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자전거의 페달을 밟고, 킥보드를 타다가 지겨울 때쯤 미끄럼틀에 올라 꽈배기처럼 회전하며 내려오는 미끄럼을 타며 즐겁게 놀고 있었다. 아이는 낑낑대며 다소 높은 계단을 기어오르다시피 꼭대기까지 올라 엉거주춤 앉고는 양손을 번쩍 들고 신나게 내려온다.
내려오는 도중에 코너 중간에서 기다리는 나와 한쪽 손을 짝 마주치며 하이파이브를 한다.
이 과정을 열 번 정도는 반복해야 성이 찬다. 체력이 남아돌 때는 스무 번도 넘게 왔다 갔다 하고 내려온다.
대체 지치지도 않는지. 아이들은 노는 중에 방전되는가 싶더니 어느새 급속 충전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회복력이 뛰어나다.
가끔은 저러고 놀다가 탈진하여 쓰러지지 않을까 걱정도 되지만 그런 걱정은 아이가 아닌 점점 눈이 풀리는 내가 해야 할 것이다. 찜통에서 막 나온 백설기 같은 하얀 뺨을 빨갛게 물들이며 티 없이 웃는 아이들
한참을 그렇게 놀다가 그네로 옮겨간다. 그네 안장에 쏙 들어가는 아이를 올려주고 뒤에서 천천히 밀어준다.
가끔은 아빠들이 흥에 취해 점점 세게 밀어주다 아이들이 속도를 못 이기고 그네에서 뚝 떨어지는 경우가 있다.
나도 모르게 '헉' 소리가 나온다. 근처에 옹기종기 앉아 있던 엄마들의 으악 소리가 먼저 터진다.
일전에 솔도 내가 신이 나서는 더 높이 더 빨리 밀어주다가 그만 그넷줄을 놓치고 앞으로 고꾸라 진적이 있다. 옆에서 기다리던 다른 엄마가 자지러지는 비명을 질렀는데 나보다 더 놀란 듯 싶었다.
서둘러 주인 없는 그네를 휘어잡아 멈추게 하고, 아이에게 다가가니 다행히 손을 먼저 짚어 얼굴은 다치지 않았다. 바닥이 푹신한 쿠션인지라 충격 흡수가 된 모양이었다.
그때 이후로 한동안 그네를 멀리 하다가 얼마 후 다시 타기 시작했는데 소심해져서인지 그네가 높이 올라가면 "무, 무, 무셔버." 하면서 내게 신호를 준다. 제발 속도를 줄여달라는, 자제해 달라는 의미인 것이다.
그네 옆에 기다리는 언니들이 있어 적당히 타다가 양보한다. 이어서 코끼리, 얼룩말, 사자 모양의 용수철 달린 목마를 타고, 신이 나면 다시 미끄럼틀로 돌아가 무한반복을 하는데 오늘은 아는 친구들이 없어서인지 다른 곳으로 가자고 조른다.
추운 날씨 탓에 꽁꽁 싸맨 채 그네를 타는 아이
저런 아이의 해맑은 웃음을 잃지 않는 것이 무병장수의 비결이다.
근처 청룡산에 자리 잡은 유아 숲으로 천천히 걸어간다.
황소개구리 수십 마리가 시끄럽게 울어대는 조그만 호수를 지나 10분 정도 올라가면 아기자기하게 구성된 유아 숲이 나타난다.
수돗가에 이미 자리 잡은 언니, 오빠들은 비닐봉지, 페트병, 모래 놀이 도구에 물을 가득 채우고는 서로에게 뿌려대고 휘갈기는 장난을 치느라 정신없다. 주변의 엄마들이 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자 '예에~' 하고 실망한 표정으로 주변의 나무에 물을 주기 시작한다. 이렇게 노는 아이들을 유심히 지켜보는 솔.
아이들은 코끼리며 펭귄 모양의 물뿌리개와 그릇에 각자 역할을 부여해
풍덩 목욕시키기,
1등만 살아남는 수영 대회,
물에 빠진 동물들을 구해주는 119 놀이를 매번 바꿔가며 시도한다.
활동적인 남자아이들은 온몸이 흠뻑 젖도록 펌프식 수도가 설치된 통나무 수로(가운데가 깊이 파여 있다.)를 따라 손으로 열심히 휘저으며 물을 저 아래로 흘려보낸다.
누군가는 신발을 벗어 물을 가두는 댐을 만들기도 하고, 둥근 자갈을 수북이 퍼 담아 물 흐름을 막기도 한다.
