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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주 Oct 25. 2021

관성을 막아서다 2

<관성을 막아서다> 전편을 발행하고 바로 집에서 나왔다.


노트북, 책 한 권, 차 키, 전화기, 지갑.


평소에 혼자서 꼭 가고 싶었던 카페. 영덕 해파랑 공원 앞에 있는 바다소리로 출발!

갑자기 비가 와서인지 카페 앞으로 들어서는 길이 복잡했지만 약속이 있는 건 아니라서 감사하고 여유로웠다.


해파랑 공원에 주차하려는데 왜 이렇게 하늘이 이쁜 걸까.

아니, 오늘의 하늘은 멋지다는 표현이 어울릴 것 같았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피하려고 우산을 쓰고 바닷가로 다가갔다. 한 손엔 우산, 한 손엔 스마트폰을 들고 훌륭한 하늘을 찍어보려 애썼는데 우산과 함께 내가 날아갈 것 같아 과감히 접어 버렸다. 감사하게도 비가 살짝 그쳐서 영상도 찍고 셀카도 찍었다.


마음이 무척 풍요로워지고 기뻤다.

나오길 잘한 것 같다.

방파제에 부딪치는 바람도 파도도 훨훨 날아다니는 갈매기도 잘 나왔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러던 중 자세히 보니 저기 수평선 바로 위로 무지개가 뜬 것이 보였다.

아주 기뻤다. 아싸!


실컷 사진을 찍고 카페로 들어왔다.

바다 소리 카페는 예쁜 공간이 많아서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다. 크게 사람들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오늘은 내게 어떤 공간이 주어질지 꽝이 없는 뽑기를 하는 느낌이라 좋다.


살짝 추운 느낌이 들었으므로! 따뜻한 게 마시고 싶었다. 이런저런 유명한 메뉴들이 있었지만 오늘은 일탈하기로 작정했으므로 시그니처 메뉴인 게 확실한 '바다 라테'를 시켰다. 당연히 따뜻한 것일 거라고 혼자 믿으면서!


1층과 2층을 돌아다니며 예쁜 곳을 찍었다. 히히히 난 이 시간이 너무 좋다. 사람이 적은 공간에서 나만이 오롯이 그 공간을 차지한 기분이 들어서.


앗, 갑자기 어딘가에서 윙 소리가 난다. 내 왼쪽 주머니인가? 진동벨을 들고 얼른 내려가서 음료를 받아온다. 주인아저씨는 음료 위에 고래 젤리를 띄워주셨다며 미소를 지으셨다. 응? 고래 젤리? 일단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올라왔다.


내가 앉을자리 마련해 놓고, 예쁘게 놓인 음료도 다 찍고 나서! 음료를 한 입!

꿱!!! 이게 뭐야!!! 머그가 아닌데... 난 이것이 따뜻할 거라고 왜 계속 착각을 했을까?

헉...

나쁘지는 않다. 그런데 입에 들어온 음료가 차가워서 한 번 놀랐고, 바닥에 가라앉은 찰랑 끈적거리는 초록색 진액의 맛에 한 번 더 놀랐다. 상큼한데... 너무 생각지도 못해서 그런가 보다. 이걸 먹어본 일이 있고, 또 먹고 싶어서 시켰다면 너무 기분이 짜릿해질 맛인데! 따뜻하고 달달한 커피를 마시고 싶었던 나는 파도에 꿀밤을 맞은 느낌이었다. 흐흐흐 근데 결론은 이걸 시키길 잘했다는 거다. 아무래도 담에 또 시켜볼 것 같다. ㅋㅋ


관성을 깬다는 건 살아오던 방식, 달려가던 속도를 멈추는 것이다. 방향을 바꾸고 태도를 달리하는 것이다. 그래서 메뉴 선택이 너무 탁월하다는 생각이 든 것 같다. 그렇지만 오늘은 너무 놀라서 위쪽에 있는 커피만 먹을 거다. 하하하하


집에서 나오기 전 답답했다.

자꾸 이유 없이 달리려는 관성에 목이 졸리는 느낌이 들었다.

이건 번아웃이 찾아오려는 전조증상이다.

아주 싫다.

윽...


그렇지만 지금은 그걸 알아차릴 수 있고 멈출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하다.

나를 위한 한 시간.

관성을 멈추기 위한 짧은 여유.

마음에 차오르는 풍요로움과 만족감. 그리고 기쁨.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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