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무결한 행복은 뺄셈이야

정유정 작가의 <완전한 행복>을 읽고..

by 라미루이



그 호수는 아무도 찾지 않을 만한 곳에

깊이 숨겨져 있었다.

되강오리와 쇠물닭 어쩌다 눈에 띄는

원앙만이 호수에 머물렀고 마른 목을 축였다.


어느 날, 새빨간 드레스를 걸친 맨발의 소녀가

숲을 헤매다 호수를 찾아냈다.

소녀는 물가로 다가가 허리를 숙인 채

수정처럼 맑은 호수에 비치는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내 모든 것, 내 사랑, 영원히 여기 이곳에 머물러 주길."

소녀는 품에 간직한 손거울을 꺼내듯

호수에 들러 수면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에 열렬히 애정을 표하고,

빠져들 것처럼 허리를 굽혀서는

도톰하게 떠오르는 붉은 입술에

천천히 키스를 했다.

감아 내린 귀밑머리 몇

수면을 토톡 건드리자

오직 자신만을 비추는

투명한 거울은 일렁이고,

수줍어 웃는 소녀의 얼굴 또한

일그러진다.


시간이 흘러 소녀는

성숙한 여인으로 거듭났다.

그녀는 여전히 호수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서 삶의 의미를 찾았고

그 외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소녀는

자신의 귓가에 샛노란 수선화를 꽂고

잔잔한 거울을 바라보았다.

(이 얼마나 눈이 부신지. 활짝 핀 꽃마저 부끄러워 뒤로 숨는구나.)

수면 아래 그녀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피어난다.

그 순간 어딘가에서

동심원을 그리는 물결이

차곡차곡 밀려와

그녀의 얼굴을 남김없이 지워버리고

삽시에 허물어버린다.

"누가 감히. 내 신성한 구애를 방해하는 넌 대체 누구냐?"

산산이 부서지는 거울을 바라보며

가슴을 움켜쥔 그녀는 벌떡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았다.

저 아래서 앞다리를 벌린 채 목을 구부려

물을 마시는 어린 사슴 한 마리,

자신에게 꽂히는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가

그녀의 타오르는 눈길과 마주쳤다.

"너였구나, 못 보던 놈인데 하필이면 여기서 물을 마시고 그러니?"

그녀는 조곤거리는 투로 말을 건네며

멀뚱히 선 사슴에게 뒤꿈치를 들고

서서히 서서히 다가갔다.


사슴은 자신에게 다가온 그녀의

창백한 낯빛과 잘록한 허리,

매끈하게 뻗은 발목을 바라보며

자신을 해하지 않을 거라는

맹목적인 믿음이 생겼다.

"착하지. 얌전히 있으렴."

사슴은 자신의 조그마한 정수리를 지나쳐

나긋한 등의 굴곡을 따라 쓰다듬는

그녀의 손길을 느끼곤 온몸의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자신의 목을 한 팔로 두르곤 목덜미를 어루만지나 싶더니

점점 뻣뻣하게 힘이 들어가고

절대 풀리지 않을, 기어코 끊어지지 않을

올가미가 되어 숨을 조인다.

한 몸이 되어 수면 아래로 잠기는

어린 사슴과 그녀가 버둥대고 허우적대는가 싶더니

근처에서 자맥질을 하던 오리들이

꽥꽥거리며 이쪽을 바라본다.

사슴은 아무 대비도 없이 그녀를 믿었던

자신이 얼마나 무책임했는지를 뉘우치며

물에 잠긴 채 마지막 숨을 뱉었다.


흠뻑 젖은 그녀는 뭍으로 올라와

무릎을 꿇어 경건한 자세로

호수를 바라보았다.

잔잔해진 수면 위로 그녀의 허연 얼굴이 떠오르자

눈두덩과 입에서 몽글몽글 거품이 솟아나더니

핏빛으로 온통 붉게 물들어 버린다.

"안 돼. 이럴 수는 없어. 내 모든 것이 이렇게 무너질 수는 없어."

절규하며 자신의 머리를 갈래갈래 쥐어뜯는

그녀가 다시금 수면을 내려다보자

피로 물든 자신의 얼굴이 부예지더니

머리 위로 가지를 친 뿔이 돋아나고

입 밖으로 길게 늘어진 혀가 푸르딩딩하다.

주저앉은 그녀는 눈을 부릅뜨고 그것을 노려보았다.

"네가 끝까지 살아남아.. 내 완전한, 기필코 완전해야 할 행복을 일시에 무너뜨리는구나!"

