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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모기는 어찌 그의 방에 숨어들었나

by 라미루이






"애앵~"

잠자리에 들기 전 불을 끄자마자 모기 특유의 거슬리는 날갯짓 소리가 T의 귓가에 들린다.

(12월을 앞둔 겨울 날씨에 웬 모기. 얼마 전 따뜻한 날씨에 살아남은 놈인가 보다.)

그는 화들짝 놀라 잽싸게 불을 켜고 주위를 살핀다.

멀리 달아나지 못했을 듯하여 머리맡의 장롱 문을 살피고, 방의 사면과 커튼, 서랍장 곳곳을 샅샅이 훑어본다.

마지막으로 천장을 올려보지만 흔적도 없다.

지난여름 이 방에서 모기를 얼마나 처치했던지 벽지 여기저기에 눌러앉은 피딱지가 거믓거믓하다.

(이상하다. 분명히 들었는데.. 모기 맞나?)

그도 이제 나이가 들었는지 눈이 침침하여 눈앞에 모기가 날아다녀도 흔적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잦다.

한창 때는 어두운 방안에서도 피 냄새를 맡고 달려드는 모기 소리만 듣고 대충 위치를 짐작해 손을 휘둘러 잡아내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요즘은 애꿎은 자신의 뺨을 싸다구 날리거나 목덜미를 휘갈기기만 하고 별 소득이 없다.


때마침 윗집에서 잠이 깨었는지 욕실에서 흘러내리는 물소리가 요란하다.

위층의 사내가 밤늦게 사용한 헤어드라이어 아니면 욕실의 환풍기 소리를 듣고 착각했는지도 모르지.

그는 콘센트에 아직도 꼽혀 있는 전자 모기향의 스위치를 누르려다 괜찮겠지 하고는 방의 불을 껐다.






모기 M은 장롱과 천장 사이 그늘진 공간에 숨어 T가 잠들기를 기다렸다.

거리의 하수구에서 갈수록 추워지는 날씨를 견디다 못해 그와 동료들은 따뜻한 실내로 숨어들기로 결심했다.

가까운 아파트의 슬라이딩 도어가 열리는 틈을 타 엘리베이터까지 진입하는 데 성공했지만,

한 친구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홀린 나머지 환각에 빠진 것처럼 헤롱 대다가

득달같이 날아온 인간의 거대한 손바닥에 납작한 시체가 되어 바닥에 나뒹굴었다.

인간이든 모기든 지나친 자기애는 자신을 파멸로 몰아넣기 쉬운 법이다.

그는 한 마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그의 곁을 떠났다. 삼가 그의 명복을 빈다.

남은 모기는 그를 포함해 셋 뿐이었다.


"뿔뿔이 흩어지면 산다. 한데 뭉치면 우리는 죽은 목숨이야."

그들은 인간의 감시망을 피하기 위해 흩어지기로 했다.

한 놈은 킥보드를 탄 아이의 뒤를 따라 내렸다. 부디 행운이 함께하길.

또 한 놈은 음식물이 가득 담긴 비닐봉지를 든 할멈을 따라 내린다는 게 도로 1층에서 내린 꼴이 되었다.

그 친구는 다급히 선회하여 돌아오려 했지만 거대한 철문은 한 박자 빨리 닫혀 버렸고, 하마터면 그는 양쪽 문 사이에 끼어 끔찍한 죽음을 맞을 뻔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M은 엘베 안에서 스쿼트를 하는 사내의 뒤를 따라 6층에서 그의 집 현관까지 잠입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섣불리 날아다니지 않고 신발장 위 센서등 틈에 숨어 어두워지기를 차분히 기다렸다.

그 집에는 쉴 새 없이 장난을 치는 여자아이 둘과 엄마와 아빠로 보이는 남녀 각 1명이 살고 있는 듯했다.

M은 가장 프레시한 피를 맛볼 수 있는 아이들을 노리려 했지만, 그는 인간의 주목을 끌지 않고 최대한 오래 살아남고 싶었다.

아쉽지만 만성 피로에 절어 있고 둔해 보이는 남자 T를 'no.1 타깃'으로 정했다.

엘베에서 마주쳐 자신을 사냥터까지 인도한 그와의 인연을 무시할 수는 없으니까.


5시간쯤 지났을까? 어쩌면 더 지났을지도..

타깃은 둔감해 보였지만 M의 약한 날갯짓 소리에 놀라 불을 켰을 정도로 예민한 청력을 소유했다.

다시 불을 끄고 잠든 그의 숨이 잦아들고 깊은 잠에 들 때까지 M은 기다렸다.

어쩌면 M은 타깃을 향해 조급하게 달려들지 않는 자신의 인내심이 밤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지금까지 살아남게 한 결정적 이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여름에도 그는 배고픔을 참지 못한 동료들이 인간에게 달려드는 와중에도 참을성 있게 기다리곤 했다. 무시무시한 손바닥에 몇몇 희생자가 속출한 후에, 인간이 지루함을 참다못해 폰에 빠져들 때 손이 닿지 않는 뒷덜미나 맨살이 드러난 발목으로 신중하게 접근하는 것이 M의 생존 비결이었다.

