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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소해 Sep 08. 2019

회사에서 짤리면

지구가 멸망할 줄 알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퇴사 통보를 받을 일이 많을까? 그리 많지는 않다. 하지만 그런 일을 나도 당한 적이 있다. 몇 년 전 어느 날 평소에도 나를 피하던 팀장이 면담을 하자고 불렀다. 그리고 교양 있는 척 이렇게 말했다.


"우리 회사는 더 이상 000 님에게 비전을 드릴 수 없네요."

"나가란 말씀이신가요?"

"네, 그렇습니다."


뒷소문을 들어보니 위에 분이 회사가 어려워 사람을 내보낼 사람들을 각 팀장에게 선별하라고 시켰단다. 다른 팀장들은 자신을 자르라면서 버텼는데, 이 분은 가장 먼저(몇 시간 만에) 나의 이름을 그분에게 말했다고 한다.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이때의 기분을. 내가 알아서 나가는 것과 쫓겨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애인과도 내가 헤어지자고 말하는 것과 이별을 통보받는 것이 다른 것처럼. 우여곡절 끝에 나는 그 어려움이 전화위복이 되어 지금은 회사를 잘 다니고 있다. 하지만 그때 배웠던 교훈은 절대 잊을 수 없다. 뼈에 새겨졌다고나 할까?


한동안 퇴사에 대한 책들이 열풍이었다. 지금은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고, 일도 재미있지만 뼈 때리던 그때 그 이후 퇴사 이후에 삶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그래서 집에는 퇴사 관련 책이 많다. 대충 다음과 같이 카테고리가 나뉜다.  


<<퇴사하겠습니다>>, <<초일류 사원, 삼성을 떠나다>> 등은 대기업을 자발적으로 퇴사한 이야기.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는 나의 행복을 위해 퇴사한 이야기


<<퇴사 학교>>, <<퇴사 준비생의 도쿄>>, <<나는 행복한 퇴사를 준비 중입니다>> 등은 퇴사 준비 이야기.


사실, "퇴사"는 출판시장에서 지금은 그리 핫한 키워드는 아니다. 이유인즉슨 이젠 퇴사가 더 이상 큰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고용이 보장되었을 때야 잘 다니던 회사를 때려친다는 것이 큰 용기이자, 리스크를 안는 일이었지만 지금은 퇴사는 그냥 일상이다. 그래서일까, 출판사에서도 '난 이렇게 퇴사했다'는 자전적인 얘기 좀 안 보냈으면 한다는 이야기를 건너 건너 들은 적도 있다. 한마디로 식상하다는 거다.


그런데.

<<회사에서 짤리면 지구가 멸명할 줄 알았는데>>

이 책은 퇴사 이야기였다. 게다가 출판사가 먼저 책을 내자고 (그것도 홍익출판사) 했다고 한다. 식상한 주제인데? 왜? 어떤 차별점이 있는 거지? 호기심으로 첫 장을 펼쳤다.  

오! 내 생각을 읽고 있나? 어떤 답을 할지 궁금했다.                                

아! 우문현답이다.


사실 우리가 사는 삶에 색다른 것은 없다. 탄생도, 공부도, 직장도, 연애도, 결혼도, 이별도, 죽음도 다 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우린 매일 한 번도 겪지 못한 새로운 오늘을 만난다. 이미 겪은 것도 오늘 겪으면 낯설다. 오늘의 상황은 어제의, 예전의 그때와는 다르니까. 최근 열광했던 "호텔 델루나"도 그렇다. 처음 시작할 땐 다들 "도깨비"와 비슷하다고 하지 않았나? 매일 아침드라마, 혹은 주말 드라마 모두 마찬가지 아닌가? 다 식상하고 어떤 패턴인지 알지만 그래도 또 본다.

               

첫 장을 넘기면서부터 저자에게 호감이 갔다. <<회사에서 짤리면 지구가 멸망할 줄 알았는데>>는 내용은 퇴사 통보받고 바로 다음날 퇴사하게 된 어느 마케터의 이야기이다. 회사가 13억을 투자 받고 연봉 협상 기간에 퇴사 통보를 받고 바로 다음날 퇴사하게 된다.