그녀는 양손으로 목을 옭아매고 조이는 시늉을 하며

물속으로 천천히 기어 들어간다.

새까맣고 긴 머리칼이 물 위에 해초처럼 뜨는가 싶더니

볼록하게 구부린 등이 잠기고

완만한 엉덩이의 굴곡마저 넘실대는 수면이 삼켜버린다.

보글대며 올라오는 기포마저 잠잠해지고

봉긋한 수선화 꽃잎만 점점이 떠오를 즈음,

호수는 그녀의 존재가 무無로 돌아갔다는

사실마저 저 아래 심연으로 가라앉았음을

완전무결한 침묵으로 선포했다.



어쩌다 찾아와 머무르는 몇몇 오리들만

존재를 알고 있는 그 호수는

누군가 우연히 다가와

아슬하게 물에 빠질 것처럼,

무릎을 꿇어 허리를 굽힌 채

거울처럼 투명한 자신을 바라보길

오늘도 기다리고 있다.






정유정 작가의 신작 <완전한 행복>을 읽었습니다. 고유정 전남편 살해 사건을 배경으로 썼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읽기 전부터 단단히 각오를 했습니다. 신경이 곤두선 밤보다는 잠이 덜 깨어 몽롱한 아침에 읽어 보자. 우울하지 않은, 즐겁고 흥겨운 음악을 메들리로 배음으로 깔아보자. 가능하면 온 몸이 풀어져 이완된 상태로 읽으면 어떨까. 500페이지가 넘는 소설의 막바지에 다다르자 깨진 유리 밭을 맨발로 걸어가는 듯한 아픔이 전해오고, 온몸의 신경이 곤두선 나머지 한쪽 머리가 아파 옵니다. 하지만 그녀가 정교하게 빚어낸 이야기의 올가미에서 벗어날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신곡_지옥편>의 한 대목을 인용한 작가의 말까지 읽어내리자 자기애성 성격장애를 가진 유나의 의미 심장한 말이 떠올라 등골이 서늘해집니다.

"행복은 덧셈이 아니야. 행복은 뺄셈이야. 완전해질 때까지."

거울처럼 맑은 호수를 바라보며 끝없는 자기애에 빠진 그녀에게 반한 은호는 저 말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완전무결해야 할 그녀의 행복을 방해하는 것은 무엇이든, 타인이 아끼고 사랑하는 것일지라도 가차 없이 제거하겠다는 저 말의 숨은 의미를 알아차린 것은 그의 모든 것이 사라지고 무너진 후였지요. 유나의 친언니 재인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재인은 어린 시절 잠시 떨어져 지낸 동생에게 무조건 희생하고, 부모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친부의 망령에 휘둘려 유나의 폭력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합니다. 무차별적인 폭력에 정신을 잃어 감금당하고 피범벅이 되고 나서야 그녀의 본모습을 알아차리게 되지요.

피날레에서 절벽으로 향하는 유나의 발목을 붙잡고 늘어지는 재인은 그녀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유나가 강박적인 자기애적 성향을 절대 버리지 않을 것임을 깨닫고, 그녀가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도록 내버려 둡니다. 수면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사로잡힌 그녀는 결국 그 심연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그 안으로 몸을 던지는 최후를 맞이하지요.


책을 덮었지만 정유정 작가가 문장으로 파내고 채워 올린 반달늪에서 한동안 헤어 나오지 못할 듯합니다.

어디선가 꽥꽥대는 되강오리의 울음소리가 들리네요. 찍찍거리는 요망한 생쥐도 수챗구멍에서 머리를 내밉니다. 아내가 웃으며 권하는 아이스커피도 별 이유 없이 꺼려집니다. 잠이 들기 전 방문이 잠겼는지 확인하는 버릇도 생겼습니다. 소설은 소설일 뿐, 망상에서 깨어나라고 마음속으로 외쳐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만큼 작가가 빈틈없이 쌓아 올린 소설 속 세계는 현실로 돌아가려는 우리의 발목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집니다.

"글을 쓰는 동안 작가인 저는 얼마나 괴롭고 고통스러웠겠어요? 그러니 독자인 당신들도 그 십 분의 일만이라도 느껴야 공평하지 않겠습니까?"

날 선 작가의 외침이 귓가에 들리는 듯합니다. 그냥 내 감정이 흘러가는 대로 순순히 놔두기로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현실로 돌아올 테지요. 얼마의 시간이 필요할지는 그 작가의 역량에 따라 판가름 나는 것으로 받아들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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