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을 잘 싼다는 것의 어려움에 대해..

똥과 삶 그리고 건강함에 관하여..

by 라미루이





어느 대형 병원의 접수와 수납을 담당하는 2층 원무과,

조심스레 한쪽 엉덩이 먼저, 다소 불친절한 쿠션의 의자에 걸터앉자 얼마 지나지 않아 주위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기다리던 엘베가 내려올 기미가 안 보이자, 뒤뚱이는 걸음으로 비상계단을 한 칸 내려간 어느 사내.

괄약근이 깜짝 쥐가 났는지 주춤거리며 다시 돌아와 승강기를 얌전히 기다린다.

에취! 자신도 모르게 터진 재채기 한 에 응꼬가 화들짝 놀랐는지, 옆에 앉은 절친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어 "흑흑, 너무 아포.."라고 고통을 호소하는 젊은 여자.

어쩌다 둘이 사이좋게 치질이 도졌는지 서로의 팔짱을 끼고 엇박으로 절뚝 걸음을 내디뎌, 복도 어딘가로 사라지는 어두운 낯빛의 커플도 눈에 띈다.

그들을 지켜보는 난 멀쩡한가? 의자에 앉는 것도, 다시 일어나는 것도 두려워 진즉 일어나 가까운 벽에 몸을 기대었다.


세상에 이리도 똥꼬가 성치 않고, 탈이 난 인간 군상들이 넘친단 말인가. 평일 오전임에도 번호표를 끊는 대기인의 수는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퍼뜩 이런 생각이 스친다.

잘 먹는 것 못지않게 '잘 싸는 것' 또한 중요하지 않을까. 문장으로 간단히 맺기에는 그 중요성이 간과되는 듯하여 다시 풀어본다. 한 대도시가, 한 사회가 정상적으로 올바르게 기능하는지를 확인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내 관점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지하에 깔린 하수로가 어디 하나 막히거나 정체되는데 없이, 원활하게 오물이 흘러가는지를 살피면 된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마찬가지로 어느 인간이 자신이 얼마나 잘 살고 있는지, 자신의 입 안으로 들어간 음식물에 상응하는 값어치를 하고 살아가는지 자평하고 싶다면 그 방법은 간단하지 않을까.

자신의 응꼬를 통해 쏟아진 배설물 아니 결과물을 그대로 흘려보내지 말고, 더럽다 피하지 말고 가만히 지켜보면 된다. 자신의 소중한 응아가 밖으로 나오기까지의 과정이 입으로 온갖 음식이 들어가는 것처럼,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자연스럽고 순탄했는지도 되돌이켜 보자.


건강한 어린아이가 응가를 누는 모습을 떠올려 보자. 아빠, 급똥 마려! 하고 불그락한 얼굴로 변기에 앉아 온 힘을 배꼽 아래에 모으는 아이가 이내 얼굴이 환해진다. 철푸덕 소리와 함께 변기 아래로 가라앉는 휘어진 바나나 똥 한두 덩이. 어느 때는 똬리를 감은 황금빛 구렁이가 모가지를 쳐들고 날 바라보더라. 너무 딱딱하지도 너무 무르지도 않은 말랑말랑한 질감으로 빚어진 최적의 상태. 쾌변을 마친 아이의 똥꼬를 닦으면 너저분하게 엉기거나 묻어나는 것 없이 깨끗하다.

어찌 이토록 막히거나 걸리는 것 없이, 매끄럽고 쉬운 똥 누기가 가능한 것일까.

아이의 근사한 똥과 내 들쭉날쭉한 그것을 비교하며 과한 욕심을 부려본다.

어떻게 하면 일종의 카타르시스에 가까운, 어린 시절 '즐똥'의 희열을 날마다 평생토록 즐길 수 있을까?



"라미루이 님 계시죠? 다음 차례입니다."

