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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로는 양이 안차

by 라미루이






아내가 오늘 늦게 들어온다고

치킨 시켜다 먹으랜다

후라이드 반 달콤 양념 반

식탁 위 차라락 펼치고

아이들 실컷 먹으라

쉬는 척 내 방에 들어가

아이들 거진 먹을 때쯤 슬슬

나오려 하는데 갑자기

야아! 그런 게 어딨어 언니이,

창 밖 하늘은 마르고 쾌청한데

난데없는 벼락이 때리고

후텁지근한 오뉴월 밤

때 아닌 찬 바람이 쌩쌩 들이친다

뭔 일인가 냉큼 나가 식탁을 둘러보니

솔이 성이 나서 씩씩

얼굴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연은 통통하게 살 오른 닭다리 하나

들고는 어쩔 줄 몰라한다

왜 그러냐 말을 해 봐라 채근하니

동생이 첫 개시부터 다릿살 잡아 뜯더니

글쎄 말이지

연달아 마지막 다리까지 집어 올려

한 입 아앙 깨물었다가 언니에게

욕 한 바가지를 뒤집어쓰고

팽팽히 대치 중이었다


결국 내가 나서서

서로 쥐고 있던 치킨 조각을

맞바꾸게 하고 앞으로 꼬꼬닭에

둘 밖에 없는 다리나 날개 따위는

하나씩 사이좋게 나눠 먹는 게

일종의 매너라고 일러 주었다

그제야 식탁을 반으로 쪼갤 듯

사정없이 내리치던 천둥 번개를

머금은 먹구름이 가시고

한 줄기 평화가 깃들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아이들이 양껏 배 채웠을까

혹시 방 안에 틀어 박힌

아빠 눈치 보다가 많이 남기진 않을까

이쯤 해서

식탁에 앉을까 말까

괜스레 망설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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