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10주년을 기념하여 떠난 의미 있는 여행이었기에 2주가 넘는 기간 동안 별다른 트러블 없이 아이들과 물놀이를 하고, 이국적인 열대 과일을 맛보며 맘껏 여흥을 즐겼다.
간만에 떠난 해외여행의 즐거움을 방해하는 요소는 뜻밖에도 내부가 아닌 외부에 있었다.
물놀이에 지친 아이들이 잠든 어두운 호텔방을 밝히는 티비에서는 마스크를 쓴 의사들이 분주하게 침상에 누운 환자를 돌보는 장면이 연이어 나왔다. 그 환자는 산소 호흡기를 달고 있어 한눈에 보기에도 위급해 보였다.
인터넷으로 흘러나오는 뉴스 헤드라인에 점차 수면으로 부상하는 늪지 괴물처럼 모습을 드러내는 이름이 있었으니, 바로 중국의 도시 '우한'이었다.
그 도시의 수산 시장에서 퍼진 전염병이 사방으로 걷잡을 수 없이 퍼지고 있다는 소식들이 뉴스란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난 지금껏 들어보지 못한 생소한 지명, '우한'에서 퍼진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두려워하게 만들고, 수많은 사람들을 고통에 빠뜨릴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얘들아, 다음 여행은 어디로 가고 싶어?"
"아빠, 전 호주 가고 싶어요."
"이번엔 추운 곳으로 가고 싶은데, 캐나다 가면 춥겠죠?"
"태국이랑은 딴 판이지. 캐나다 가면 하얀 눈은 실컷 볼 수 있을 거다."
"우와, 신난다. 눈썰매도 질리게 타고, 눈싸움도 밤새 할 수 있겠네. 아빠."
"언니야, 난 눈에 파묻혀서 허우적대고 싶어. 나비처럼 말이야."
좁은 시트에 앉아 양팔을 벌려 휘적대는 둘째 연.
"좋아, 그럼 다음 여행지는 추운 곳으로 가는 거다."
인천 공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아이들과 수다를 떨던 기억이 떠오른다. 1년이 흐른 지금은 아이들이 다음 여행을 언제 갈 건지, 어디로 가고 싶은지에 대해 더 이상 묻지 않는다.
코로나로 인해 당분간 못 갈 것이 뻔하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리라.
길어야 서너 달이면 그 전염병이 꼬리를 내리고 고개를 숙일 줄 알았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눈부시게 발전한 최신 의학의 힘으로 짠하고 무적의 백신과 치료제가 출현해 우리의 고민거리를 멋지게 해결해 주겠지.
마냥 낙관적인 생각이 우리의 눈을 가리고 있는 동안에 우한이란 도시가 '전면 봉쇄' 된다는 뉴스가 귀에 들렸다. 단편적인 정보에 의하면 인구 천만의 도시, 서울만 한 사이즈의 대도시인데 내외부의 출입을 통제한다는 것이 가능한 걸까? 유튜브에서는 어떤 아파트 단지의 출입 현관문을 기다란 버팀목을 못 박아 빈틈없이 막는 영상이 나왔다. 덤프트럭을 동원해 바리케이드가 설치된 고속도로의 톨게이트를 거대한 흙더미로 덮어버리는 장면도 노출됐다.
저건 영화에서나 보던 장면들 아닌가. 환경오염, 의문의 바이러스 전파로 좀비들이 창궐하는 타락한 도시에 빗장을 걸어 락 다운하는 설정. 세기말, 아포칼립스, 판데믹, 디스토피아 같은 장르 소설과 영화에서 접할 법한 자극적인 용어들이 머릿속을 채웠다.
"대체 저 도시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야? 왜 무방비로 당하고만 있는 거지?"