솔은 내성적인 편이라 낯을 가리기도 하고, 아이들과 어울리기보다는 독립적인 놀이를 할 시기라 거리를 두고 지켜보다가 깔깔거리며 웃는다.
그들이 노는 방법과 나누는 대화, 행동들을 유심히 관찰하는 아이.
아, 이럴 때는 저렇게 어울려 놀면 더 즐겁게 놀수 있겠구나. 이런 상황에서 저런 행동과 말은 적절하지 않구나 등을 배우는 것이다.
바닥에 뒹구는 주인 없는 페트병을 주워 솔에게 건네주니 물속에 깊이 담그면 뽀그르르 거품을 내며 채워지는 걸 신기하게 바라본다. 다시 꺼내 채워진 물을 버리고는 담그길 수차례 반복하다가 흐르는 물에 배처럼 띄워 보낸다. 저 아래로 떠내려가는 페트병을 따라가다가 넓은 바다에 다다르면 다시 상류로 데리고 오길 수십 번.
역시 아이들은 단순 반복 놀이의 황제이자 마스터라고 할 수 있다.
엄마, 아빠가 든든히 옆을 지키고, 먹을거리와 용변만 해결되면 밤새도록 여기서 놀 수 있을 것이다.
솔의 바지도 물에 젖어 바닥으로 물이 뚝뚝 떨어진다. 신발은 다행히 크록스를 신고 나와 걱정이 없다.
어떤 아이들은 원형 수조에 들어가 물장구를 치고, 친구들과 엄마에게 물을 뿌려대고 당한 사람들은 아악 하고 비명을 지르며 도망간다.
솔도 간절히 원하길래 번쩍 들어 올려 허리까지 오는 수조에 넣어주니 좋다고 함박웃음을 짓는다.
양손을 모아 조심스레 물을 뜨더니 짓궂은 표정으로 날 향해 뿌려댄다. 이미 예상하고 각오한 상황이다.
"으하핫!"
나도 지지 않고 손바닥을 펼쳐 물을 튕겨내니 양손으로 막다가 깔깔거리며 자지러지게 웃는다.
아이들의 저런 해맑은 웃음을 평생토록 간직할 수 있다면 인간은 백세까지 무병장수할 수 있겠지.
남을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터지는 저 웃음을 해가 갈수록 잃어버리는 것이 노화를 앞당기고 만병을 불러들이는 근원이리라.
물놀이는 해가 뉘엿뉘엿 질 때까지 계속되었고, 난 솔이 좁은 수로를 따라 걸어갈 수 있도록 옆에서 부축하고 바닥으로 내려주느라 슬슬 체력이 바닥나는 시점이 다가왔다.
다른 엄마들이 다가와 이제 집에 가자고, 맛난 저녁 먹으러 가자고 아이들을 채근한다.
이때다 싶어 솔에게 집에 가자 근엄하게 말하니 어림도 없다.
당연히 더 놀자고 집에 가기 싫다고 흙탕물 가득한 수조에 자빠져 누울 태세다.
"다음에 또 오자, 오늘은 내려가서 맛있는 과자 사줄게 알았지?" 하니 아이는 잠시 망설이다
"그럼, 쭈파추스 싸탕 하나" 하고 방긋 웃는다.
역시 집에 가자고 꼬드기는 데는 사탕발림이 최고구나.
미리 챙겨 온 수건으로 젖은 아이를 대강 닦아주고 어둑해진 산을 내려온다.
아이도 힘이 드는지 목말을 태워달라 매달렸지만 흠뻑 젖은 바지로 인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산 중턱의 호수로 다가가자 조용하던 개구리들이 목청 높여 울어댄다.
흠칫 놀란 아이는 넘어질 뻔 하지만 내 손을 잡고 간신히 버틴다.
"너무 겁내지 마. 옆에 아빠가 있는데 뭐가 무섭니?"
솔의 조그만 손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 꽉 잡고 힘차게 발걸음을 내딛다가 아이를 번쩍 들어 올려 품에 안고는 냅다 달리기 시작한다.
자줏빛으로 하늘을 물들이며 저물어가는 해를 바라보며, 막대 사탕을 입에 물고 오물거리는 아이를 보고 있자니 나도 30년 전으로 돌아간 듯 절로 웃음이 나온다.
비록 몸은 피곤하지만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는 회춘의 기쁨을 맛볼 수 있기에,
아이와 함께하는 육아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을 수 있다.
(호수를 독차지한 그 개구리들은 얼마 후 감쪽같이 사라졌다. 시끄럽다는 민원에 담당하시는 분들이 약이라도 친 걸까? 아니면 그물로 걷어내 살처분시킨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