                                 

풍랑을 만났을 때 배가 너무 무겁다며 선원을 바다에 던지는 선장,
차라리 잘 된 일이라고 결론 내리기로 했다. (p.18-19)


                           

저자는 덤덤하게 회사를 나온다. 그 이야기를 하나의 드라마 혹은 에피소드처럼 그려낸다. 너무 질척거리지도 않지만, 너무 건조하지도 않다. 아주 적당한 수준을 지키면서 담담하게 그려냈다.


                                     

멍한 상태로 텔레비전을 봤다. 꽤 오랫동안 오전의 텔레비전을 보지 않았음에도 아침마당도, 무엇이든 물어보세요도, 심지어 드라마에서 시어머니가 심술을 부리는 모습마저도 내가 기억하고 있는 아침 방송의 풍경과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었다. 달라진 것은 딱 하나. 내가 회사를 가지 않고 아침 방송을 보고 있다는 사실뿐이었다. (p.27)       


이 대목은 정말 공감했다. 퇴사 후 회사를 가지않았을 때 나는 어느 박제된 시간에 갖힌 기분이 들었었다. 이질적인 존재로.


회사와의 관계 단절은 메신저뿐만 아니라 국가와 나의 관계에도 영향을 끼쳤다. 국민연금, 국민건강 보험 등 회사를 다니고 있다면 회사가 알아서 해주던 업무가 처음부터 끝까지 나 혼자의 힘으로 처리해야 하는 일이 되어 고스란히 돌아왔다. (p.41)


이 대목에서 <<퇴사하겠습니다>> 책의 내용이 떠올랐다. <<퇴사하겠습니다>>에서 저자는 퇴사하기 전에 카드도 만들고 부동산도 구하라고 한다. 이 사회 시스템 자체가 일을 하는 사람을 위해 만들어져있기 때문에 회사를 다니지 않는 사람은 무엇 하나 쉽지 않다는 것이다. 유용성이 사라진 사람들은 이 시스템에서는 그늘 속에 있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공간은 사람의 생활과 기분까지 지배한다. 퇴사자가 있어야 할 공간은 어디인가? (p.63)

                            

4차 산업 혁명 시대가 오면 기계가 단순 반복 일자리를 대신하면 사람들은 더 창의적인 일을 하게 될 거라고 선전한다. 그 말은 정말 진실일까?

                                   

무엇을 해먹고 살 것인가? (p.88)

                             

저자는 퇴사 후 돈보다 방향성을 잃어서 더 힘들어했다. 내가 하는 일이 곧 나의 정체성이자 먹고살고니즘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배우며 살아왔고, 그런 시스템 속에 사니까 생각도 그렇게 될 수밖에 없어서이기도 하다. 사회가 우리에게 시키는 세뇌는 생각보다 강하다.


모든 퇴사자들의 로망인 카페 창업도 꿈꾸고, 스콘도 굽고, 재봉일도 배우고, 펀딩 작업도 하고, 점쟁이도 찾아간다. 하지만 그의 우울증은 더 커진다.

                                     

슬픔은 그 순간보다 조금 더 늦고 길게 찾아온다. 잠깐만 힘들고 깔끔하게 끝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p.24)


하지만, 이 우울한 이야기만 계속 됬다면 이 책은 나오지 않았을거다. 저자의 말대로 정말 한 치 앞도 모르겠는 것이 인생이다. 정말 열심히 시도했던 일들은 실패했고, 그냥 우연히 신청한 브런치 작가 (https://brunch.co.kr/@mkjdeer​) 가 되고(전에 마케팅 주제로 신청한 건 떨어지고), 글이 인기가 많아지게 되어 갑자기 출판사에서 연락을 받게 된다.

                                

세상 허투루 겪는 경험은 하나도 없었다. (p.160)

    

저자는 스스로를 특출나게 잘하는 것 하나 없어서 힘들어했지만, 그래도 잘하는 글쓰기가 있었고 기회가 찾아왔다. 해피엔딩 영화를 본 기분이다. 물론 삶은 계속되지만, 마치 영화처럼, 순간 다른 이의 삶을 엿보았는데, 힘들었는데, 그래도 이 스냅샷의 끝이 좋아서 나도 같이 잠시 행복해진다.


회사에서 짤려도 괜찮다라고 말하지는 못하겠다. 내가 다시 그런 상황을 겪는다면 또 힘들거다. 하지만 저자의 말대로, 그 유명한 잡스의 말처럼 삶의 모든 경험은 다 연결된다고 믿어보려고 한다. 그리고 매일 새로운 점을 그리기 위해 새로운 도전을 하는 나 스스로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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