이미 그 바이러스는 세계 지도 상의 한 점을 통제한다고 해서 고분고분 수그러들 존재가 아니었다. 유럽, 동남아, 미주, 아프리카 등으로 바이러스는 무수한 점을 이어 선을 그리고, 원을 넓히며 붉게 물든 영역을 확장시켰다. 그제야 난 이거 이거 우습게 보면 안 되겠는데 하며 긴장하고 상황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그 바이러스의 이름은 레몬 조각을 띄워 병째 마시는 맥주 이름과 같은 '코로나'였다.
즐겨보던 '세계테마기행'과 '걸어서 세계 속으로' 같은 여행 프로들은 과거의 지나간 영상을 짜깁기하여 분량을 채웠다. '짠내투어' 같은 여행 예능들은 국내 여행으로 컨셉을 틀었다가 반응이 시원치 않아 임시 폐지 수순을 밟았다. 모처럼 씨름을 보는 재미를 불러일으켰던 '씨름의 희열'은 막판 결승에서 천신만고 끝에 장사 타이틀을 획득한 임태혁 금강 장사가 가마에 탄 채, 텅 빈 관중석을 바라보며 가벼운 한숨을 짓는 장면으로 피날레를 장식했다. 난 허탈한 표정으로 '썰물처럼 빠져나간 관중 탓에 맥 빠졌을 텐데 그래도 끝까지 최선을 다했네' 하며 응원의 박수를 칠 수밖에 없었다.
마스크를 쓰는 것이 더 이상 어색하지 않고, 갈수록 생활 반경이 오그라드는 가운데 연초부터 자리를 잡은 희미한 물음표가 갈수록 커지기 시작했다.
"이 지경이 되도록 저 도시에서는 뭘 한 거지? '우한'에서 양심선언을 한 몇몇 의사들도 죽고, 많은 사람들이 고통 속에 최후를 맞이했다는데 아무런 소식이 없잖아."
바이러스의 전파력이 절정에 달하고, 의료 인프라가 한계에 처한 어느 기간에는 우한 곳곳의 화장터에서 시체를 소각한 연기 때문에 며칠간 대낮에도 맑은 하늘을 보기 힘들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중국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한 사망자 수와 실제 숫자는 큰 차이가 있더라는 소문도 여기저기서 나돌았다.
최초로 바이러스가 전파되고, 전무후무한 참상을 겪었을 우한 내부에서 살아 숨 쉬는 고백이 터져 나오기를 기대했지만 중국의 무자비한 봉쇄는 개개인의 입에 재갈을 물리기에 충분했나 보다.
그런 가운데 작년 연말에 이 책이 눈에 띄었다.
'팡팡'이라는 작가가 쓴 <우한일기>, 부제는 '코로나 19로 봉쇄된 도시의 기록'이다.
2020년 1월 25일부터 시작한 그녀의 일기는 60일이 지난 3월 24일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코로나로 인한 일상의 변화를 담담한 필치로 기록한다. (참고로 우한은 그해 4월 8일까지, 76일간 봉쇄되었다)
기어코 인간을 쓰러뜨리려는 바이러스의 집요함과 강인함에는 고개를 숙이며, 지난날의 자연을 함부로 대한 전 인류의 오만함을 반성하고 겸허한 자세로 대하지만,
정치, 경제적인 논리에 휘말려 사람 간에는 전염되지 않고, 막을 수 있고 통제 가능하다는 거짓 메시지를 전파한 일부 관료들과 무작정 공산당을 옹호하고, 거짓 뉴스를 퍼뜨리며 타당한 논리 없이 자신을 비판하는 인터넷 논객들에게는 날 선 문장으로 거침없는 비판의 목소리를 날린다.
한편으로 다행이다. 외부에서 날뛰는 바이러스와 내부의 견제하고 깎아내리는 적들로 인해 이중의 고통을 당했을 저자는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의지로 60일간의 일기를 이어나갔다. 작가로서 갖춰야 할 필수 조건은 필력이 아닌 단단한 멘탈과 의지임이 분명하다는 걸 그녀는 보여준다. 어떠한 상황에 처하더라도 후세에 부끄럽지 않은 글을 쓰고야 말겠다는 그녀의 굴하지 않는 용기와 뚝심에 찬사를 보낼 수밖에 없다.
