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를 산산이 찢어버린 그들

브레이킹의 성지 <쇼다운 Showdown>을 보고..

by 라미루이





작년에 스우파가 흥행했다면 올해는 '쇼다운'이 대박을 예고한다.


2000년대부터 세계 브레이킹 대회를 주름잡은 주요 크루와 댄서들이 대중 앞으로 바짝 다가섰다.

토막 뉴스를 통해 국내의 어느 크루가 월드 비보잉 대회에서 우승했다더라 하는 소식은 종종 접했다.

하지만 공중파 TV에서 그들의 퍼포먼스를 접하기는 쉽지 않았다. 전문 유튜브에서 마니아들만 접하는 영역이었던 브레이킹 신을 서바이벌 배틀 형식을 빌려 양지로 끌어냈다. 어떻게 보면 10여 년 전에 시도했어야 할, 한참이나 늦은 데뷔라 할 수 있다. 지난해 우리를 강타한 '스우파' 열풍이 음지에 숨은 브레이킹의 강자들을 메이저로 끌어내는데 큰 역할을 한 셈이다.


리버스 크루, 진조 크루, 원웨이 크루, 플로우엑셀, 갬블러 크루, 소울번즈, 퓨전엠씨, 이모션 크루.

홍텐, 피직스, 윙, 킬, 레온, 쇼리포스, 포켓, 니피 등등.

낯설고 생소한 이름들이지만 브레이킹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이들은 작정하고 올스타 크루에 레전드 댄서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았구나 하고 감탄할지도 모른다.


최근 방송된 <쇼다운> 에피소드 5는 시작부터 브레이킹 신의 양대 산맥을 무대로 올려 1:1 배틀을 성사시켰다.

레전드이자 라이벌, 둘도 없는 동갑내기 절친이기도 한 '피직스'와 '홍텐'. 각각 고공 무브와 저공 무브, 하늘을 노니는 천신과 땅을 좌지우지하는 지신이라 일컫는 둘의 맞대결은 그 자체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이제는 세월이 흘러 파워나 순간 움직임이 예전 같지 않지만, 관록에서 우러나는 여유와 녹슬지 않은 특유의 스킬 모음은 모두의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선공을 펼친 피직스의 공중을 향한 두 발의 현란한 놀림과 피니시를 장식한 시그니처 '효리끌기'는 여전히 일품이다. 이어 무대를 차지한 홍텐의 재빠른 풋워크에 이어 바닥을 구르며 상공으로 튀어 오르는 체어투틴과 백텀블링의 연속 무브에 보는 이의 입이 떡 벌어진다. 서바이벌 예능이기에 어쩔 수 없이 투표를 통해 승부는 갈렸다. 하지만 그들은 승패에 연연하기보다는 다음에 또 재미있는 배틀을 벌이자며, 제발 다치지 말라고 서로를 걱정하기 바쁘다. 둘을 응원하는 팬으로서 같은 크루로 뭉친 그들이 고난도 퍼포먼스를 함께 펼치는 모습을 다시 볼 수 있다면 정말 원이 없겠다.



서로의 손을 들어주는 두 레전드, 피직스와 홍텐.



곧이어 메인이벤트로 '장르 융합 퍼포먼스'가 펼쳐진다. 크루들은 국악, 현대 무용, 밴드, 합창단, 무술 등 결이 다른 장르와 크럼프, 락킹, 팝핑처럼 유사한 댄스 장르를 브레이킹과 컬래버하여 다채로운 공연을 선보였다. 그중에 '원웨이 크루'는 단연 돋보였다. 라이브 드로잉을 주특기로 하는 'Toolz Creative'와 협업한 그들은 가장 적은 인원으로 저지와 관중의 열광적인 환호를 이끌어냈다.

버텨야 하는 일과 평생 몸담은 댄스를 겸하는 그들의 고충을 바탕으로 짜인 스토리텔링. 탄탄한 서사를 뒷받침하는 디테일한 무대 장치와 소품. 너무 '딥'하고 무겁지 않게, 시종일관 익살스러움과 코믹함으로 채워진 퍼포먼스는 절로 박수를 치고 웃음을 터뜨리게 했다.

스페셜 저지로 나선 김설진 댄서. 그는 한국을 대표하는 현대 무용가이자 연출 감독, 배우이기도 하다.

원웨이 크루의 공연이 끝난 후, 그가 솔직 담담하게 밝힌 심사평이 걸작이다.

"개인적인 취향이긴 한데.. 만약 이 공연이 한 시간 남짓으로 무대에 오른다면, 전 티켓을 사서 관람할 의향이 있습니다."