타깃은 더 이상 몸을 뒤척이지 않는다. 가끔 이를 갈기도 하고, 코도 골지만 잠꼬대가 심한 편은 아니다.

"이때다!"

M은 가슴 깊이 들이마신 숨을 참고는 공중에서 추락하듯 몸을 비틀어 그의 목 언저리에서 가만히 날개를 떨어 머무른다.

신선한 꿀이 가득 담긴 꽃을 바로 앞에 두고 정지한 벌새처럼 공중에서 우아한 날갯짓을 뽐내는 모기라니..


어쩌면 그가 취하는 마지막 피가 아닐까 하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지만 더 이상 망설일 수 없었다.

그는 황홀경에 빠져 타깃의 목덜미의 푸른 혈관을 천천히 되짚으며 자신의 턱과 이어진 날카로운 침을 꽂았다.

M의 홀쭉한 배는 이내 붉은 피로 가득 차 터질 듯 부풀었다.

평소에 M은 과식을 하지 않고 날이 밝기 전에 돌아서는 스타일이지만 오늘은 왠지 포만감을 느끼고 싶었다.

(오늘 밤이 마지막 사냥이 되더라도, 배가 터지는 한이 있더라도..

정신없이 잠든 이 인간의 피를 남김없이 빨아들이고 싶다. 지금까지 용케 살아남았는데 이번 한 번쯤은 식탐을 부려도 괜찮지 않을까?)

그는 마지막 한 모금을 채우기 위해 타깃의 귓불로 천천히 다가갔다.





T는 퍼뜩 잠이 깼다.

폰의 알람 소리에 정신이 든 것이 아니었다.

오전 7 시라기엔 창 밖이 다소 어두웠다. 평소에 비해 구름이 잔뜩 낀 흐린 날씨 탓일까.

"애애앵~"

잠결이지만 희미하게..

그는 간밤에 잠자리에 들기 전, 귓가에 들려왔던 그 모기 소리가 다시 들려오는 걸 깨달았다.

(어제와 같은 놈이야. 대단하군. 11월 막바지에 모기가 날아들다니..)

잠이 확 달아난 그는 이불을 제치고는 방의 불을 환하게 켰다.

그는 눈이 부셨지만 주먹으로 눈자위를 연신 비비고는 주위를 살폈다.

지난밤과 마찬가지로..

천장도, 벽면도 깨끗해.

머리맡 주변 옷장도 그놈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대체 어디 있는 거지?

이제 모기는 인간의 시야에서 벗어나기 위해 카멜레온처럼 주변 환경에 자신의 몸 패턴을 바꿔 위장하는 능력이라도 얻은 걸까? 아니면 투명한 외피를 가진 종족으로 최종 진화하기라도 한 걸까?


(빙고!)

그는 침을 꿀꺽 삼켰다.

방문 근처 맨바닥에 바짝 엎드린 거무스름한 형체를 발견한 것이다.

살금살금 다가가니 그놈의 통통하게 부풀어 오른 몸통이 눈에 들어왔다.

팽팽하게 늘어난 뱃속에 뭐가 차 있을지는 굳이 보지 않아도 뻔하겠지. (곧 그 내용물을 보게 되리라.)

밤새 그의 피를 게걸스레 마시느라 무거워진 탓에 날지도 못하고 바닥에 착 눌어붙은 꼴이라니.

분노에 휩싸인 그는 살충제와 전기 모기채를 밖에서 가져올 생각도 하지 않고

M을 향해 손바닥을 내리쳤다. 그놈에게 고통스러운 죽음을 천천히 안겨주겠다는 가학적인 생각을 할 틈도 없었다. 그저 확실하고 깔끔한 죽음을 선사했을 뿐..

M은 그의 거친 숨소리와 성큼 다가서는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신의 운명을 예감하고는 눈을 감았다.

더 이상 그는 무기력한 타깃이 아닌 자신을 즉결 처형하려 다가서는 냉혹한 킬러였다.

잠시 후 폭죽 터지는 소리와 함께 자신의 둥근 눈알과 뱃가죽과 내장이 터져 끈적하고 뜨끈한 피에 잠기는 걸 느끼며 M은 기나긴 생을 마감했다.


T는 자신의 손바닥과 방바닥에 묻은 핏자국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침부터 피 보게 만들어. 마수걸이도 참 재수 없게.."

그는 평소에 거미나 날파리 같은 곤충은 살려주는 편이지만 모기만은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사랑하는 그의 가족들의 피를 빨아먹고, 아이들의 눈자위 아래 여린 살을 깨물어 퉁퉁 붓게 하는 그 놈들에게 자비를 베풀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는 점점 가려워지는 뒷덜미를 긁어대며 개수대에서 자신의 피 묻은 손을 씻어낸다.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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