 본 사람들은 바로 평소에 글을 써 둔 분량이 많은 사람들이었어요. 특별히 말도 안 되는 상상을 많이 하던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들이 서울 강남에 빌딩을 몇 채나 사는 놀라운 일도 벌어지곤 했어요. 블로그나 브런치에 저장된 글을 많이 가지고 있던 사람들은 그걸 자기 손으로 써내기만 하면 되니 돈이 그냥 굴러들어 왔어요.


'위조'라는 편하고 쉽게 남을 속이는 일이 판치던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진짜'라는 것의 가치에 목말라 있었고, 위조할 수 없는 것을 찾기 위해 노력했지요. 그렇게 인간이 가진 유일한 것, 즉 각자의 상상력과 아이디어를 글자로 증명해내는 데까지 다다르게 된 것이었어요. 아직도 가끔 진품을 가려내는 AI를 속이려 드는 위조 전문가들이 있었어요. 하지만 매장에서 바로 경찰서로 잡혀가는 일도 많이 발생하다 보니 그들도 서서히 음지로 사라지게 되었지요.





글쓰기로 돈 버는 기발한 방법. 그 이전에 각 개인의 글씨의 가치가 인정되고 쓰는 만큼 가치를 인정받는 사회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글자의 고유성 위에 내가 써내는 무엇이든 독특하다는 이유로 박수를 받는 사회를 그려보았고요. 상상만 해도 너무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어젯밤부터 어떻게 하면 글쓰기로 돈 버는 기발한 방법을 찾을 수 있을까 고민하다 '조금 다른 세계관'을 써봐야지 했는데, 아침에 일어나기 직전에 꿈에서 '화폐 위조'에 대한 영감을 받아 써보았습니다. 무척 즐겁네요~! 


이미지출처 : Pixabay@twinklyblue82

이전 06화 여유 생길 때, 글쓰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