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 또한 내 삶의 일부

40년은 넘게 살아도 삶은 늘 새롭다

by 시형

일을 하거나 급하게 카톡을 하다 보면 오타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과장님,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가끔씩 돼 물어 오는 질문에 다시금 내용을 정정해서 한번 더 읽어보고 글을 올린다.

몰라서 틀린 게 아니라 급한 마음에 키보드에 손가락이 닿는 대로 잘 입력되었거니 하고 엔터를 눌렀던 것이다.

하지만 느린 반응의 키보드 혹은 틀러 버린 순서였을 수도 있는 타의 반 자의 반의 상황이 만들어낸 오타.


살다 보니 오타뿐만 아니라 내 삶에서도 실수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스마트폰을 보면서 걷다가 넘어지기도 하고 계단을 내려갈 때 삐끗해서 어정쩡한 뜀으로 착지하기도 한다.

혹은 겨울철 빙판길에서 넘어질 듯 넘어지지 않으며 요상한 춤을 추듯 비틀 거리기도 하고, 술을 마시고 비틀거리다가 담벼락이랑 부딪히기도 한다.

누군가와의 다툼에서도 마찬가지다.

말싸움 끝에 집으로 돌아와서는 ' 아 그때 이렇게 받아칠껄', '아...그말은 하지 말걸' 같은 이불킥들도 한 번씩은 겪어 봤을 거다.


스스로가 조금씩만 주의를 기울인다면 충분히 피해 갈 수 있는 일이다.

삶이 연속될수록 우리는 경험을 통해서 어떻게 하면 실수를 하지 않고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지를 배우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상황에 직면하며 다양한 실수들을 연발하게 된다.


실수라는 건 조금 더 깊게 들여다보면 재미있는 측면도 있다.

나의 삶이라는 영화에 하나의 에피소드를 만들어준다. 혼자만의 실수는 연극 속의 독백이 될 것이고, 누군가와 함께였다면 영화 속 한 장면이 될 수도 있다.

그것이 좋은 쪽이던 나쁜 쪽이던 말이다.


한 번은 출장을 가서 칼국수를 포장해서 숙소에서 먹으려고 한 적이 있었다.
잘 포장해 왔다고 생각하고 씻고 먹으려고 하는데... 웬걸 비조리로 포장을 해주셨다.

'...어떻게 먹지...'
고민하던 중 커피포트가 눈에 들어왔다

모텔 커피 포트는 지저분하다는 인식이 있어서 나름의 방법을 고안했다.

우선 물을 조금 붓고 비닐 2개를 펼쳐서 커피포트 위쪽으로 비닐 입구를 뺀 후 면과 국물을 넣고 끓이며 될 것 같았다.

그리고 생각대로 되는 것 같았다. 잘 끓는 듯했고 면도 잘 익어 가고 있었다.

친구랑 통화를 하면서 먹고 있는데 뭔가 조금 이상했다.

분명 맑아야 할 커피포트 물이 조그씩 뿌옇게 변하고 있었다.

"야... 뭔가 이상한데..."

"응? 머가?"

"왜 물이 뿌옇지?"

"국물이 우러나서 그런 거 아냐?"

"근데 왜 밖에 물이 뿌옇지?"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터졌냐?"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미친 듯이 웃는 친구의 목소리와 혼탁해지는 물의 색.... 그리고 혼탁해지는 내 정신....


그래도 나름 더러움에 익숙(?)한 삶을 살아서 그대로 통에 건져내고 커피포트를 씻고 맑은 물로 다시 한번 끓여서 커피포트가 멀쩡한지 먼저 체크했다.

다행히 포트는 정상작동했고 나는 익다만 칼국수의 떡진 맛 그대로를 만끽했다. 해산물은 익은 걸 넣어주셨을 거라 믿으며....


'조리해서 주세요'라는 말 한마디면 되었을 평범한 일상이 그때 통화했던 친구와의 간혹 회자가 되는 이야깃거리로 남았다.


실수라는 건 삶을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맞닥뜨리는 필연적인 요소일 것이라 생각된다. 다만 그 실수를 짜증과 화로 받아들일지 하나의 에피소드로 받아들일지 그 작은 생각이 '뻔'한 삶과 'fun' 한 삶을 만들어 주는 요소일 것이다.


회복탄력성을 기르는 방법은 작은 실수를 이겨내는 것부터라고 한다. 실수를 '망했다'가 아닌 '나만의 에피소드'로 만들어본다면 삶을 대하는 방식에서 조금은 더 밝은 면을 바라보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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