진료실의 미닫이 문을 열고 간호사가 얼굴을 내밀더니 날 찾는다. 난 대답 대신 한 손을 들고는 대기석에 비스듬히 앉아 등받이에 허리를 기대고, 뒷목을 꺾어 회색 천장을 바라본다.

고백하자면 난 마흔 즈음까지 똥을 잘 싸는 법을 터득하지 못했다. 아니지, 글은 허심탄회하게 바로 써야 한다. 어찌 똥을 잘 싸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할 필요성도 깨닫지 못했고, 이로 인해 언젠가는 피 맺힌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어렴풋이 내다볼 수 없었다. 한 마디로 몸소 선인장 군락으로 들어가 헤딩하고 뒹굴고, 억센 가시에 찔려 몸서리치도록 괴로워해야만 어느 하나를 깨닫는 어리석은 중생의 꼴, 그 자체였다.


어린 시절부터 난 설사가 잦았다. 남들은 엄마의 젖에서 막 흘러나온 따끈한 모유를 잘만 삼키고 소화를 시키는데 난 그러지 못했다. 얼굴에 붉은 열꽃이 피고, 밤새 잠을 못 이루다 묽은 변을 와락 쏟아내곤 했다.

첫째 딸은 지 아빠를 닮는다는데, 대를 이어 태어난 솔도 그러는 걸 보니 타고난 위장이 과민한가 보다.

난 본능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엄마 젖을 마다했고, 그 후로 40년 가까이 지나치게 긴장을 한다든지, 마시는 물이 바뀌거나, 카페인이 들어간다든지.. 어쩔 수 없는 회식으로 과음한 날이면 어김없이 화장실로 달려가 채 굳지 않은 배설물을 확인하곤 했다. 분명 비정상이었지만 난 바쁜 일상에 체념했고, 정상적인 배변 라이프로 바로잡는 것을 포기했고, 당장에 문제가 없었기에 몸이 버텨주었기에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살았다.

마흔이 넘어 그 사달을 치르기 전까지는..



"라미루이 환자, 들어오세요." 어느새 진료할 차례가 되었다. 좁은 방에 들어가자마자 커튼을 두른 침상에 누워 새우등을 구부린 채 맨몸을 내보인다.

"힘 빼세요. 잘못하면 다쳐요."

난 후우! 하고 긴 숨을 내쉰다. 온몸의 굳은 근육, 특히 괄약근 주위의 긴장을 풀기 위해..

담당의는 V자로 파인 고랑을 닮은, 절개한 내 환부에 거즈를 덮고는 신중하면서도 단호한 동작으로 손가락을 들이밀어 쑤시고 후비고 파낸다. 생살을 찢는 고통에 난 고개를 들어 몸부림치고 아악, 비명을 지른다. 두 차례나 번진 항문 농양을 배농 하고, 이번엔 뿌리를 뽑는 치루 근본 수술까지..

이런 고통은 익숙해질 법도 하건만, 인정사정없이 상처를 후벼 파는 외과의의 소매를 붙잡다시피 하며 살살요, 하소연하고 눈물을 찔끔대는 내 모습이 다시금 재현된다.

"끝났어요. 중요한 거 알려줄 테니 그대로 해야 합니다. 집에 가면 세 시간마다.. 수술 부위에 거즈를 대고 손가락 반 마디 정도 들어갈 때까지 꾸욱 눌러야 해요. 안 그러면 절개한 고랑 양쪽이 붙어서 염증 재발하고 다시 수술해야 할 수도 있으니까.." 그는 한 손의 검지와 중지를 내밀어 최대한 벌리는 시늉을 한다.

난 엉거주춤 바지춤을 끌어올리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지난 두 번의 배농 수술을 집도한 다른 의사들 또한 같은 말을 했다. 새 살이 깊이 고인 농 섞인 진물을 밀어내고 안쪽부터 차오르도록, 일부러 맨살을 밖에 노출시켰으니 거즈를 깊이 쑤셔 박고 자주 갈아야 한다는 일종의 철칙. 그것이 항문 농양 & 치루 수술의 회복 메커니즘이라는 그 말. 겪을 때마다 강도를 더해가는 고통과 마주하며 제발 이번이 마지막이었으면 하는 헛된 희망을 품어본다.


