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휴일 오전에 늦잠을 자고 일어나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하고는 한쪽 팔과 다리를 발레리노처럼 반대편으로 주욱 뻗으며 스트레칭을 하는 중이었다.
"꺄악, 까르르르!"
별안간 거실 구석에서 자지러지는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쪽을 돌아보니 아이가 양 주먹을 불끈 쥐고는 만면에 환한 웃음을 띄우며 까치발을 들고는 아빠의 우스꽝스러운 자세를 흉내 내려는 게 아닌가?
솔에게 성큼 다가가 자그마한 몸을 번쩍 들어 올리니 그대로 고개를 뒤로 젖히고는 터지는 웃음을 멈추지를 못하고 거실 천장을 향해 내뱉는다.
그 후로 내가 찌뿌둥하게 굳은 몸을 풀어주려 국민 체조를 할 때마다 아이는 박장대소를 터뜨리며 입을 막고 고개를 저으며 어쩔 줄을 몰라한다.
"매 순간순간을 즐기며 살아라."
어느 순간부터 우리 앞에 행복한 삶을 상징하는 표어로 등장한 이 말을 일상에서 100% 실천하는 자들이 있다면 바로 아이들이다. 정확히는 아직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초등 1, 2학년 정도까지의 아이들.
바깥세상을 처음 접하는 아기일수록 자신 앞에 놓인 모든 것에 눈을 반짝이며 달려드는 법이다.
가까스로 일어서기를 시도할 즈음의 아기들은 자신의 손에 잡히는 대로 입으로 가져가 물고 빨고 핥아댄다.
아이가 태어나서 처음 눈을 접했을 때는,
아침에 일어나 밤새 내린 하얀 눈 위에 처음 발자국을 남기며 정신없이 뛰어다니다가 벌러덩 넘어져서는 한 주먹 되는 눈을 입으로 가져가 맛을 보았지.
솔과 연에게 동그란 츄파춥스 사탕을 처음 물려주었을 때를 떠올린다. 아이들은 '세상에 이런 맛이? 지금껏 난 엄마젖이 최고인 줄 알고, 맛대가리 없는 이유식만 먹었는데 이런 쇼킹한 맛이 존재할 줄이야.'라는 표정으로 막대가 흐물해질 정도로 녹여 먹었다지.
솔은 유모차를 타고 다닐 적에 세상이 얼마나 기상천외하고, 맛난 먹을거리로 넘쳐흐른다는 것을 깨닫자 새벽잠을 줄이기 시작했다. 새벽 네 시면 어김없이 곤히 잠든 엄마를 깨워서는 유모차로 끌고 가 밖으로 나가자고 칭얼대고 성화를 부렸던 것이다.
두세 시간 후면 출근해야 하는 날 깨우지 않기 위해 최대한 발소리를 죽인 채 조용히, 어스름한 새벽 공기를 헤치고 유모차를 끌고 밖으로 나갔다가 아이가 잠들면 슬그머니 들어오던 아내.
집에 도착해서도 아이를 유모차에서 끌어내리면 이내 깨서는 나가자고 생떼를 부리기에, 아예 날이 밝을 때까지 현관에 들여놓은 유모차에서 재우곤 했었지. 다행히 삼 년 터울로 태어난 둘째 연은 엄마의 극한 노동을 줄여주려 했는지, 기특하게도 일찍 잠들고 한번 잠들면 좀처럼 깨지 않는 효녀 기질을 타고났다.
그러던 아이들이 글쎄..
유치원을 졸업하고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점점 눈 앞에 보이는 것들에 놀라워하고 감탄하는 반응들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밤에 깨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더니 이제는 아침에 늦잠을 자기 일쑤다. 줄지어 나무 둥치로 향하는 개미떼를 보고도 쭈그려 앉아 지켜보지 않고 심드렁한 표정으로 가던 길을 가 버린다. 봄꽃에 머물다 기척을 듣고 날아가는 나비를 보고도 쫓아갈 생각도 안 하고 멍하니 지켜보는 경우가 많아졌다.
대신 아이들은 티비와 유튜브에서 쏟아지는 자극적인 만화와 친구들이 들고 다니는 폰에 설치된 최신 게임 그리고 날마다 출시되는 신상 장난감 광고에 멍한 눈길을 돌리며 그나마 남아 있는 호기심을 쏟는다.
이처럼 아이들이 커갈수록 자연에서 디지털 기기 등으로 관심사가 달라지고 친구들과의 관계, 성적 유지 등 나름대로의 고민거리가 쏟아지며 점점 '지금 이 순간'을 즐기기 어려워지는 것이 현실이다.
하물며 요즘 아이들도 이럴진대 세상사에 찌든 어른들이 하루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지금 여기'에 집중하는 데 쓸 수 있을까? 내가 추구하는 삶이 아이들과 일상적인 대화를 하고, 미처 포장도 뜯지 못한 보드 게임을 실컷 즐기고, 오늘처럼 눈이 많이 내리는 날이면 가까운 산에 올라 빙판에서 눈싸움을 하다가 지쳐 쓰러져서는 푸르른 하늘을 바라보는 것이라면? 솔직히 힘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아이들은 갈수록 아빠보다는 친구들에게 관심을 쏟고, 거듭 내리는 눈이 일상이 되다 보면 추위에 벌게진 손을 내보이며 따뜻한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갈수록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줄어들고, 이마저도 더 많은 노력을 해야만 그 기회를 얻을 수 있음에 서글퍼진다.
꽁꽁 언 관악산 계곡에서 찍은 컷을 이어 붙인 파노라마 사진. 덕분에 아이들이 분신술을 쓴 것처럼 겹쳐 나왔다.
