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Better Call Saul> 시즌 6, 마지막 에피소드의 스포를 담고 있으니 주의 바랍니다!
<Better Call Saul>이 시즌 6, 총 63부작을 끝으로 대장정의 막을 내렸다.
벼랑 끝에 다다른 '사울 굿맨'은 과거의 몇몇 인상적인 지점들을 떠올린다. 황량한 사막에서 마이크와 7백만 달러를 운반하던 도중, 뜬금없이 '타임머신'을 타고 어느 시점으로 돌아가고 싶냐는 질문을 던진다. 자문자답을 통해 그는 일확천금에 대한 욕망을 드러내지만, 돈 말고 바꾸고 싶은 것이 없냐는 반문에 대답을 꺼린다.
이후 경찰에 쫓기는 급박한 현실로 돌아오면 화면은 흑백으로 처리된다. 이미 지나간 과거는 명백한 컬러로, 제발 꿈이었으면 가상이었으면 하고 믿고 싶은, 최악의 상황에 처한 현재는 흑백으로 대비하여 보여준다.
네브래스카 주 오마하에 숨어든 그가 조용히 시나본을 구우며 은신했다면, 신분이 발각되는 시점은 한참 후로 미루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본성을 거스르지 못하고 취객의 집을 털고 개인 정보를 갈취하는 범죄 행각을 일삼다가 결국 꼬리가 밟혔다. 어쩌면 그는 모두의 기억에서 잊히고, 관심에서 멀어진 외톨이의 철저히 고립된, 따분한 삶을 견디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사울 굿맨, 그는 자신이 묵시적으로 바라던 대로 잔잔한 수면 위로 파문을 일으키며 알몸으로 떠올랐다. 극 중에서는 대형 쓰레기통에 몸을 숨겼다가 검거된다. 그야말로 떠들썩한 그 다운 등장이다. 익히 예상하고 있었지만 독 안에 갇힌 그를 감싸는 이는 한 명도 없다. 적개심이 가득한 시선으로 독설을 날리며, 종신형에 몇 년이라도 더한 죗값을 치르게 하려 혈안이 된 자들이 그를 노리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변호인은 과거의 악연이자 앙숙이다. 과거 법정에서 의뢰인의 형량을 각자의 저울에 올려 네고하던 검사 출신, 빌 오클리가 그의 편에 섰다.
화면은 다시 컬러로 바뀌고, 사울 굿맨을 이전 시점의 어딘가로 데려간다.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지금은 만나려야 만날 수 없는, 생전의 월터 화이트와 자신의 친형 척 맥길과 조우한다. <브레이킹 배드> 후반부의 골방에서 독대하는 월터 화이트는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냐는 예의 그 질문에, 당신이 진정 원하는 질문은 그것이 아니라며 다그친다.
- 후회되는 게 있냐고 묻고 싶으면.. 그냥 후회(regret)에 대해 물어봐요. 빙빙 말 돌리지 말고..
타인의 도움으로 정곡을 찌르는, 올바른 질문으로 정정되었지만, 그의 대답은 여전히 어긋나고 가식적이다. 시답잖은 농담 수준을 벗어나지 않는다. 바른 길에서 한참을 벗어난 인생 경로가 언제 어디서부터 빗나갔는지를 더듬고 돌아보기가 두려워, 회피하기 급급한 자기 답변에 자신조차 실망하는 눈치다. 자신을 납득시키지 못하고 수용하기 어려운, 자기 성찰과 반성이 없는 무성의한 실토에 어느 누가 맞장구를 치고 위로라도 하는 척 들어주겠는가.
기껏 돌아오는 응답은 "그럼 당신은 원래부터 이런 사람이었군요?", 선과 악의 경계에서 갈등하던 자신의 근본마저 송두리째 부정당하거나, "우린 쳇바퀴 돌듯 늘 같은 대화를 하는구나.", 아무 진전 없는 대화 양상에 점차 힘을 잃어가는 친형의 그늘진 표정을 마주할 뿐이다.
그는 자신을 맹비난하는 피해자 집단과 대중을 향해 외치고 싶다. 공개 법정에서 자기 변론을 펼치길 원한다.