2018년 여름, 수십 년 동안 멈추지 않은 잦은 설사로 인해 응꼬 주위에 염증이 도져 국소 마취를 하고 피고름을 짜낼 때, 난 그 고통을 느낄 겨를도 없었다. 참고 버티면 낫겠거니 하는 생각에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앉지도 못하고, 편히 눕지도 못하는 그야말로 응급 환자에 준하는 상태였기 때문에..

마취가 제대로 되지 않은, 생살을 째는 고통쯤은 이를 악물고 견딜 수 있었다.

돌이켜 보면 그때부터였다.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끔찍한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날마다 똥을 잘 싸기 위해 온 노력을 기울인 것은..

고질적인 설사를 벗어나 건강한 아이의 황금빛 응가를 닮기 위해, 지난날을 되돌아보고 잘못된 습관을 고치려 했다.

그 첫걸음은 입으로 들어가는 먹거리를 가리고 조심하는 것.

속을 자극하는 카페인과 알코올은 최대한 멀리 했다. 회사를 나온 이후로 술자리에 부르는 이도 없으니, 혼술을 하지 않는 이상 알코올은 냄새도 맡을 일이 없다.

카페인 또한 가능한 한 일찍 잠자리에 들려하면서 자연스레 멀어졌다.

니코틴? 흡연은 크론병의 주범으로 지목된다. 어디 크론병뿐이랴. 만병의 근원은 싹수를 꺾어버리자.

어릴 적부터 즐긴 간식 생활 또한 자제했다. 햄버거, 피자, 라면, 치킨, 흰 빵, 온갖 과자, 초콜릿 등등.

체질에 맞지 않는 찬 음식도 거른다. 아이스크림, 탄산음료, 찬 기운을 머금은 차까지.. 대신 따뜻한 물 아니면 보리차를 마시자.

기름진 육식보다는 채소와 과일을 가까이할 것.

아, 한 가지 더. 인위적으로 맵고 자극적인 맛을 더한 음식을 즐기는 것은 자신의 응꼬를 산채로 활활 불태우는 자학 행위임을 잊지 마라.

더불어 몸에 맞는 유산균을 꾸준히 챙긴다.

마지막으로 규칙적인 운동과 수면 습관 유지하고, 거칠게 파도치지 않는 내면의 평정심 쌓인 화를 날리는 약간의 유머러스함이 더해지면..

오래지 않아 변기에 앉으면 길어야 10분 내에 풍덩, 가라앉은 똥이 그럴듯하게 형태를 갖춘다. 풍기는 냄새는 역한 잡내 없이 구수하고 빛깔 또한 밝은 황갈색을 띠니, 건강한 아이의 그것을 닮아간다.


적어보니 지극히 뻔하고 당연한 사항의 나열이지만, 이를 실생활에서 지키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경험 상 위에서 말한 쾌변 조건 중에 한두 가지가 어긋나기 시작하면, 몸 밖으로 배출된 똥은 어떤 식으로든 내게 경고한다. 지나치게 변이 딱딱하거나 주변 근육이 긴장해 변비가 생기거나, 미처 숙성되고 익지도 못한 채 지리는 설변으로 이렇게 살면 안 돼! 하고 곧이곧대로 시각적으로 체감적으로 옐로카드를 내미는 것이다.

응가와 응꼬가 합심하여 보내는 이 경고를 오랜 기간 무시하고 나 몰라라 멋대로 살아간다면, 멀지 않아 그 대가는 지불 영수증을 들고 찾아오는 법.

