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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매화마을에 다녀왔습니다

간만의 가족 나들이

by 라미루이








얼마 만의 가족 나들이인지 모르겠다.

올해부터 네댓 가족이 모여 서울시 아빠단 자조모임을 구성해 활동하기로 했다. 6월 모임은 원주 매화마을에서 농촌 체험 활동을 하는 것으로 아빠들이 단톡 방에 모여 정했다.


솔과 연은 며칠 전부터 멀리 여행을 간다고 마음이 들떠서는 하루에도 서너 번씩 아빠 언제 떠나는 거야? 하고 묻는다. 일종의 징크스처럼, 장거리 여행을 앞두고 아이들은 자잘한 병치레를 하곤 했는데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1년 넘게 걸리지 않던 감기를 어딘가에서 옮았는지 목에 가래가 끓고, 누런 콧물이 흐르고, 마른 기침이 연신 터진다. 여느 감기도 아닌 여름 감기. 오뉴월 지나가는 개도 앓지 않는다는 지독한 여름 감기에 걸린 것이다.

체온은 36.3 도에서 변함이 없다. 열이 높지 않아 코로나는 아닌 듯해 다행이다. 등교를 자주 하면서 또래 아이들과 접촉이 잦아지면서 감기에 걸린 것 같다.

여행 당일 컨디션을 보고 갈지 말지를 결정하자 했는데 다행히 일요일 아침 들어 증상이 나아지면서 출발할 수 있었다. 광주-원주 고속도로에 들어서자 아직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길이 막히지는 않는다.

1시간 넘게 뻥 뚫린 길을 달리다 서원주 톨게이트에서 내려선다. 국도를 달리다 보니 오전부터 길가에 차를 대놓고 계곡에서 물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주변에 깎아지른 듯한 절벽과 수량이 많은 계곡이 있어 '칠봉 유원지'라 불리는 곳. 심지어 치솟은 절벽을 수직으로 오르기 위해 치렁치렁한 로프에 줄지어 매달린 사람들도 보인다. 릿지화를 신고 민소매티에 헬멧을 쓴 암벽 등반가들. 담이 큰 몇몇은 헬맷도 없이 벼랑 끝에 대롱대롱 매달린다. 아내는 보기만 해도 더워 보이고 아찔하다며 조수석에 앉아 몸서리를 친다. 아이들은 방콕에 위치한 키자니아에서 암벽 등반 체험을 하던 기억을 재잘거리며 작년 1월의 해외여행 추억을 떠올리기 바쁘다.


그늘이 짙고 목 좋은 곳마다 어김없이 설치된 텐트와 그늘막 무리를 지나쳐 칠봉 체육공원에 다다르니 줄지어 주차된 차들이 빼곡하다. 일요일 아침부터 사람들 참 부지런하네. 체험장에 도착해 기본적인 체온 체크와 인적 사항을 기재한 후 떡을 메치는 장소로 향한다. 이미 자리를 잡은 가족들 여럿이 옹기종기 모여 토막 낸 찹쌀떡을 굴려가며 노란 콩가루를 묻히고 있다.

"떡 메치는 걸 해야 하는데 아쉽게 다 마쳤어요. 10분만 일찍 오셨어도.."

마스크를 쓴 가이드 님이 아이들을 바라보며 말씀하신다.

솔과 연이 아쉬워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다음을 기약하는 수밖에. 따끈한 떡을 네모난 누르개로 먹을만치 듬성듬성 썰어내고 보슬보슬한 콩가루를 골고루 묻힌다.

"먹어도 괜찮아. 아침부터 멀리 오느라 배고프겠네."

아이들이 비닐장갑 낀 손으로 한두 점 집어서는 입에 털어 넣는다.

"음, 맛있어. 아빠도 하나 먹어봐."

두어 개를 모아 콩고물을 고루 묻혀 맛을 보니 고소한 인절미 맛이 쫄깃한 식감과 함께 입안에 가득 퍼진다.

"이야, 엄청 맛있네요."

매화 마을 주민인 듯한 분이 내 감탄사를 듣고 떡 한 무더기를 더 얹어주신다.

"더 드세요. 떡 많으니까."

아이들이 아침부터 멀리 움직인 탓에 시장기가 도는지 떡을 연신 집어 먹는다.

"근데 아이들 엄마는 어디 가셨대. 아까 같이 온 거 같던데."

"같이 왔는데 오늘 체험은 빠지기로 했어요. 쉬고 싶다고 해서."

"그럼 3명이 체험하는 거네요. 4명이 아니라."

"네."