단지 자신은 그렇게 태어났다고. 주위 사람들을 등치고 협박하고, 지옥 끝까지 쫓아 괴롭히는 재능을 타고났을 뿐이라고. 신이 부여한 반짝이는 '달란트'를 간직하여, 평생토록 갈고닦았을 뿐이라고 주장하고 싶었다. <브레이킹 배드> 말미에 자신의 정체를 알아챈 아내에게 지금껏 저지른 악행의 정당성을 담담히 술회한 '월터 화이트'의 넋두리처럼 말이다. 허나 그는 그러지 못했다. 끝까지 기지를 발휘해 시치미를 떼고 변명을 일삼고, 고인이 된 누군가에게 죄를 뒤집어 씌웠다면 그는 감형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Better Call Saul" 이란 광고 멘트로 전설이 된, 사울 굿맨으로 남아 시설 좋은 교도소에서 7년 남짓한 형량을 채우며 출소를 기다렸으리라. 하지만 그는 완전한 혼자로 고립되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 자신의 옛 이름, '지미 맥길'을 기억하는 가운데 최후를 맞고 싶었다. 그는 자신의 재판을 참관하는 '킴 웩슬러'를 돌아보며, 지난 과오와 실책을 되돌리고자 하는 중대한 결단을 내렸다. 악덕으로 쌓아 올린 '사울 굿맨'의 공든 탑을 애써 무너뜨리고, 과거의 '지미 맥길'로서 더 이상 후회로 점철되지 않은 삶을 살겠노라 선택을 했다. 무너진 폐허에 주춧돌을 올리는 혹독한 자기반성의 시간이 찾아왔다. 그는 참담하기 그지없는 자기 참회와 개연성 없는 법정 고백을 통해 그녀에게 용서를 빌었는지도 모른다. 사방이 적과 악인으로 가득한, 자신을 '사울 굿맨'으로 기억하는 만인들 가운데 '지미 맥길'로 기억하는 유일한 이로 남아달라고, 애원했는지도 모른다. 킴 웩슬러, 그녀만은 과거의 어느 시점으로 플래시백 되어 '후회'라는 주제에 대해 대화할 여지를 남기고 싶지 않다는, 설사 고통을 겪는 한이 있더라도 흑과 백의 현실에 그녀와 공존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했다.
결국 그는 종신형에 버금가는 형량을 받고, 흉악범이 가득한 최악의 교도소에 갇혔다. 로키 산맥의 앨커트래즈라는 별칭을 가진 감옥 철창의 그림자가 온몸을 뒤덮었다. 그토록 애정 하는 민트 초콜릿 아이스크림 대신 담당 변호사가 건네주는 씁쓸한 담배를 나눠 피우는 신세가 되었다. 그럼에도 그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예전 모습을 떠올리고 현재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그녀가 존재한다면, 자신의 곁에 그녀가 머무르는 한, 그는 여전히 오늘을 버티고 살아갈 의미를 얻을 테니까.. <Saul Gone>, 제목 그대로 사울은 사라졌지만, 지미 맥길로 다시 태어나 그녀 곁으로 돌아왔다. 그녀 또한 가시밭 고난 길을 택한 그의 갱생의 경로에 함께 한 것처럼 보인다. 과연 그가 여생 동안, 무거운 후회로 남을 지점을 남기지 않고 모범적인 삶을 살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전의 그는 거짓과 악수惡手로 가득한, 예측불허의 롤러코스터와 같은 삶을 살아왔으니까. 어쨌든 기나긴 드라마의 최종 막은 내렸고, 우리는 그 이후의 서사를 상상하고 유추할 수밖에는 없다. 철조망 뒤에서 그녀를 바라보는 그의 쓸쓸한 모습이 애잔하고 한편으로 불길하지만, 그를 믿어보는 수밖에 별도리가 없다.
난 그렇게 지미 맥길에서 사울 굿맨으로 악화하여 수렁에 빠졌다가 간신히 갱생의 삶을 택한, 파란만장한 생을 살아낸 그를 영영 보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