자신의 위장과 응꼬가 얼마나 튼튼하게 타고났고, 그간 잘 버텼으니 걱정 없다 뻐기고 자랑해 봤자 소용없다. 훗날 온몸을 지탱하던 활력과 기운이 사그라들면, 응꼬는 그동안의 무책임한 행동에 대해 책임을 묻고 복수의 칼날을 사정없이 휘두를 테니. 그것은 엄연히 시간문제일 뿐.. 누구에게나 찾아는 필연에 가까운 것이다.

오늘도 항문 전문 병원을 가득 메운 병실은 만실이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아랫도리를 후비는 고통에 겨워하며 한시라도 빨리 수술대에 눕겠다고 서두르는 이들이 태반이라니..






펜을 짧게 잡고 끄적인다는 것이 사설이 길어졌지만,

하루하루 똥을 잘 싼다는 말은 지금의 삶을 잘 산다는 의미와 겹친다고 재차 말할 수밖에 없다.

그만큼 굳건한 마음가짐으로 평생 노력해야 하고, 한치라도 정도正道에서 어긋나면 이루기 어려운 것.

그런 의미에서 똥을 누는 것과 글을 쓴다는 것은 일맥상통하는 닮은꼴이 아닐까 싶다.

매 순간순간 벗어남이 없이 심신을 수련해야 하고, 지난날을 끊임없이 돌아보며 늘 새로움을 쫓고, 결국 홀로 쭈그려 앉아 힘을 그러모아야만 결과물을 볼 수 있다는 면에서..

그 결과물은 기울인 노력과 상관없이 운에 따라 형태가 어그러지고, 혹평을 받을 수 있다는 측면까지도..

쾌변에 즐똥이 일상이던 아이들도 덩치가 커지고, 사춘기에 들어서 생활 패턴과 마음이 흐트러지면 변기에 앉기를 꺼려하고, 어쩌다 시도를 해도 세월아 네월아 밤을 새울 지경이다.

당연히 애써 몸 밖으로 내보낸 응가도 반듯한 모양으로 빚어지지 못하고 허물어지기 일쑤니..

나이 차와 개인 차를 뛰어넘어 이처럼 넌지시 거짓 없이 가시적으로, 변화무쌍 흘러가는 각자의 생을 측정하는 지표가 있던가? 난 날마다 내 모든 것을 다해 빚어내어 세상 밖으로 밀어낸 삶의 결과물을 바라보고 어제는 잘 살았구나! 감탄을 금치 못하는가 하면, 쓰라린 응꼬를 부여잡고 갖은 후회를 하고 좌절을 거듭하며 오늘은 더 잘 살아야겠다, 마음을 다잡기도 하는 것이다.


여기까지 써내리니 눌러앉은 똥꼬가 싸르르, 신호를 보낸다.

그만 싸질러 앉아 있으라고.. 무리하지 말라고.. 자칫하면 상처 덧나고 터진다고..

이만 일어나 좌욕을 하고 거즈를 갈아야겠다. 검지 반 마디만큼 생살이 드러난 절개 골에 밀어 넣으라고 했나. 허옇게 슨 머리칼이 곤두선, 근엄한 의사의 표정이 떠오른다.

부디 진료실의 생생한 고통이 이어지지 않길 바랄 뿐이다.

두어 번 서투른 손길로 더듬어 시도하다 보면 대략적인 환부의 위치와 깊이를 깨달을 것이고, 어느새 눈감고도 뚝딱 해치울 만큼 익숙해지겠지. 이전까지 내게 찾아온 시련과 고통은 적응할 여지를 남겼고, 시간이 흐르면 자비를 베풀었다.

언젠가 때가 되어, 한 번도 겪지 못한 처절하고도 무자비한 고통이 엄습한다면, 난 생에 대한 미련과 집착을 얼마나 이어갈 수 있을지..

변기 아래로 휘내려 사라지는 피고름에 젖은 거즈를 바라보며 잠시 멍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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