이보다 더한 찬사가 어디 있을까? 김설진 저지가 확고한 어조로 소감을 말하자, 난 백번 동의한다는 표시로 양 무릎을 두드리고 박수를 쳤다. 원웨이 크루의 실질적인 리더이자 아이디어 뱅크, '페이머스'는 울컥하는 표정으로 팀원들을 얼싸안았다.

마지막으로 심사를 한 '제이블랙'은 그들의 공연에 임하는 자세를 나름 추측하는 것으로 평을 대신했다.

"아마도 이분들은 큰 욕심 없이, 그냥 열심히.. 재미있게 우리가 할 수 있는 거, 즐길 수 있는 거 만들어 보자.

이런 마음가짐으로 공연을 준비했을 거다."

원웨이 크루의 팀원들은 정확히 짚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 댄스뿐이겠는가. 글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잘 다룰 수 있는 글감을 충분히 즐기면서 써 내린 글. 너무 진지하고 억지스러운 결심보다는 소소한 마음으로 흰 바탕에 스케치하듯 그려나간 글이 독자의 호응을 이끌어내는 경우가 많으니까. 모름지기 과분한 욕심을 덜어내야 펜이 가벼워지고 글이 상상의 나래를 한껏 펼치는 법이다.

제이블랙은 자신 또한 즐기면서 공연에 임했을 때 그 결과는 항상 좋았다며 가장 높은 점수를 선사했다. 이보다 높은 점수를 주지 못해 아쉽다는 첨언과 함께..


최고점 획득에 기뻐하는 원웨이 크루



스우파에 이어 우리의 가슴을 쿵쿵 두드리는, 벅찬 감동을 선사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다시 찾아왔다.

매 회차에 그간의 마음고생과 각자의 애환을 토로하는 비보이들의 사연에 너도나도 눈시울이 붉어진다. 초반에 아쉽게 탈락한 젊은 비보이는 여기 나온 걸 부모님에게 미처 말하지 못했다, 부모님의 심한 반대로 어릴 적부터 트러블이 잦았다며 더 높이 올라가서 자랑삼아 말씀드리려 했는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어느 댄서는 남일 같지 않다며 아예 고개를 푹 숙이고 오열하기까지 한다. 자신이 진정 좋아하는, 재능을 타고난 춤에 미친 것뿐인데 그들을 바라보는 대다수의 시선은 차갑기 그지없다. 일부는 대놓고 철이 없다 무시하고, 오죽하면 그 나이까지 춤을 즐기냐 천대한다. 심지어 까닭 없는 적의를 드러내기도 한다. 개개인의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일면이 그들의 울적한 표정에 여실히 드러난다.

페이머스는 마흔이 넘은 나이에 브레이킹을 즐긴다. 그는 포기하지 않고 '댄스'에 헌신하기 위해, 생계를 버티기 위한 힘겨운 노동을 꺼리지 않는다. 가족들의 지지를 받지 못한 대부분의 비보이, 비걸들이 비슷한 처지 아닐까 싶다.

그는 인터뷰 도중 복받치는 감정에 말을 잇지 못했다. 자그마치 '25년'이 흐른 후에야 귓가를 울리는 응원과 격려의 함성. 페이머스는 스트리트 댄스에 몸담은 지 실로 20여 년이 지나서야 대중들로부터 인정을 받았다.

그의 유쾌한 표정과 어투는 어쩌면 자신의 고단한 삶을 조금이나마 견디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

여기저기서 터지는 기립 박수와 환호끊이질 않는다. 그의 떨리는 두 어깨를 다독이는 동료 비보이들의 따스한 손길. 난 방송 종영 후에도 그들의 퍼포먼스를 무한 재생한다. 그럼에도 온몸을 뒤덮은 여운이 채 가시지 않는다. 그들은 더 이상 언더에 파묻혀 자신의 몸짓에 천착하는 소수가 아니다. 우리는 오랜 무명의 껍질을 깨고 스테이지에 오른 그들의 끈기와 열의, 절실함에 리스펙을 표할 수밖에 없다.


<쇼다운>의 모든 참가자들이 종착지에 다다를 때까지 몸성히, 각자의 넘치는 끼를 아낌없이 펼치기를 바란다. 더불어 그들의 재능에 비해 턱없이 비좁은 무대를 갈가리 찢어 버리고 박살 낼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 원웨이 크루 공연 영상>>

https://youtu.be/y5oC264yyxg



* 피직스 vs. 홍텐 1:1 맞대결 영상>>

https://youtu.be/wNQoX2xZmB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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