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오전부터 남미의 월드컵이라 불리는 코파 아메리카컵 결승이 피곤에 지친 몸을 억지로 일으켜 티비 앞에 앉게 한다.
남미의 영원한 라이벌 브라질과 아르헨티나가 격돌했다. 전반 초반에 뒷공간을 열어준 롱패스를 앙헬 디마리아 선수가 받아 골키퍼의 손을 넘기는 절묘한 칩샷을 성공시킨다. 이후 양 팀은 공을 가진 선수에게 난무하는 태클과 반칙 세례를 뚫지 못하고 추가골이 터지지 않았다.
브라질의 막판 공세를 온몸으로 막아낸 아르헨티나는 종료 휘슬이 울리자, 완장을 차고 있는 등 번호 10번 선수에게 모여들어 승리를 축하했다. 아르헨티나 축구의 심장이자 역대 최고의 플레이어로 남을 만한 '리오넬 메시'가 동료 선수들과 한 몸이 되다시피 부둥켜안고 환호성을 내지른다. 메시는 메이저 대회 첫 우승의 감격을 누렸고, 아르헨티나는 28년 만에 남미 축구의 왕좌에 오르는 쾌거를 올렸다.
패자의 수장, 네이마르는 혈전이 끝나자 그 자리에 주저앉아 양손을 들어 올리고 고개를 숙인 채 오열했다. 동료 선수들의 격려를 받고 몸을 일으킨 그는 곧바로 그라운드를 가로질러 누군가에게 다가갔다.
다음 순간, 메시와 네이마르는 서로의 몸을 껴안고 귓속말로 축하와 위로의 말을 주고받았다.
이어서 UFC의 264번째 경기가 열린다. 메인 경기 이전에 치러진 매치업 중에 인상 깊은 장면이 있었다.
헤비급 경기 시작 1분 여만에, 난타전 중 왼손 펀치를 상대의 안면에 적중시켜 상대를 넉다운시킨 'Tai Tuivasa' 선수. 그는 곧바로 철제 케이지 위로 올라가 자신이 신던 나이키 미드탑 운동화에 맥주를 가득 따르고는 단숨에 마셔 버렸다. 이전에 보지 못한 기상천외하면서도 파격적인 승리 세리머니에 관중들은 열광했다.
문제는 세리머니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것.
그는 승리의 감격에 취한 나머지, 옥타곤에서 내려와 라커룸으로 가는 도중에 관중이 자신의 신발에 따라준 맥주를 연거푸 두 잔이나 마셨다. 그중 한 잔은 짓궂은 팬이 (어디서 구했는지) 타바스코 소스를 듬뿍 말아준 덕분에 원샷을 한 투이바사 선수는 연신 기침을 하며 눈물, 콧물을 쏙 빼는 불상사가 터졌다.
그럼에도 두 손을 쳐들고 관중의 환호에 답하던 그는 경기장을 빠져나가기 전에 뭔가 모자랐는지, 멈춰 서서 천장을 바라보고 입을 한껏 벌렸다. 2층에서 어느 관중이 흘려주는 맥주를 받아마신 그의 입에서 넘친 누런 액체와 하얀 거품이 뒤섞여 바닥까지 흘러내린다.
잠시 후, 메인이벤트가 열린다. 모두가 기대하던 라이트급 챔피언 포이리에와 맥그리거의 3차전 대격돌이다.
굳이 적자면 'Re-Re-Match' 정도 될까. 살벌한 눈빛을 주고받는 두 선수는 종이 울리자마자 날카로운 펀치와 킥을 교환한다. 구석에 몰린 맥그리거의 오른 허벅지를 들어 균형을 무너뜨린 포이리에가 테이크 다운에 성공하는 듯 하지만, 반대로 길로틴 쵸크를 당해 목이 제압당하는 상황에 처한다.
포이리에는 타격도 강력하지만 소위 말하는 그래플링, 즉 바닥에 엎드려 상대를 몰아붙이고, 누르고, 조르고, 꺾는 기술에도 능하다. 아래에 깔린 맥그리거의 왼팔을 누르고, 코너로 밀어붙여 목을 조르는 올가미에서 빠져나온 포이리에. 이후 그의 자비를 모르는 엘보(팔꿈치) 샷이 연달아 터지면서 맥그리거의 안면은 벌겋게 달아오른다.
