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들섬에서 책을 읽다

<오리 집에 왜 왔니>를 읽고..

by 라미루이



어제 몇몇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반납하고 눈길에 드는 신간을 대출했다.

대출 기한으로 주어지는 '3주'란 시간은 어영부영 흘려보내면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간다.

하루를 여는 이른 아침부터 정신을 깨우고 책 읽기에 시간을 투자해야만 대여한 책의 반이라도 읽어낼 수 있다.

활자와 여백뿐인 책보다 직관적이고 자극적인 콘텐츠가 넘쳐 나기에 홀로 앉아 여남은 페이지 정독하기도 힘든 세상이다. 나 역시 도서관에서 대출한 책들의 반 이상을 완독하지 못했다. 이대로 반납하기엔 아쉬운 책들의 리스트가 한가득이다. 공선옥 작가와 박연준 시인의 산문집, 강맑실 작가의 아기자기한 그림과 정겨운 글 모음 등등.

다행히 어느 도서관은 타인이 예약을 하지 않은 책은 재대출이 가능해 3주의 유예 기간을 더 얻을 수 있었다.

도서관마다 눈에 잘 띄는 곳에 비치된 신간 코너에 꽂힌 반듯한 책들이 날 손짓하고 부른다. 가까이 다가와 자신을 펼쳐 들어 단 몇 페이지라도 읽어 보라고 간절히 외친다. 높다란 서가를 빽빽이 메운 각각의 책등을 훑으며 이렇게나 좋은 책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과연 시간을 헛되이 보낼 틈이 있을까 하는 마음이 솟는다. 최근에 다소 누그러진 독서에의 열의를 다시 불태우며 도서관을 나선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이들이 '노들섬'에 들리자고 한다. 차와 도서관을 오가고 머무르다가 바로 집으로 향하기엔 갑갑했나 보다. 퇴근길 정체가 시작된 한강 대교를 건너다 중도에 우측으로 빠진다.

노들섬의 주차장은 평일 오후라 그런지 여유가 넘친다. 상도 터널 방면의 한강 대교 측면이 보이는 자리에 주차를 한다. 서울 시내에서 멋진 전망을 가진, 몇 안 되는 주차장 중 하나다. 다리를 지탱하는 회빛 거대한 철제 기둥이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이어진다.

내부에 위치한 '노들 서가'로 걸어가는 길. 바람에 나부끼는 기다란 깃발에 행사 안내 문구가 적혀 있다.

<Seoul Jazz Festa - 4/26 ~ 5/1, 노들섬>이라는 색색의 발랄한 폰트로 그려진 플래카드가 설레는 봄심을 자극한다. 코로나 유행 이후 우리 곁에서 멀어진 것들 중 하나가 떠들썩한 야외 페스티벌이다.

볕 바른 잔디밭에 너른 돗자리 펴고 누워 나른한 재즈 선율에 온 몸을 맡기면 그보다 더한 극락이 어디 있을까 싶다. 상콤한 와인 한 잔 곁들이면 이곳이 무릉도원일 듯싶네.

차주 중 화창한 날을 골라 가족들과 함께 다시 들러 재즈 페스티벌을 즐기자 하고 다짐해 본다.


노들 서가 입구의 체온 측정과 손 소독은 자율적으로 이루어진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QR 코드를 통한 백신 접종 여부까지 확인했는데 한결 자유로워진 느낌이다. 장기간 우리 곁을 맴돌던 코로나의 망령이 기력이 쇠한 나머지 점차 뒤로 뒤로, 물러나고 있음을 체감한다. 건물 내부에 들어서니 간격을 두고 진열된 책들과 의자가 답답한 숨을 트이게 한다.


노들 서가의 내부



널따란 데스크 위에 놓인 몇 권의 책을 읽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후덕한 인상의 오리가 문 앞에 앉아 있는 그림체의 표지에 끌렸다. 수많은 책들 가운데 선뜻 손이 가도록 이름을 잘도 뽑았다.

