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16:14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운전을 하다 보면 역지사지를 5분 안에 실천할 수 있다. 좌회전을 꼭 해야 하는데 직진 차선에 끼어있는 경우 어렵게 좌측 깜빡이를 켜고 '끼워 줘!'를 외쳐 본다. 식은땀 빼며 차선을 변경하고 나면 양보해 준 운전자에감사하는 마음에 안도감이 넘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처럼 급박해 보이는 차를 만나면 자리를 내어주는 게 어렵지 않다.
뚜벅이 시절엔 운전자들의 행동이 이해가 잘 안 됐다. 후진을 하고 싶은지 주차를 하고 싶은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무서웠다. 운전을 배우면서 서서히 운전자들이 어떤 행동을 하게 될지 감이 오기 시작했다. 이동할 때 걷는 것보다 자차를 가지고 다니는 시간이 많은 요즘엔 주로 운전자 모드로 지내는 것 같다.
작년 우회전에 관련된 교통법규가 바뀌었다. 보행자 사망률이 OECD 국가들에 비해 너무 높아 시행하게 되었다고 한다. 보행자 입장으로는 더 안전하게 된 것 같긴 한데 운전자 입장으로는 평소에는 편하게 지나치던 곳을 신경 쓰며 운전하게 된 거 같아 많이 불편하다.
대중교통을 주로 이용하고 많이 걷던 시절에는 우회전하려는 차량으로 인해 횡단보도를 건널 때 불안했다.지금도 뚜벅이로만 다닌다면 우회전 법규를 무척이나 반길 것 같다. 게다가 작년 여름 시행되기 시작한 법규가 해석에 논란이 많아 '우회전 신호'도 도입된다고 하니 더욱 안전하게 길을 건널 수 있겠다는 마음도 들 것 같고 말이다.
하지만 운전자 입장에서는 굉장히 달갑지 않다. 평소 같으면 우회전할 수 있는 상황에도 신호를 기다려서 가야 하니 답답하고 짜증도 난다. 요 며칠 전에도 우회전하기 위해 넘 오랜 시간 대기하다 보니 뭔가 권리를 뺏긴 것 같아 기분이 나빴다. 큰 사거리에 도착했는데 횡단보도에 초록불이 들어와 기다렸고, 그 이후엔 우회전하려고 보니 차량 직진 신호가 초록색이 되면서 오른편 두 번째 횡단보도에도 초록불이 들어온 거다.건너는 사람이 없으면 살펴보고 지나가도 되는데 그날따라 한 분이 있었다. 근데! 보행자 신호가 초록불이 되기 전에 갑자기 뛰어내려오셔서 깜짝 놀랐다.
언짢은 기분이 생겨 왜 그런가 돌아보니 빨리 가고 싶은 마음이 충족되지 않아서였다. 당연히 기다리는 게 맞는데도 하고 싶은 대로 되지 않는 상황이 맘에 안 들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감사할 거리를 찾아보았다. 두 번째 횡단보도 앞에 서 계시던 분이 있었음을 인지하고 있었던 점, 그래서 신호에 맞게 천천히 운전할 수 있었던 점, 그래서 내려오신 아주머니가 안전하게 건널 수 있는 거 리르 유지할 수 있었던 점, 나도 그분도 교통 흐름도 사고 없이 흘러갈 수 있게 된 점. 떠올려보니 감사할 것이 참으로 많았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생명'과 '안전'이라는 기준이 내 속에서 너무 쉽게 간과되고 있다는 걸 발견하고 화들짝 놀랐다. 법규가 세분화되는 이유는 사람들의 안전한 생활을 위한 것인데 조급한 마음과 이기적인 태도가 그것을 답답하게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타인을 바라보고 그들의 언행을 비판하는 일은 너무나 쉽다. 하지만 자기 속에 어떤 것이 숨어 있는지 보는 일은 너무나 어렵다. 내가 만일 운전하는 모든 순간에 사랑으로 하고 있었다면 '역지사지'적 실천 뿐 아니라 교통법규 준수도 기쁜 마음으로 할 수 있었을 터다. 그동안 문제의 큰 사거리를 지날 때면 푹푹 가슴을 찌르던 짜증이 '사랑 없음'에서 온 것이라니 참으로 무섭다.
교통은 흘러가는 것이라고 운전면허학원에서 배웠던 기억이 난다. 목적지에 잘 도착하기 위해서는 나, 너, 우리 모두가 하모니를 이루어야 할 것이다.
운전자 뿐 아니라 보행자들도 아름답게 흐르기 위해 사랑의 마음을 회복해야 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