1라운드를 20초가량 남겨두고 심판에게 스탠딩을 알리는 포이리에. 이대로는 결정적인 한 방을 내리꽂기가 어렵다고 판단한 것일까. 그의 결정은 과연 옳은 판단이었을까? 승리의 여신 니케는 과연 누구에게 승리의 입맞춤을 보낼 것인가.
심판의 중재 하에 두 선수는 일어나 다시 격돌한다. 서로의 스트레이트 펀치가 엑스자를 그리며 교차하는 사이, 맥그리거가 갑자기 비명을 내지르며 뒷걸음질 치더니 주저앉는 게 아닌가.
약점을 내보인 라이벌에게 연달아 면도날 같은 발톱을 박아 넣고 휘두르는 수사자가 상대를 바닥에 눕힌다.
"Wow, woow!"
해설자는 믿기지 않는 듯 굵은 어조로 연거푸 감탄사를 뱉는다. 그와 동시에 1라운드 종료 벨이 울린다.
곧이어 맥그리거는 자신의 왼쪽 발목을 가리키며 뭐라고 외친다.
방금 전 상황을 보여주는 슬로비디오가 재생되자, 지켜보던 이들은 한 목소리로 "Horrible!"을 외치며 경악을 금치 못한다. 대치 상황에서 맥그리거의 뒷 체중이 실린 왼 발목이 안쪽으로 접질리며 90도로 꺾여버린 것이다. 그 바람에 운동 범위를 벗어난 그의 복숭아뼈 위 부러진 면이 그라운드에 닿을 정도로 심각한 골절상을 입은 것.
그간 UFC에서 안면을 뒤덮는 벌건 피가 터지고, 암바를 당한 선수의 어깨가 부러지거나 빠지는 사고가 종종 있었다. 하지만 이런 쇼킹하면서도 끔찍한 부상이 메인이벤트에서 터진 건 처음이 아닌가 싶다.
1라운드에 이어 다음 라운드에서도 수세에 몰릴 맥그리거의 치욕적이면서 비참한 패배를 예감한 그의 왼쪽 발목이 자신을 기꺼이 희생함으로써 그를 구원한 것일까.
감히 일어설 시도도 못한 채, 자신의 발목을 원망스레 바라보는 맥그리거는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고 있다.
더 이상 격투를 지속하지 못하리라 판단한 담당 의사가 '스탑'을 선언한다.
포이리에가 승리했다. 2차전에 이어 리-리매치에서도 만만치 않은 적수, 맥그리거를 쓰러뜨린 것이다.
맥그리거는 왼쪽 발에 부목을 댄 채, 푹신한 침대에 누워 퇴장한다. 다가온 팬들에게 자신이 아직 죽지 않았음을, 완벽하게 패배하지 않았음을, 다음 매치업을 원한다고 기고만장하게 외치지만 관중석의 분위기는 싸늘하다. 재도전을 위해 맥그리거는 자신을 주저앉힌 발목이 완전히 회복되어야 할 것이고, 포이리에는 챔피언 벨트를 허리에 두른 채, 왕좌에 걸터앉아 라이트급의 다른 도전자들을 사나운 눈길로 노려볼 것이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포이리에는 경기 초반 맥그리거의 왼발 킥을 체크하면서 그의 발목에 이상이 있음을 눈치채고 손가락으로 가리켜 어필했다고 한다. 이때 금이 갔던 왼쪽 발목이 1라운드 종료 직전, 뒤틀리면서 완전 골절상을 입은 것이 아닌가 추측을 해 본다.)
이번 주말을 마무리하는 빅게임은 이것으로 끝이냐고? 당연히 아니다.
어쩌면 내일 새벽까지 당신의 몸 밖으로 뿜어져 나온 아드레날린이 멈추지 않을지 모른다.
글을 쓰는 이 순간, 영국 런던 윔블던에서는 남자 단식 파이널에 올라온 두 선수가 치열한 스트로크 싸움을 벌이고 있다. 세계 테니스 랭킹 1위 조코비치와 신예 베레티니가 우승컵을 놓고 혈투를 벌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