책 제목은 "오리 집에 왜 왔니". 글/그림 작가는 "오리 집사"란다.

편한 의자를 골라 앉아 한 페이지 두 페이지 넘기는데 오리와 집사가 만나는 첫 장면부터 예사롭지 않다.

도로 한 복판에 고립된 '오린이'를 구출해 집으로 데려오면서 그들의 기묘한 동거가 시작된다. 또 다른 오리는 꽁지가 차에 깔려 안타깝게도 숨을 거두고 만다.

강아지나 고양이가 아닌 육용으로 개량된 오리를 반려 동물로 택하면서 벌어지는 고난과 애틋함이 다양한 에피소드로 그려진다. 구조 당시의 트라우마가 남았는지, 근처를 지나가는 트럭 소리만 들려도 벌벌 떨면서 집사의 품으로 기어드는 오린이의 모습이 애처롭다.

자신을 보살피는 인간 집사에게 마음을 열어 졸졸 따라다니고, 눈에 보이지 않으면 꾹꾹 거리며 외로워하는 오린이. 심지어 사랑니를 발치한 집사가 끙끙 앓아누우면 곁으로 다가와 꽉꽉, 괜찮냐고 안부를 묻고 걱정하기까지 한다. 도저히 가축이라 볼 수 없는 오리의 행동에 충격을 받은 집사는 1년 넘게 오린이를 한 가족처럼 보살피며 최선을 다한다. 더 이상 품에 안기도 힘들 만큼 덩치가 커진 오린이를 등에 업고 다니다시피 헌신한 저자는 자신의 세계가 천천히 바뀌는 것을 실감한다. 그토록 즐기던 육식을 줄이고, 오리털로 만든 패딩 대신 얇은 옷을 여러 겹 껴입는 식으로 생활 방식을 바꿔 나간다.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오리와 교감하고 소통하기 위한 지난한 과정과 각고의 노력이 이 책 구석구석에 묻어 있다. 보잘것없는 개체로 취급되는, 가능한 한 빨리 덩치를 불려 고깃덩이로 팔리는 식용 오리를 포기하지 않고 한 지붕 반려 동물로 길러낸 집사의 애씀이 감동적이다. 오린이 또한 그를 부모처럼 따르고, 따스한 품을 나누기에 그들의 동거 생활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푸근하고 후덕한 인상의 오린이



오린이 대신 동물 병원에 불러줄 이름을 정하기 위해 고민하다가 불현듯 떠올렸다는 "레임덕".

오리 이름이 레임덕이라니.. 부디 그 둘의 반려 라이프는 일체의 레임덕 없이 화사한 꽃길만 깔리길 바라 마지않는다. 한편으로 난 기발한 작명 센스에 감탄하면서 키득 키득거렸다.

"아빠, 왜 웃어?"

"그 책 재미있어?"

"얘들아. 이 책 한 번 읽어봐. 강력 추천이다."

난 책을 덮고는 옆 자리에 앉은 솔과 연에게 불쑥 내밀었다.

"우리 집이 아니라 오리 집이네?"

"넙적 부리 오리가 주인공이야? 엄청 귀여워."

아이들은 나란히 앉아 한쪽 팔걸이에 책을 나누어 펼친다. 머리를 한데 기울여 함께 읽는다.

자매는 읽는 속도가 비슷하지만, 누군가 한 페이지를 빨리 읽으면 앞서지 않고 잠자코 기다려준다.

먼저 읽은 나처럼 같은 포인트에서 키드득 웃음이 터지는 것을 보고, 또한 진지하게 입매가 다물어지는 것을 보고 이 책이 지닌 묘한 매력을 절감한다.



잠시 후 아이들은 이런 귀염둥이 오리, 제발 집에서 기르면 안 되냐고 내게 묻는다.

으음.. 글쎄, 난 명확한 대답을 흐리고는 통창 너머를 내다보았다.

저 멀리 63 빌딩 옥상에 반쯤 걸친 해님이 아래로 뉘엿뉘엿 지려고 한다.

슬슬 집에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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