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슬기로운 간식 생활을 즐겨요

토핑 아이스크림 & 곰마 젤리 만들기

by 라미루이







두 번째 서울시 아빠단 이벤트는 "아빠와 아이들이 서로에게 간식 만들어 주기"입니다.

카페의 후기를 보니 다른 프로 아빠들은 토마토 스튜를 만들고, 파전도 부치고, 페퍼로니 피자도 굽고 거한 식사를 마련한다지만 우리는 질보다 가짓수?로 승부를 보기로 합니다.

아빠의 요리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지만 시간 관계상 정식이 아닌 이벤트 취지에 맞게 조촐한 간식을 마련하는 뜻깊은 시간을 가지기로 합니다.


일단 냉장고를 활짝 열어봅니다. 냉장실에는 아이들이 꺼려하는 상추, 오이, 고추 등 초록 야채와 깍두기, 오이소박이 같은 매운 김치가 그득합니다. 과일 칸을 열어보니 참외나 복숭아 같은 여름 과일은 온데간데없고 초코파이와 쿠키 같은 과자류만 자리를 차지하고 있네요.

이번엔 냉동칸 차례입니다. 열자마자 간당간당 끝에 매달려 있던 푸른색 플라스틱 용기가 뚝 떨어져 내 소중한 발등을 내리찍을 뻔했습니다. 휴우, 다행히 바로 옆에 떨어졌네요. 십 년 감수했습니다. 아이들 간식 한 번 만드려다가 발등 부서질 뻔했네요. 떨어져 뒹구는 용기 안에는 아이스크림이 반쯤 남아있습니다. 지난주에 코스트코에서 사 온 맥키스 아이스크림입니다. 나름 가격이 착한 데다 우유 맛이 진하게 감도는 풍미의 아이스크림이라 가성비가 좋아서 코스트코에서 장 볼 때 자주 사 오는 아이랍니다.

"아빠, 나 아이스크림 먹고 싶은 거 어떻게 알았어?"

"나도 아이스크림 먹고 싶다."

주방에서 뭘 깨고 부수는 요란한 소리에 솔과 연이 달려와 발등이 찍힐 뻔한 아빠는 걱정하지 않고 자기들 먹을 일만 생각합니다. 원래 아이들이 그런 겁니다. 먹거리 준비하는 아빠 걱정보다는 자기들 입이 먼저인 거지요. 이 상황에서 아빠 괜찮아?라는 말이 아이 입에서 자연스레 나온다면 근래에 보기 드문 효녀 심청이 난 것이니 어여쁘다 귀이 여겨주세요. 대부분의 아이들은 사소한 부모의 아픔 따위는 자연스레 낫겠지 하고 해맑게 웃으면서(사내아이는 무덤덤하게) 그냥 넘어갑니다. 살짝 서운하지만 하루 이틀 그런 것도 아니고 나중에 아빠가 크게 아플 때나 잘 보살펴 달라고 애써 마음을 달래 봅니다.

"그냥 아이스크림만 먹으면 재미없으니까 아빠가 토핑으로 몇 가지 올려줄게."

"알겠어, 아빠."

아이들은 기대에 가득 찬 표정으로 식탁에 앉습니다.

사실 아빠의 속셈은 뻔합니다. 아빠단 이벤트도 완수하고 아이들 먹을거리도 해결하고 그동안 뒷전으로 밀려 쌓이고 쌓인 악성 재고 처리도 하는 겁니다. 무려 일석 삼조를 노리는 아빠의 욕심이 과연 아이들에게 통할 수 있을까요?

밥솥 뒤에 숨겨둔 락앤락 용기에 반쯤 남은 시리얼이 눈에 들어옵니다. 크랜베리가 들어있는 나름 고급 시리얼인데 아이들이 우유를 잘 안 마셔서 그런지 인기가 없네요. 뚜껑을 열어 냄새를 맡아보니 다행히 쩐내를 풍길 정도의 절망적인 상태는 아닙니다. 길게 고민할 필요 없이 저 아이가 토핑 후보 일 순위입니다.


맥키스 아이스크림을 몇 스쿱 덜어서 머그컵에 담고 시리얼을 고루고루 뿌려 줍니다. 새콤한 자줏빛 크랜베리가 보이도록 많이 올리는 것이 포인트입니다. 스푼으로 뒤섞는 것은 아이들의 몫이지요. 잘 섞어서 한 입 맛보는 아이들.

"맛있어. 아빠."

"크랜베리 더 주면 안 될까?"

당연히 가능합니다. 크랜베리와 함께 덩어리 진 그래놀라까지 듬뿍 얹어줍니다. 마음 같아선 수북이 덜어주고 싶지만 한 번에 재고를 떨어내면 아이들이 먹다가 질려서 스푼만 휘적대다가 아빠, 이거 남기면 안 돼? 하고 중도 포기할 수도 있습니다. 지나친 욕심은 금물. 다음 기회를 노려봅니다.

"아빠, 아이스크림 더 먹어도 돼?"

"나도 나도!"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컵을 비운 아이들이 한 목소리로 외칩니다.

이번엔 너무 달다고 아이들이 잘 먹지 않는 오레오 초코 쿠키가 타깃입니다. 한 봉지 꺼내어 뜯지 않은 채로 주먹으로 꽝꽝 두드려 줍니다. 너무 잘지 않게, 적당히 부서졌다 싶을 때 봉지를 뜯어서 하얀 아이스크림 위에

솔솔 뿌려줍니다. 본래 목적에 걸맞게 배보다 배꼽이 커 보이도록 두터이 덮어 줍니다.