덕분에 당시 뉴스와 웹사이트에 단순히 표기된 확진자와 사망자의 숫자 이면에 가려진 우한에서 겪은 참담한 경험담을 생생한 목소리로 들을 수 있었다.
우한은 서울과 닮은 구석이 많은 도시였다.
후베이 성의 중심 도시, 동방의 Chicago, 양쯔강과 한강(漢江, 서울을 좌우로 지르는 한강과 이름이 같다)이 두 갈래로 가로지르는 강과 호수의 도시.
사계절이 뚜렷하고, 무예에 출중한 초나라 항우의 후예들 답게 사람들은 남녀 불문 터프한 기질이 있단다.
동서남북으로 뚫린 철도를 이용하면 서너 시간이면 아홉 개 성 주요 도시로 통한다는 중원 교통의 요지.
이런 도시에 정체불명의 바이러스가 빠르게 전파된다. 발병 초기 관료들의 안이한 대응과 실책으로 인해 어느 날 봉쇄령이 떨어진다. 도시에 거주하는 천만 인구가 집에 갇힌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한 가족이 고열과 호흡 곤란에 빠진 노인을 부축하고 병원을 헤매지만 그 어디에서도 받아주질 않는다.
결국 길거리를 떠돌던 가족들 전체로 코로나가 퍼지고, 병원 문턱을 넘지도 못한 채 집에서 그들은 하나둘 최후를 맞이한다.
아비규환의 전쟁통을 방불케 하는 상황에 의사와 간호사들마저 속수무책으로 쓰러지고 만다.
화장터에는 가족을 찾지 못한 시신이 줄지어 밀려들고, 아무런 장례 의식 없이 화장된다.
하룻밤 사이 생사를 달리 한 가족을 찾아 헤매는 유족들의 절규가 희뿌연 하늘에 메아리친다.
이처럼 고통의 시간이 반복되는 가운데 그들은 무기력하게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가까운 이들과 연대했고, 소외되고 고립된 노약자와 장애인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건강한 자원봉사자들은 자신이 가진 것들을 아낌없이 나누고, 마트에서 대신 장을 봐서는 도움이 필요한 이들의 집 앞에 생필품과 간편하게 조리가 가능한 음식 등을 가져다 두었다.
꼼짝없이 갇힌 자들은 정부와 기관이 저지른 과오와 실책에 대해 책임을 묻고 다시는 그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끈질긴 검열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에 글을 남기고 외부에 공개했다.
<우한일기>, 이 책은 우한에 갇힌 평범한 사람들의 이대로 주저앉을 수 없다는, 그들이 겪은참상을 후대에 전하고야 말겠다는 간절한 염원이 모여 세상의 빛을 본 것이나 마찬가지다. 중국 정부가 아무리 강력한 검열과 통제를 통해 사람들의 입을 막는다 해도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격이다. 진실을 말하고자 하는 수천만 대중의 입에 재갈을 영원히 물릴 수는 없는 것이다.
앞으로도 그 당시 우한의 실상을 알리는 내부자의 글이 속속 세상 밖으로 나오리라 기대한다.
새해가 밝았지만 코로나는 좀체 물러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인간과 자연 사이에 그어진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침범하고, 다른 종種을 무자비하게 짓밟은 인류의 중죄. 그 죗값을 이번에 확실히 치르게 하겠다는 집요함이 보이는 듯하여 등골이 오싹하다.
오늘도 코로나 라이브 웹사이트와 뉴스에 표시되는 미국과 영국 등 타 지역의 확진자와 사망자 수치를 바라보며 그 이면에는 평범한 일상을 누리던 자들의 헤아릴 수 없는 고통과 비극이 숨어 있다는 생각에 비통함을 누를 길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