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이었다. 코로나로 사내 식당은 시차제가 적용되어 층별로 식사 시간이 다르다. 간격을 철저히 지켜서인지 식당은 크게 붐비지 않았다. 점심시간에 드라마를 보며 혼밥을 즐기는 편이지만 오래간만에 옆자리 동료와 함께 점심을 먹으러 식당으로 내려갔다. 하지만 말 그대로 같이 내려갈 뿐, 마주 보는 자리에는 칸막이가 있고 대각선으로 앉게 되어 있어 밥 먹을 땐 얼굴도 보이지 않는다. 자리를 찾다 긴 탁자 끝, 통로 쪽에 앉았다.
통로 쪽에 2-3명이 지나가고 있었다. 밥을 먹고 반납하러 가던 길이었던 것 같다. 앞서 가던 사람이 무슨 이유인지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뒤따라 가던 사람이 관성을 이기지 못하고 부딪힌다. 식판의 남은 음식들이 바닥으로 쏟아졌다.
"어이쿠, 갑자기 멈추면 어떻게 해!"
당황하던 두 남자는 자신들의 몸에 음식이 묻었나 살피더니 바닥에 흘린 지저분한 음식물을 보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우리가 치워야 하나?" 하더니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돌아오지 않았다. 닦을 사람을 불러오지도, 스스로 닦지도 않은 채 가버렸다. 통로는 식판을 반납하러 가는 사람들과 식사 자리를 찾는 사람들이 다니는 메인 통로였다. 식판을 들고 걷기 때문에 발아래를 보지 못한다. 걷다 미끄러지기 딱 좋은 상태였다. 몇 명이 지나가다 넘어질 뻔했다.
보다 못해 내가 지나가던 주방 관련 사람을 붙잡아 이걸 닦을 여사님을 불러달라고 요청했다. 알겠다고 하며 그 사람은 자리를 떠났다. 사실, 난 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다고 생각했다. 자리에 앉아 밥을 먹으며 바닥을 닦을 이모님을 조마조마하며 기다렸다. 그때였다. 식사할 자리를 찾던 한 분이 바닥의 난장판을 보시더니 그곳에 서서 사람들에게 피해 가라고 알려주기 시작했다. 모르고 지나던 사람들은 그분의 가이드에 따라 그곳을 피해 갔다. 한참을 그렇게 서 계셨다.
마침내 내가 부른 여사님이 두 분이 오셨다. 그리고 바닥을 닦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자 그때서야 자리를 뜨셨다. 난 그분을 그저 바라보았다. 이렇게.
가서 그분의 명찰을 보고 싶었다. 아무것도 안 한 것보다 낫다는 생각보다는 생각이 짧은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최근 시민 영웅에 대한 기사와 뉴스가 많았다. 터널 안에서 의식을 잃은 운전자를 구한 시민, 바다에 빠진 시민을 구한 사람, 화재 경보 소리와 함께 살려달라는 소리를 듣고 구해준 사람들. 이 분들은 자신을 희생하면서 혹은 희생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타인을 구했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일상에서 이렇게 멋지고 힘든 영웅이 아니어도 충분히 영웅이 될 수 있다. 타인이 다칠까 봐 알려주거나, 쓰레기를 줍거나, 어린이 보호 구역에서 천천히 달리거나, 뒷사람을 위해 엘리베이터 문이나 출입문을 잡아주거나 노약자에게 자리를 양보하면 된다.
나만 생각하지 않고 타인을 생각할 줄 아는 역지사지의 마음을 가진 자가 영웅 아닐까? 어떤 상황에서도 나만 생각하긴 쉽다. 그 이유를 대기도 쉽다. 내가 배려하고 희생해 봤자 알아줄 사람도 없고, 내 친절과 배려를 돌려받을 방법도 없기 때문에 최대한 현재 내 이익을 보는 쪽으로 행동하겠다고 결론을 내릴 수도 있다. 하지만 사회는 알게 모르게 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노력으로 지탱된다. 내가 지금 누리는 안전과 평화로움은 누군가의 희생을 기반으로 한다. 나는 누리면서 주는 건 싫다... 고 할 수 있을까?
일단. 다른 사람은 모르겠고... 나라도 잘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