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가족 여행 때도 무릉 계곡 인근에 숙박지를 정한 덕분에 마지막날 그 식당에 가려 했다. 하지만 차를 몰고 목적지로 향하던 도중, 아내가 어느 예약 앱을 살피다가 한숨을 뱉으며 말했다.
- 하아, 이럴 수가.. 대기자가 너무 많아.
- 이왕 간 김에 어느 정도는 기다려도 되는데.. 대체 웨이팅이 몇 명인데?
운전석에 앉은 난 핸들을 돌리며 옆을 흘겨보았다. 선은 폰 액정을 끄고는 조수석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 자그마치 22명. 화요일 오전인데도 찾는 사람이 이리 많다니..
- 평일인데 20명이 넘는다고? 적어도 2시간은 기다려야 테이블에 앉을 수 있다는 얘기인데..
- 그렇게 밖에서 기다리다가 재료 소진돼서 문 닫는 불상사가 벌어질 수도 있겠지.
- 어쩔 수 없지. 입소문이 퍼져 문전성시라는데 어쩌겠어.
- 다음에 오면 일찍 서둘러 가야겠어. 최애 하는 메밀 소바를 못 먹을 줄이야..
선은 못내 아쉬웠는지 아랫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하는 수 없이 우리는 다른 식당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아이들은 바삭 고소한 새우튀김을 못 먹는다는 사실에 아쉬워했지만, 대신 화덕 피자를 잘하는 식당으로 간다고 하자 표정이 급 밝아졌다. 그 피자집 바로 앞 도로만 건너면 근사한 모래 해변이 펼쳐진다고 덧붙이자 아이들은 어서 가자고, 더 빨리 가면 안 되냐고 성화를 부렸다.
그렇게 우리는 마지막 일정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뒤늦게 구글 포토를 열어 검색하니 작년 10월 그리고 올해 6월에 찍은 그 식당과 몇몇 메뉴의 사진들이 눈에 띈다.
<소복소복笑福笑福>, 가게 입구의 그늘막과 노렌 のれん에 새겨진 이름을 보고 참 잘 지었다 생각했다. 누가 작명했는지 모르겠지만 고심 끝에 얻어진 이름이리라. 하루아침에 뚝딱, 지은 상호는 아니리라 짐작했다.
웃으면 웃을수록 복이 배로 들어온다는 의미일까. 이 식당에 들어오는 모든 분들께 터질 듯한 웃음과 다복을 선물해 드립니다! 자신 있게 건네는 덕담의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바람에 휘날리는 다홍색 노렌은 색이 바랠 대로 바래, 현지 단골들 출입이 빈번한 노포의 품격을 지녔다.
실내는 정갈하고 깔끔하다. 계산대 주변에 놓인 재복을 부른다는, 앙증맞은 고양이 삼총사들이 한 발을 들어 우리를 반긴다. 곳곳에 놓인 진갈색 원목 테이블은 단단하면서도 일체의 틈 없이 매끄럽다. 곧은 나뭇결대로 쓰다듬으면 옛 아버지의 일자로 뻗은 정강이뼈를 매만지는 것처럼 듬직하다. 가마니를 짊어진 황소가 그 위에 올라가도 무너지거나 우지끈, 부러지지 않을 것처럼 든든하다. 짙은 갈색을 띠는 탁자 상판은 홀로 자리를 지키기보다는, 식당의 주메뉴인 냉 소바가 담긴 사발이 위에 놓였을 때 빛을 발한다. 차갑고 냉한 기운을 뿜는 성긴 면 요리가 앞에 나서고, 원목 테이블은 주위를 감싸고 보듬는 온기를 전해주는 고밀도의 배경으로 기능하고 전체적인 조화를 이룬다.