애니메이션 <Soul>은 어느 무명 재즈 피아니스트의 사후 세계와 환생, 빙의를 통해 시시각각 변화하는 현재의 삶을 즐기는 것이 우리네 인생의 본질적인 목적이며 또한 이를 알더라도 실천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픽사 특유의 아기자기한 스토리와 귀여운 캐릭터로 보여준다. (픽사 앞에 디즈니를 표기하지는 않으련다. 이 애니는 처음부터 끝까지 디즈니가 아닌 픽사의 피가 흐르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주는 작품이니까..)
Carpe Diem. 매 순간순간을 즐기며 살아야 한다.
누구나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은 익히 들어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산다는 게 과연 쉬운 일일까?
우리는 복잡한 사회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스치듯 지나치고,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디지털 기기를 접하며 살고 있다. 우리의 머릿속은 초단위로 쉴 새 없이 바뀌고 과거에 대한 후회와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함까지 뒤엉켜 자칫하면 펑하고 터져 버릴 지경이다.
빠르게 정신없이 흘러가는 세상에 온몸이 적응된 나머지 눈이 쏟아지는 창밖을 무심히 바라보고, 따뜻하게 데워진 찻잔을 두 손으로 감싼다든지 하는 평범한 일상이 이제는 강력한 의지와 노력 없이는 이루어지기 힘든 또 다른 삶의 특별한 영역으로 여겨진다. 남들처럼 24시간 365일 쳇바퀴 도는 것처럼, 장차 이루어질 대박을 꿈꾸며 현재를 저당 잡히는 삶을 사는 것이 오히려 편하고 자연스러운 지경이 된 것이다.
하지만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처럼 극도의 긴장감을 유지해야만 하는 삶을 언제까지 지속할 수 있을까?
재즈 피아니스트가 잘 나가는 뮤지션들과 함께 즉흥 연주를 할 수 있는 오디션에 합격했다고 하자. 만약 그가 밤샘 공연을 매일 출근하듯이 해야 한다면 이내 공허함에 빠지고, 불타오른 열정은 바람 빠진 풍선처럼 사그라들 것이다. <Soul>의 주인공, 조 가드너처럼 말이다.
혹자는 비유하기를 인생이 줄타기를 하는 것과 같다고 하더라. 일부분은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평생토록 줄에 올라 어떻게든 떨어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 온갖 묘기를 부려야 한다는 건 아니다. 그렇게 살다가는 언젠가 낙상하여 큰 부상을 당할 것이다. 아니면 긴장감을 견디다 못한 멘탈이 뚝 끊어져 미쳐버리든가.
능숙하게 줄타기를 하는 장인들도 평상시에는 줄에서 내려와 안전한 땅에 발을 디디고, 가족들과 일상을 즐기며 편안히 휴식을 취할 것이다. 그래야만 축적된 에너지를 바탕으로 줄 타는 기술을 꾸준히 연마하고, 결정적인 순간에 줄에 올라 수많은 관객들 앞에서 아슬아슬한 묘기를 자신 있게 선보일 수 있을 테니까.
가끔은 멍 때리는 시간이 필요하다. 잡다한 생각을 지우고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는 상태로 이 순간을 오롯이 즐기는 시간이 우리에게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아이들과 눈밭에서 눈덩이를 굴리고, 눈사람의 눈코 입을 매만지는 순간에 이 장면을 그럴듯한 사진이나 영상으로 찍어 인스타나 유튜브에 올릴 생각이 앞선다면 그건 올바른 '재징(Jazzing)'의 자세가 아니다. 콰르텟(4중주) 재즈 연주에 집중해야 하는 지금 이 순간에 다음 공연에는 관객이 얼마나 들어올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찬 꼴이다. 한마디로 주객이 바뀌고, 전후가 뒤바뀐 진정한 '소울'을 잃어버린 삶의 자세라고나 할까.
만약 당신이 탁월한 작가(예술가)가 되고자 하는 꿈을 이루기 위해 주어진 생을 의미 있게 보내야 한다는 마인드로 살아간다면 이는 목적과 표현 수단이 바뀌었거나, 보다 본질적인 삶의 목표가 무엇인지를 깨닫지 못한 것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인생의 묘妙를 조금이나마 깨우치고, 고단한 생을 즐기며 살아가는 다양한 방법을 터득한 자가 진정한 시인, 소설가 그리고 에세이스트로 거듭날 가능성이 높다. 매 순간 튀어 오르는 감정을 낚아채는경험이 두텁게 쌓이다가, 자연스레 흘러넘친 결과물이 독자의 마음 깊은 곳을 터치하는 좋은 글로 빚어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만족스러운 삶과 글쓰기는 한 몸과 마음처럼 영향을 주고받으며 함께 가는 것이고, 더 높은 경지를 향해 평생을 걸고 노력해 볼만한 것이다.
갓 태어나 세상을 처음 맛보는, 모든 것이 서투른 아기 시절로 되돌아간 것처럼 그냥 즐겨라. 부질없는 자존심 다 내려놓고 아이들과 눈밭에서 뒹굴며 신나게 놀아보라. 때 묻지 않은 아이들의 손길로 세상을 만져보고, 혀를 내밀어 맛을 보고 냄새를 맡아보라.
그러다 보면 엉거주춤 일어나 넘어짐을 반복하다가 한 발짝, 두 발짝 걷게 되고 어느 순간 넘치는 흥을 주체 못 하고 앞을 향해 내달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매일매일을 'soulful' 하게
그때그때의 감정에 충실하면서
매 순간순간을 즐기는 자세를 1순위로 두고 살다 보면,
삶은 자신을 독차지한 주인에게 감사의 표시로 근사하게 포장된 선물 상자를 열 수 있는 행운을 건네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