"그런 가족들 요즘 많아요. 엄마가 힘들어하니까 주말에 아빠가 애들 데리고 와서 체험하고 가는 거지요."

아내는 그늘진 곳에 외따로 앉아 맨발을 플라스틱 의자에 턱하니 올리고는 아이스커피를 마시며 휴식을 취하고 있다. 잠시 후 떡 만들기 체험을 마치고 두 번째 체험 장소로 이동한다.


방금 빚어낸 인절미는 입에서 살살 녹지요


코로나로 인해 거리두기를 해야 하기 때문에 체험 활동은 A팀과 B팀으로 나누어 소규모로 진행한다.

A팀이 앞서 피자를 만들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자 우리가 속한 B팀이 화덕 피자를 만들 차례가 되었다.

체험 담당 선생님의 원주 매화 마을에 대한 소개와 화덕 피자 만들 때 주의할 사항이 이어진다.

동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특산품으로 첫째가는 매실과 참다래, 밤고구마, 양파 등이 유명하고 치악산과 소군산, 칠봉 유원지 그리고 원주 섬강에 둘러싸여 사시사철 주위 경관이 아름답고 물 맑은 동네라고 한다. 체험관 뒤쪽으로 자작나무 숲이 넓게 펼쳐져 있어 현재 둘레길이 조성중이란다. 체험관 2층에 팜스테이를 위한 숙소도 제공되니 관심 있는 분들은 찾아 보길 바란다.

"자, 이제 화덕 피자를 만들어 봅시다."

갑자기 실내가 분주해지며 소란스러워진다.

숙성을 마친 반죽을 옥수숫가루를 고루고루 뿌린 판에 올리고 밀대로 쭉쭉 밀어준다. 원형 틀 크기에 맞도록 둥그렇게 넙데데하게 얇다랗게 밀어댄다.

"땡그렁, 떼그르르!"

연은 밀대를 다루는 게 영 익숙지 않은지 자꾸만 철제 틀을 팔꿈치로 쳐 바닥에 떨어뜨린다. 우여곡절 끝에 도우를 틀에 깔고 토마토 페이스트를 한 숟갈 덜어 골고루 바른 다음 피자 치즈와 페퍼로니, 양파, 피망, 블랙 올리브 등을 토핑으로 올려준다.

"솔아, 양파랑 피망도 올려야지. 먹기 싫다고 그것만 쏙 빼놓으면 되니?"

머뭇거리던 아이는 마지못해 한 꼬집 정도만 양파와 피망을 집어서는 귀퉁이에 올린다. 더 올렸다간 완성된 피자를 입도 안 댈 거 같아 더 이상 채근하지 않았다.

틀에는 구워진 피자를 구분하기 위해 숫자가 쓰여 있다. 난 9번, 솔은 19번 그리고 연은 87번이다.

토핑까지 올린 피자는 교실 뒤에 자리한 화덕에서 구워지기 위해 줄을 지어 대기하고, 아이들은 그 새를 못 참고 밖에 나가자고 조른다.


밀대로 반죽을 밀다가 자꾸만 틀을 바닥에 떨어뜨리는 연


밖으로 나가니 후텁지근한 날씨가 숨을 턱 막히게 한다. 왼편에서 아이들 웃음소리가 들리길래 걸음을 옮기니 꽤 넓은 트램펄린이 있었다. 솔과 연은 우와! 환호성을 지르며 달려간다.

크록스를 벗어던지고 아이들 틈에 섞여 이리 뛰고 저리 튀어 오른다. 방방 뛰어다니다 벌러덩 뒹그르르 나동그라지기도 하고 난리법석이다. 작년 초, 코로나가 유행한 이후로 트램펄린은 구경도 못 했는데 이제야 숨이 트이는 걸까. 마스크를 쓴 아이들의 표정이 밝기만 하다.

10여 분이 지나 땀범벅이 된 아이들이 "아유 더워!" 하며 밖으로 뛰쳐나온다. 에어컨에서 찬 바람이 쌩쌩 나오는 체험장으로 들어가 시원한 물을 마시고 더위를 식힌다.

"점심 드시고 다음 체험을 진행하겠습니다. 불고기에 상추도 준비했으니 같이 쌈으로 드셔 보세요. 여기서 기른 상추가 연해서 아주 맛있답니다."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트램펄린


허기가 졌는지 뷔페식으로 제공된 점심을 두 접시나 가득 담아 뚝딱 해치웠다. 불고기에 오이 소박이, 양파 절임, 고사리 등을 얹어 쌈장을 콕 발라 큼직한 상추로 쌈을 싸 먹으니 천상의 맛이 따로 없다. 볼이 터지도록 한 쌈 두 쌈, 점점 크기가 커지는 상추쌈을 보고 아이들 눈이 휘둥그레진다.

