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이야기하기 좋은 시간이니까요 - 이도우 산문집
나는 이런 책이 좋다. 책 속의 이야기가 내 안에 깊이 잠자고 있던 추억과 이야기를 끌어내 주는 책, 혹은 알고 싶은 지식이나 정보를 제공해 주는 책.
이도우의 산문집인 <<밤은 이야기하기 좋은 시간이니까요>>(이도우 저, 위즈덤하우스)는 첫 번째에 해당된다. 이도우 작가는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라는 소설로 유명한 작가다. 인기가 많아 드라마로도 제작되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산문을 읽기 어려워하는 편이다. 살면서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에 급급했고, 책을 그 답을 찾는 도구로만 생각했다. 이성과 논리로 살아야 했기에, 나 자신을 풀어내지 못했다. 나처럼 감성적이고 직관적인 사람이 이성과 논리로 무장한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매일 전투 모드가 되어야 했다. 한번 말랑말랑한 감성에 나를 맡기면 전투력이 상실될까 두려웠다. 전투모드로 사는 이성적인 사람들에게는 이도우의 산문집이 와 닿지 않을 수 있다. 나도 공감 없이 건조하게 읽게 될 것이라 예측했다. 하지만 예측은 빗나가라고 있는 것이다.
"타인에 대한 호기심보다 스스로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결국은 쓸쓸한 순간을 견디기 위해 돌아오는 사람들. 행복한 사람은 글 같은 건 쓰지 않는다던 낡은 명언이 있지만, 우리는 이미 안다. 늘 행복한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을. 과거에도 없었고, 지금도, 앞으로도 없을 거란 걸."
갑자기 약점을 들킨 기분이었다. 내가 쓸쓸한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죽은 모래 같은 마음으로 강하게 서 있기보다는 방황하는 우는 모래가 차라리 자연스럽다. 굳이 힘내라고 말하지 않아도 묵묵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게 응원이라는 걸 안다."
버티지 말고 자연스럽게 '우는 모래'가 되라고 한다.
한 가지 모드로 살다 보면 모드 전환이 잘 안된다. 하지만 갑자기 찾아오는 소나기처럼, 지나가는 바람처럼 이 책은 그냥 훅, 전투 모드를 해재했다. 아마 밤에 읽어서 일거다.
"뜬금없이 나타났다 사라지며 내게 말을 거는 이상한 존재들". 내겐 이 책이 그랬다.
‘사물의 꽃말 사전' 이야기는 정말 별걸 다 생각하는구나, '여름날의 적의'는 마치 현장에서 그 적의를 느낀 것처럼 적의로 손이 데인 듯 뜨거웠다. 이 책은 독자가 보내 준 다양한 사연을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읽어주는 심야 방송 같다.
같은 문체로 쭈욱 지속되었으면 지루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걸 예측이나 한 듯 중간중간 다른 문체로 이야기를 풀어가기도 하고, 중간에 "나뭇잎 소설"을 이야기한다. 마치 한참 밤에 수다 떨다가 중간에 지루해질 때쯤 '내가 재미있는 얘기 해줄까?'라고 하며 해주는 이야기처럼.
이도우 작가에게 책이란 결계라고 한다. "결계는 다른 존재가 침입하지 않도록 보호해놓은 공간이고, 책이라는 다른 차원으로 들어가 작가와 함께 생각하고 즐기다가 돌아올 수 있는 공간"이다. 이 작가는 <<밤은 이야기하기 좋은 시간이니까요>>를 통해 산문과 소설을 섞어 새로운 결계를 만들어냈다.
"좋은 독서는 독자가 자신의 세계에서 벗어나 낯설고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게 만든다"(<<서평 쓰는 법>>)고 했다. 이 책을 한 장 한 장 읽으며 희미해진 내 기억을 떠올렸고, 그 기억 속의 나와, 현실의 내가 작가가 만든 세상에서 만났다. 작가와 셋이 수다를 떤 기분이다. 역시 밤은 이야기하기 좋은 시간이다. 이 작가의 다른 모든 소설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그녀의 다른 결계 속으로 걸어 들어가기 위해.
주의사항 - 절대 이 책을 밤에 읽지 마세요. 결계에 빠지거나 전투 모드가 해제될 수 있습니다.
* 이 책은 성장판 독서모임 활동으로 출판사에서 제공받았으나, 내용은 주관적인 의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