"자, 이러면 마트에서 파는 쿠앤크 아이스크림보다 더 맛나겠지?"

"우와, 그러네."

아이들은 또 머리를 파묻고 두 번째 아이스크림에 탐닉합니다. 아이스크림의 사르르 부드러운 식감과 오레오 쿠키의 퍼석하고 달큼한 맛이 잘 어울리도록 스푼으로 잘 뒤적거리고 섞어서 저도 한 입 맛을 봅니다.

"으음, 맛있네."

아이들도 이 정도면 만족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리며 아이스크림을 녹여 먹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만들어 볼까 하는데.."

"이번엔 뭐 넣을 건데? 아빠."

"근데 과자는 좀 질리거든. 이걸로 충분해."

냉큼 냉장고 깊이 모셔둔(처박힌) 정체 모를 밀폐 용기를 꺼내 옵니다.

"아빠, 그거 뭐야?"

"과자는 퍽퍽하니까 이제 상콤한 걸 올려줄게."

용기를 개봉하니 짙푸른 알맹이들이 개구리 알처럼 송알송알 달라붙어 꼬물거립니다.

아내가 전에 먹다 남은 약간의 냉동 블루베리를 청으로 담가 고이 모셔 두었나 봅니다.

두어 스푼 떠서 아이스크림 위에 질척하게 얹어 아이들에게 건네주니 아무 대꾸 없이 환장하고 먹습니다.

"배부른데, 아빠?"

"배가 똥똥해. 흐흐."

"너희들 이따 밖에 나가서 운동 좀 해야겠다. 안 되겠어."

솔과 연의 배가 올챙이 배처럼 볼록 튀어나왔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야외 활동이 제한적이라 살이 찔 수밖에 없습니다. 하는 수 없이 시간만 나면 틈틈이 밖으로 데리고 나가 줄넘기를 시키고 있네요.

"줄넘기 100번 하는 거다. 알았지?"

"알았어. 그럼 아빠는 뭐할 건데?"

"아빠는 너희들 줄넘기할 동안 스쿼트도 하고, 밤에는 산도 오르잖아."

"그렇네."

"나중에 체중계 올랐다가 살쪘다고 한숨 푸욱 내쉬지 말고 열심히 하도록."

"넵, 아빠."

아이들의 씩씩한 목소리가 집안에 크게 울려 퍼집니다.

빠가 소소하게 준비한 슬기로운 간식 생활(이라 쓰고 실상은 악성 재고 떨이)을 마무리합니다.


아이스크림에 여러 토핑을 올려 아이들에게 만들어 줍니다.





오후에는 뜻밖의 깜짝 선물이 도착했는데요. 아빠단에서 집콕 박스라고 곰돌이 젤리 만들기 키트와 간단히 즐길 만한 보드 게임이 담긴 꾸러미가 택배로 왔습니다. 아이들이 곰돌이 젤리 키트를 보자마자 아빠에게 간식을 대접해 준다면서 바로 만들어 보자 하네요. 내친김에 아빠단의 이벤트를 끝내기로 합니다.

젤리 키트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곰 모양의 젤리를 손쉽게 만들 수 있는 모든 재료와 기구가 담겨 있습니다.

귀여운 곰(아이들은 '곰마'라고 불러요) 젤리를 찍어내는 틀과 젤라틴 액을 떨어뜨릴 수 있는 귀여운 스포이드까지 들어 있답니다. 젤리의 맛도 포도, 오렌지, 딸기맛 세 가지라 아이들이 질리지 않고 즐길 수 있지요.

만드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적당히 데운 물을 컵에 덜어 젤라틴을 녹이고 식기 전에 스포이드에 담아 틀에 채우면 끝.

젤라틴 액까지 준비해 아이들에게 맡기면 일사천리로 알아서 뚝딱 다 끝내더군요.

이후에 말랑한 젤리가 담긴 틀을 냉장고나 서늘한 곳에서 굳힌 후 꺼내어 맛보면 됩니다.

"아빠, 먹어 봐. 완전 하리보 젤리 저리 가라네."

"우리가 만든 젤리니까 먹어 봐요."

하도 권하길래 두어 알 맛을 봤는데, 이제 나이가 들어서인지 몰캉한 젤리가 그리 당기지는 않네요.

아빠가 나머지는 먹었다 치고, 만드느라 수고한 아이들에게 양보합니다.

앙증맞은 연보라색 젤리를 입에 넣자마자 "음, 달콤해." 감탄사를 외치는 아이들.

핑크색 틀 한 판에 25개의 젤리가 만들어지는데 하나씩 둘씩 털어 넣다 보니 얼마 안 되어 텅텅 비었습니다.

"아빠, 포도맛 다 먹었는데 이번엔 딸기맛.."

"오늘은 많이 먹었으니까 내일 만들자. 알았지?"

"쳇, 알았어."

"언니야, 아쉽지."

못내 아쉬운 듯 입맛을 쫍쫍 다시다가 서로를 바라보며 싱긋 웃는 아이들.


오늘 아이들이 깊은 잠에 들면

투명한 오방색 곰마 젤리들이 하나둘 나타나

이내 친구 되어 들판을 뛰어다니다

숨바꼭질에 얼음땡을 하다가는,

끝내 손에 손잡고 몽실한 아이스크림

핥아 올린 구름 사이를 이리저리 헤매는

그런 신나는 꿈을 꿀 듯합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한 마리로는 양이 안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