"아빠 그러다 입 터지겠어."

"흐흐, 너희들도 많이 먹어."

아이들도 시골 밥상이 입에 맞는지 배불리 먹는다. 후식으로 제공된 잘 익은 수박은 여간 달지 않아 아이들이 한 접시 따로 가져다가 먹을 정도였다.


푸짐하게 차려진 시골 밥상. 두 접시나 가득 담아 배를 채웠다.


인심 좋은 조리사 님이 아이들 엄마도 같이 와서 먹으라고 했지만 아내는 쑥스러운지 한사코 싫다고 했다. 나중에 푸짐하게 차려진 밥상 사진을 보고 후회하는 아내. 하지만 밥차는 이미 지나간 지 오래다.

식사를 마치고 잠깐 휴식을 취하다가 깡통 기차를 타기로 한다. 트랙터에 핸들, 바퀴가 달린 플라스틱 드럼통을 개조한 열차칸을 열 량 남짓 이어 붙였는데 제법 그럴듯하게 굴러간다. 잘 가꿔진 잔디 축구장을 한 바퀴 반 정도 돌았는데 아이들이 재미있다고 더 타자고 졸라댄다. 그늘 한 자락 찾기 어려운 땡볕이라 다음에 타자고 적당히 둘러댔다. 솔과 연은 다소 실망한 눈치였지만 까맣게 탄 목덜미 위로 비 오듯 땀이 흘러내리는 트랙터 기사 분이 너무 힘들어 보여 어쩔 수 없었다.


마을 주민들이 손수 만든 깡통 기차를 타고 잔디 축구장을 돌아본다.


드디어 마지막 체험 시간이다. 원래 일정대로 하면 오전에 진행하기로 한 감자 캐기 체험이 오후로 미뤄졌다.

체험장에서 자차로 3분 정도 이동하니 조그마한 감자밭이 있었다. 농부들의 손때가 거뭇하게 묻은 호미를 들고 흙더미를 파헤치니 탁구공만 한 알감자부터 어른 주먹만 한 감자까지 각양각색의 감자들이 쏟아져 나온다.

허리를 숙인 아이들이 신이 나서는 감자를 캐서 내게 전해준다. 뻘뻘 땀을 흘리며 5분 남짓 감자를 캐니 비닐 3 봉지를 가득 채우고 말았다. 무더운 날씨에 오래도록 쭈그리고 앉아 밭을 캘 수도 없어서 이만 철수하기로 한다. 무게를 재니 3kg을 훌쩍 넘겨서 가이드 님이 죄송하다며 몇 개를 덜어낸다.

"이거 너무 많아서 덜어야 할 거 같아요. 죄송하네요."

"아니에요. 호미를 들고 감자를 직접 캐본다는데 의미가 있는 거죠."

그가 어른 팔뚝만 한 애호박을 두 개나 아이들 품에 안겨주려 하시길래 손 저어 마다하며 한 개만 받겠다고 했다. 방금 캐낸 흙 감자 3 봉지와 커다란 애호박을 안고 차로 돌아와 트렁크에 실는다.

트렁크에는 이미 선물로 받은 다래 잼 세 박스가 자리 잡고 있다.


원주 매화 마을 주민 분들이 선물한 감자와 애호박, 다래 잼 그리고 화덕 피자까지. 덕분에 차 트렁크가 꽉 찼습니다.



일정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이들이 더운 날씨에 피곤했는지 차 뒷좌석에서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다 그대로 곯아떨어진다. 서울시 아빠단 자조모임 단톡 방에는 오늘 찍은 단체 사진과 함께 집에 잘 도착했다는 메시지가 연달아 도착한다.

다음에도 아이들이 즐길만한 농촌 체험 프로그램이 있다면 적극 참여하기로 했다.

가까운 농촌을 찾아 그 지역의 다양한 농산물을 직접 채취하고, 요리를 하는가 하면 물놀이도 즐길 수 있으니 당일 치기로 가족 여행을 떠난다면 강력 추천하고 싶다. 비용도 서울시와 농협중앙회 지원을 받아 저렴하니 부담이 없다.

더불어 체험 활동을 주관하는 그 지역 주민들과 이런저런 살아가는 얘기도 나누고, 현지 주민만이 알고 있는 그 지역의 숨은 맛집이나 명소, 즐길 거리도 찾을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유익한 여행이 어디 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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