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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는 내 발목을 잡고 늘어진다

지금 여기, 이 순간에 집중하며 살아간다

by 라미루이








요즘 들어 과거의 사진들을 자주 찾아본다.

결혼 전 겁도 없이 떠났던 서유럽과 중국, 태국, 일본 등을 누볐던 흔적들

한창 연애할 때, 아내의 얼굴이 만개한 백합처럼 말갛고 투명하다.

아이들의 탄생부터 성장하는 나날들이 주마등처럼 흘러가자

내 마음속에 깊이 잠겨 있던 복잡한 감정들이 하나 둘 떠오른다.



이럴 줄 알았으면 무리해서라도 더 많은 곳을 둘러볼 걸.

아니야. 점찍듯이 여행지를 빠르게 스쳐간다고 의미 있는 경험이 생겨나진 않아.

오히려 체력만 소진되고, 동행자와 사이만 틀어질 수 있지.

그 친구와 배낭여행 중에 내내 붙어 다니지 말고 각자 머무를 시간을 줬어야 했는데..

지금 이렇게 한가로이 있을 시간이 없어.

빨리빨리.

다음 목적지로 30분 내에 가야 해.

일정에 쫓겨 허둥지둥 앞만 보고 달리느라 옆을 지키던 그가 힘겨워하고 멀어지는 줄도 몰랐지.

이건 여행이 아니야. 고행이나 다름없다고.

그 여행 이후 멀어진 그와 연락이 끊어진지도 7년이 넘었다.

언젠가 마음의 빚이 가벼워지고, 연이 닿으면

아무 기대와 바람 없이 조심스레 연락해 보려 한다.



아내에게는 항상 미안한 감정뿐이다.

연애할 때는 그리 이쁘게 웃고, 순한 표정을 짓던 여자였는데

결혼하고 해가 갈수록 웃음이 사라지고, 얼굴 한켠에 그늘이 지고

날 바라보는 눈매가 독해져 간다.

여자는 남자하기 나름이라는데,

내가 지지리도 말 안 듣고 속을 썩여서 그런가 보다.

대체 어디서부터 틀어진 걸까?

술은 주사 때문에 마다하고(술자리에 불러주는 이도 없고),

담배는 체질에 맞지 않아 가까이 안 하고,

도박은 셈이 느리고, 패도 통 몰라 감히 판에 뛰어들 생각도 못 하고,

게임도 이제는 팽팽 돌아가는 화면만 봐도 멀미가 쏠려 끊은 지 오래.

뭐가 그리 미운 걸까? 도통 이해가 가지 않지만,

월말에 꼬박꼬박 날아오는 카드 고지서를 보고

한숨짓는 아내의 표정을 보고 힌트를 얻는다.

결국 그놈의 머니, 돈이 웬수이고 화근인 것이다.

어찌할 것이냐. 천성이 게으르고 어려서부터 집안에 틀어박혀 책과 영화에 빠져

쓸데없는 공상만 하는 사회성 제로에 가까운 사내가 작심하고 돈을 좇는다고

기약 없는 쇳복이 척하고 들러붙을 리는 없으니.

남한테 큰 빚지지 않고, 배곯지 않고 현상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할 수 있다.

아내에게 언젠가는 대박이 터질 것이다, 내 세상이 올 것이니 나만 믿어보라 큰소리쳤지만

이제는 그런 소리하면 돌아오는 건,

사기 치지 마. 난 이제 당신 말 안 믿어.

이따위 맹랑한 대답뿐이다.

하지만 예로부터 인간 만사 새옹지마라 했으니,

불과 1년 전만 해도 코로나라는 몹쓸 역병이 전 세계를 이 지경으로 몰아넣을 줄 누가 알았겠나?

모름지기 한 편의 연재소설과 한 사람의 인생사는 완결 치고 관짝에 누울 때까지

아무도 흥망성쇠를 장담 못 하니

오래전 품은 뜻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버텨 지금의 고난을 디딤돌 삼아

내 인생에 진정한 봄날이 찾아온다면

아내의 저 쌀쌀맞은 눈매가 스르르 풀려

연애 시절 한 남자의 가슴을 녹이던 화사한 눈웃음으로 돌아와 날 바라봐 주길 고대할 뿐이다.



시니컬하게 가라앉는 기분을 전환하려 이국에서 유유자적 물놀이를 즐기는 아이들의 들뜬 표정이 가득한 홍콩과 태국 여행의 면면을 살핀다.

카메라를 놓지 않고 그토록 수많은 사진과 영상을 찍었음에도 저장장치에서 야후 플리커(Flickr) 그리고 구글 포토로 넘어오면서 꽤 많은 사진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음을 깨닫는다.(원본 SD 카드마저 아예 인식이 안 되니..)

그 빈 공간 여기저기에 어떤 추억들이 자리했었는지

도통 기억이 나지 않음에

허공으로 휘발되고야 마는 인간 기억의 허무함을 한탄하고,

영원을 꿈꾸는 디지털 세계의 예상치 못한 블랙홀에 빠지지 않으려 다짐한다.

결국 우리의 뇌리에 남은 그때, 그 순간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그리고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영원에 가깝게 담아내는 건 텍스트 즉 글로 기록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고

어쩌면 유일할 수 있다는 걸 되새겨본다.

꼭 긴 글이 아니어도 된다. 쓰는 것이 일상을 침해할 정도로 괴롭고, 멘탈이 무너질 지경으로 지치면 안 되니까.

남겨진 그 텍스트가 역사에 길이 남을 명문이 아니어도 되리라.(서재에서 누렇게 바랜 책을 한 권 골라 펼쳐보라. 차고 넘치는 명문들은 그 안에 이미 자리를 잡고 있으니까.)

굳이 형태를 갖춘 책으로 출간되지 않아도 상관없다.

자기의 고유한 생을 펜이나 키보드로 기록하는 행위를 이어간 것만으로도

그 사람은 '순간순간'을 무심히 흘려보내지 않고

옴폭하게 오므린 손우물 안에 담아

눈부신 빛을 마주하고, 찰랑거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혀 끝을 대보기도 하면서

모든 감각을 동원해 그 시간을 맛보았다는 희열을

차마 잊을 수는 없을 테니까.

더불어 세상의(브런치의) 누군가가 그 흔적을 읽어주고 공감한다면

그 글은 좁은 테두리를 벗어나 자유로이 날아갈 것이고, 불사조처럼 수명을 더해 갈 것이다.


잊히고 왜곡되기 쉬운 인간의 기억보다

덧없이 짧은 한 사람의 인생보다

하루라도 더 살아남을 수 있는 글을 어딘가에 듬성듬성 남길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 난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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