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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건강 검진하는 날

아이들의 건강은 이상 무

by 라미루이



솔과 연이 건강 검진받는 날

아이들은 불주사 맞고 피 뽑는 거 아니냐고

진저리를 치지만 그럴 리 없다 소변 검사만 한다

안심해도 된다 어르고 달래

가까스로 병원에 도착했다


지하 2층 건강검진 센터에 도착하니

낯익은 엄마들 아이들과 마주친다

다들 마스크를 쓰고 있어 하마터면 그냥 지나칠 뻔했다

어떤 엄마와 눈이 마주쳤는데

누구지 누구시더라 기억이 가물했는데

옆에 손 잡은 아이 눈매를 보고

아 솔이 친구네 뒤늦게 알아차렸다

이미 인사 나눌 타이밍은 지났고

나중에 마주치면 인사하기로 한다


문진표 작성하는데 아이들 주민번호를 묻는다

생년월일은 아는데 뒷번호가 흐릿해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핸드폰 메모장에 적어 놓은 걸 떠올리곤

앱을 열어 도움을 받았다

갈수록 전화번호나 생일을 기억하는

지인들은 줄어들고

자신의 뇌 주름에 새겨 넣어야 할 기억들을

손에 쥔 디지털 기기에 맡기니

어느 날 전쟁이 일어나 모든 기기가

먹통이 된다면 '메멘토'의 주인공처럼

피부에 빈틈없이 문신으로

절대 지워지지 않아야 할

기억을 새겨야 하나 싶다


드디어 검진을 시작한다

아이들 혈압을 재는데 팔뚝을 조여 오는 느낌이

어색하고 생소한지 표정이 얼어있다

긴장한 탓에 혈압이 높게 나와

두 번 세 번 측정하니

점점 혈압이 정상으로 떨어진다

마음 편히 가지라고 심호흡하라고

아무것도 아니라고 옆에서 안심시켜 주었다

키와 몸무게를 재고

청력 검사도 하고

시력 검사를 하는데

언니 솔은 잘 때 드림렌즈를 끼기 때문에

작은 글씨도 척척 알아보고

시력이 높게 나온다

하지만 연은 안경을 쓰고 있음에도

멀찌감치 서 있는 아빠 눈에 잘 보이는 숫자도

시원스레 대답을 못하고 헤맨다

어릴 때 근시로 인해 안경을 쓴 아빠 때문에

(군 제대 후 98년에 라식 수술을 받고 안경을 졸업했다)

아이들 눈이 나쁜 거 같아

괜스레 미안해진다

아내 또한 어릴 적부터 심한 근시인지라

(망막 두께 때문에 라식 수술도 힘들다)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눈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기에

안경이 얼마나 귀찮고 성가신지

누구보다 잘 알기에

멀리 너른 하늘 보와 길게 드러누운

산자락을 바라볼 수 있는

관악산으로 아이들을 자주 데려가지만

타고난 시력만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소변 검사를 위해 솔과 연은 나란히 손을 잡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난 같이 들어갈 수 없어 언니에게 도와주라고 하니

걱정 말라고

밖에서 기다리라고 한다

집에서 오줌을 누고 와서

오줌보가 텅 비어 있지는 않을까

서투른 탓에 종이컵을 쏟는 건 아닐지

손이나 옷에 묻히진 않을지

이런저런 걱정이 앞서지만

잠시 후 아이들은 환한 얼굴로

손까지 깨끗이 씻고 나왔다

물어보니 언니가 동생의 종이컵을 받아서는

세면대에 놓고 나왔다고 한다

이제는 아이들이 소변 검사 정도는

혼자(서로 도와서) 해결할 수 있을 정도로

훌쩍 자랐음에 마음이 뿌듯하다


아이들이 채혈실에 앉아 피를 뽑는 아저씨를 보고

으아악 소리를 지르며

몸을 웅크리며 지나간다

아빠도 건강 검진을 받을 때마다

저 무시무시한 주사기에

검붉은 피가 천천히 차오르는 걸

두 눈으로 똑똑히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몸 밖으로 흘러나온 뜨끈한 피를

묵묵히 바라볼 정도로

담이 세고 타고난

강심장은 아니기에

내 아이들 또한 몸서리 칠 정도로

피를 보기 두려워하는 건 당연하겠지


구강 검진을 받기 전에 문진을 하는데

담당 의사가 아이들이 또래 친구들에 비해

과체중이라고 관리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솔보다 연의 표정이 좋지 않다

8살 아이들의 평균 체중보다 다소 높게 나와서

앞으로 매일 줄넘기를

200번 넘겠다고 다짐까지 한다

좋아하는 간식도 한 번으로 줄이겠다고

벌써부터 다이어트를 결심하다니

엉거주춤 옆에 선 아빠의 마음이 짠해 온다

이게 다 코로나 때문이다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놀이터에서

신나게 뛰어다니고 놀지를 못하니

갈수록 배가 나오고 몸이 둔해지는 것이다

앞으로 백신이 보급되고 외부 활동이 늘어나면

예전의 날씬한 솔과 연으로

자연스레 돌아갈 거라고

아이들을 달래준다


마지막으로 아이들의 치아를 구석구석 들여다본

담당 의사는 양치질 잘했네 하며

100점 하고 오케이 사인을 보낸다

아이들의 건강에 큰 이상이 없기에 다행이다

어려서부터 건강을 잃는다는 건

막 날아오르려는 아이들의 두 날개를

꺾이게 하고

흥에 겨워 춤추어야 할 아이들의 몸짓을

움츠러들게 하기에

뭐가 그리 좋은지

까르르르

재잘대며 저 앞으로 달려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며

아빠의 입가에 웃음이

슬며시 번지는 걸

지울 수 없다.


부디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만 자라주길 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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