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리와 가족 그리고 터부시하는 존재에 대해

영화 <미나리>_정이삭 감독 작품을 보고

by 라미루이

(이 글은 영화의 결정적인 스포가 일부 담겨 있으니 원치 않으시면 영화 감상 후 읽어 주세요)





영화 제목이 하필이면 <미나리> 라니.

생전에 간경화에 이은 간암으로 20여 년 가까이 고생하셨던 아버지가 삼시세끼 드시던 음식이 바로 '미나리'였다. 데쳐서 된장에 조물조물 무쳐서 나물 반찬으로 드시고, 케일과 익모초, 레드비트 등과 함께 생즙을 짜내어 식전에 마시기도 했다. 미나리는 거칠고 습한 데다 오염된 환경에서 잘 자라는 기질 탓인지 해독 효과가 탁월해 간이 안 좋은 환자들의 필수 섭취 음식이기도 하다.

"에구머니나! 징글징글하네. 이 눔의 거머리."

장에서 사 온 돌미나리를 다듬던 어머니와 친할머니의 기겁하는 외침이 들리는 듯하다.

미나리 하면 수미쌍관처럼 따라오는 것이 바로 거머리다. 미나리와 거머리. 세 음절로 끝맺고 발음마저 비슷하다. 하지만 거머리가 좀 더 진득하고 왠지 한번 달라붙으면 온 몸의 피가 다 빨릴 때까지 떨어지지 않을 듯한 질척거림과 집요함이 느껴진다. 미나리는 그런 거머리와 같은, 떠올리기만 해도 기분 나쁜 존재들을 줄기와 마디 사이에 숨겨주고 자신을 양분으로 내어주는 넉넉한 포용력을 지녔다.


"차라리 보이는 게 안 보이는 것보다 나을 수 있어. (뱀이나 거머리가) 숨어 있는 게 더 위험하단다."

외진 습지에서 나무 위를 기어가는 뱀에게 돌을 던지는 데이빗을 만류하며 할머니(윤여정 역)가 건네는 말은 의미심장하다.

모름지기 인간이란 존재는 눈에 보이는 것에 안도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미지의 존재를 두려워하고 미심쩍어한다. 어릴 때 한 번쯤 이런 기억 있지 않을까? 낡은 장롱 깊은 곳이나 백열전등이 깜박이는 다락방 어딘가 숨 어 있으리라 상상하던 그런 존재. 각자 그려내는 불길한 존재의 구체적인 모습은 실로 다양할 것이다. 눈코 입이 달아난 매끈한 얼굴에 소복을 걸쳤던지, 사찰 입구를 지키는 사천왕처럼 희번덕한 눈깔을 부라린다던지 아니면 수많은 다리를 꾸물대는 지네 인간일 수도 있겠다.

어린 시절 우리가 끔찍한 악몽에 시달리다 이부자리에 오줌을 지렸음을 알아채고 눈을 떴을 때조차 바로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까 두려워하고 터부시하던 존재는 과연 사라졌을까?


성인이 된 우리는 알게 모르게 현실과 타협하며 다양한 형태로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어린 시절 우리를 괴롭히던 그 존재는 보이지 않는 곳에 몸을 숨긴 채 비틀거리며 꿈을 좇는 자의 발목을 걸어채고 뒤통수를 갈기고 등을 밀어 넘어뜨리며 여전히 우리 곁에 유령처럼 머물고 있다.

꿈을 이루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와 캘리포니아에서 수풀이 무성한 아칸소의 컨테이너 가옥에 머물기까지 한 가족이 받은 상처와 고통은 이루 헤아릴 수 없으리라.

그들이 머무는 컨테이너에 빗물이 새고, 토네이도가 스쳐 지나가는 건 애교에 불과하다. 가까스로 밭을 일구어 양배추며 파프리카 등을 길러냈더니 우물이 말라 농작물이 말라간다.

도움을 주기 위해 그들을 찾아온 구세주와 같은 할머니는 끔찍이 사랑하는 손자가 냄새가 난다며 멀리하고 아이의 오줌을 먹는 등 갖은 구박을 받은 끝에 가까스로 한 가족으로 받아들여지나 싶더니 역시나..

집 안 어딘가 숨어있던 그 존재는 기어코 마수를 뻗어 할머니를 무릎 꿇리고, 그나마 희망의 빛이 보이는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화염을 내뿜어 애써 길러낸 결과물을 삽시간에 잿더미로 만들어 버린다.


현대인이 두려워하는 가족의 해체, 평생 쌓아온 부가 거품처럼 사라지고 자신을 포함한 가족이 병들어 쓰러지는 일련의 가혹한 시련은 끝까지 존재를 숨기는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스토킹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집요하면서 은밀하다.

오늘도 쳇바퀴 돌듯 하루를 살아가는 각자의 뒷덜미에 달라붙어 장난을 치는 그 존재에 감히 이름을 붙인다면 '운명'이라 칭할 수 있을까.

황량하고 거친 아칸소 지역에 거주하는 토박이들은 거대한 십자가를 어깨에 짊어지고는 종교에 자신을 의탁한다던지 미신을 따른다든지 하는 식으로 운명의 장난질에 순응하는 한편 나름의 생존 방법을 찾아낸 듯하다.


제이콥을 비롯한 가족들은 온갖 고난을 극복하고 아칸소 지역에 정착할 수 있을까? 아니면 터부시하는 그 존재의 위협에 굴복하여 가족은 해체되어 뿔뿔이 흩어지는 비극으로 끝맺을 것인가.

한 가지 분명한 건 이국의 습지에 뿌리를 단단히 박고 무성하게 자라는 '미나리'처럼 그들은 쉽게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숨어서 그들을 괴롭히는 '운명'이라는 존재의 머리 끄덩이를 붙잡고 밖으로 끌어내서는 눈을 맞추며 외칠 것이다.

"우린 더 이상 널 두려워하지 않아. 비겁하게 숨지 말고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 무릎을 꿇고 주저앉는 한이 있더라도 우린 여전히 한 가족이야. 그 사실만이 우릴 구원하고 살아남게 할 거야."


태생적으로 미나리는 한국인과 닮았다. 와일드하고 터프한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만큼 강인하다. 반면에 터부시하는 거머리 같은 존재들마저 껴안을 만큼 넉넉한 마음씨를 지녔다. 또한 홀로 고립되지 않고, 한데 어울려 군락을 이루어 영역을 넓히는 지혜를 가졌다.

그들이 아칸소든 캘리포니아든 어느 곳에 정착하든 한 가족으로 살아남고 행복하게 지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잠든 가족들의 숨소리를 바로 곁에서 들을 수 있다면, 그들은 각자의 꿈을 향해 천천히 나아가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93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한국 시간으로 다가오는 4월 25일 열리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올해 다양한 부문의 후보작들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는 파악을 못했지만, 작년에는 '기생충'이 아카데미 시상식을 휩쓸었다면 올해는 '미나리'라는 작품이 쾌거를 올리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한국 영화는 그야말로 미나리를 닮아서 어디서든 뿌리내리고 살아남을 것입니다.

Korean movie wonderful,

미나리도 원더풀입니다!


keyword
이전 08화복수의 시작과 끝은 닮은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