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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소해 Dec 10. 2020

통증을 외면하면 안 되는 이유

난 통증에 예민하다. 어찌 보면 엄살이 심한 것도 같다. 어디가 조금 아파도 신경 쓰여 아무것도 못한다. 빨리 통증을 해결하기 위해 진통제를 먹는다. 두통이 잦은 편이라 자주 먹었던 타이레놀은 이제 내성이 생겼는지 잘 듣지 않는다. 공감도 잘하는 편이라 다른 사람들의 슬픈, 아픈 이야기를 들으면 나도 같이 슬프고 아프다. 그게 너무 힘들어서 무감각해지려고, 무심해지려고 많이 노력했다. 지금은 전에 비해 정말 많이 무뎌진 편이다.


이런 성향 탓에 뉴스를 잘 안 봤다. 온갖 자극적이고 불행한 사건들로 가득 찬 뉴스를 보면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아이를 낳고 뉴스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세상 돌아가는 상황을 알아야 아이를 잘 지킬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영아, 어린이 방임, 학대, 살해 등 끔찍한 뉴스가 연일 터지는 요즘, 뉴스 보는 것이 고통이다. 어떤 이들은 뉴스 자체가 자극적인 내용만 담고 있어 익숙해지면 평범한 일상에 무감각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나는 그 반대다. 무감각해지는 커녕 아픈 상처를 누르고 누르는 것처럼 더 아프고 아프다. 어미가 되고 나선 이 세상 모든 생명체와 내가 연결된 것 같다. 엄마 뱃속에 있던 아이가 출산해도 엄마 몸속에 아이의 세포가 남아 있다고 한다. 아이가 남겨놓은 세포가 온 세계 아이들과 연결되는 끈인가 보다.


은유 작가의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책 제목이 가슴 시리게 눈에 와 박힌다. 책 제목처럼 매일 뉴스에서 알지 못하는 아이, 아기들의 죽음을 접하고 있다. 장기가 끊어져 죽은 아이의 이야기는 내 장기가 끊어지는 것 같이 아프고 배가 고파 죽은 아이는 내 배가 굶주려지는 것 같고, 베개로 눌려 죽은 아이는 내 숨이 막히는 것 같다.


세상의 고통을 직면하기 어려워 외면하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어른들이 외면하면 그런 아이들이 또 생기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작고 여린 생명이 왜 그런 고통을 겪어야 할까? 신은 왜 죄 없는 아이들을 고통 속에 죽게 했을까? 누군가의 죽음은 다른 이들을 깨우치게 한다. 이들의 이야기가 알려지면 비슷한 상황 속의 아이들을 도와줄 사회적 장치와 법이 만들어진다. 희생 없이는 안될까?


일주일 내 아픈 가슴을 안고 생각하고 생각해본다. 이 아픔이 무뎌지지 않길 바라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생각해본다. 아직은 내 아이 하나 돌보기 버겁다. 그럼에도 어미 된, 부모 된 사람으로 분명히 할 일이 있을 거라 믿는다. 절대 무감각해지거나 무뎌지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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