테이블 위에 놓인 새우 소바를 처음 접했을 때, 이 식당의 이름 넉 자를 다시 떠올릴 수 있었다. 수북이 담긴 메밀면 위로 잘게 채 썬 쪽파와 튀김 부스럼들이 그야말로 '소복소복'하게 뿌려져 있었으니까.. 난 노릇하게 튀겨진 새우튀김과 색색의 고명을 휘저어 드러난 육수를 한 술 들어 맛을 보았다. 시판되는 쯔유를 풀어 국물 맛을 낸 것이 아닌, 한우 뼈와 먹태, 건오징어 등을 넣고 푹 끓여 낸 육수라 시원하면서도 깊은 맛이 우러난다. 적당히 메밀 함량을 높인 면발은 차가운 냉국에 담겨서인지 찰기가 살아있는 편이다. 특유의 메밀 향은 국물의 맛이 다소 강한 탓에 잘 느껴지지 않았다.
소복하게 넉넉히 쌓인 튀김 부스러기는 마지막 한 수저를 뜰 때까지 바삭함이 살아 있었다. 어느 하나라도 눅눅하거나 흐물지는 것이 없이, 끝까지 크런키 하게 부서지는 식감을 자랑했다. 그 비법이 무엇인지 진심으로 궁금하더라. 튀김을 반죽할 때 특별한 비밀 재료가 첨가되나? 아니면 단시간 튀기고 나서 바로 급속 냉동시켜 바삭함을 유지하나? 아무튼 스낵처럼 톡톡 터지는 식감과 뚝뚝 끊어지는 메밀 소바를 먹는다는 행위가 대비되고 절묘하게 어울리면서 마지막 한 술까지 질리거나 물리지 않게, 한편으로 재미있게 식사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 아이들도 메밀 소바를 즐기지 않더라도, 튀김 조각만큼은 밑접시에 따로 담아달라 할 만큼 좋아했다. 마치 봉지 새우깡을 비우고는 바닥의 찌그러기마저 손끝으로 찍어 날름, 해치우는 것처럼 말이다.
그뿐이랴. 소복이 뿌려진 송송 쪽파와 사발 가장자리에 두툼히 올려진 고추냉이 또한 나름 비중 있는 역할을 맡고 있더라. 이들이 없었다면 기름진 튀김과 고기 육수의 느끼함, 생메밀 특유의 쌉싸름한 향을 달래고 누를 길이 없었으리라. 마지막 면발과 육수를 들이켤 때까지 온몸의 열기를 몰아내고 알싸한 청량감을 채우는, 그 마법 같은 맛을 유지하기는 어려웠겠지. 우묵한 사발의 바닥이 드러나도록, 메밀 소바 한 그릇을 비우면서 식당 밖에서 오랜 시간을 줄 서서 기다리는 분들이 내심 무얼 기대하고 바라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난 구글 포토에 남은 몇 장의 사진을 돌아보며 입맛을 다시고 있다. 듬직하고 탄탄한 원목 테이블을 배경으로 수북한 탑처럼 쌓아 올린 새우튀김과 아무도 손을 대지 않은 원형 그대로의 메밀 소바를 떠올리며 그때의 미각 경험을 되살리고 있다. 기다란 메밀 면과 튀김을 맛보는 아이들의 표정은 한결같이 밝게 웃고 있었다. 같은 테이블에 앉은 나와 선 또한 그랬으리라. 다른 테이블에 앉은 이들 또한 소바를 맛보며 환한 웃음을 띠고, 수런한 대화를 나누었다. 식당 전체가 한마음 한뜻으로 '소복소복' 한 기운을 뿜뿜하고 있더라.
우리는 잠시나마 웃음이 터지는 좋은 기운을 즐기기 위해, 다복을 부르는 맛있는 분위기에 빠지기 위해.. 조잡한 플라스틱 대기석에 앉은 채로, 옹기종기 모여 줄을 선 채로 오랜 기다림을 감수하나 보다. 낡은 노렌 자락을 휘날리는 식당 주위에서 자기 차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그 맛에 중독되어 금단 증상에 시달리는 것처럼 식당 안을 힐끔거리던 그들의 애타는 시선을 기억한다. 우리 가족들 또한 한 시간 가까이, 우린 언제 들어가? 다음은 우리 차례 맞지? 묻고 또 묻는 아이들을 달래며, 식당에 들어가는 순간을 기다리며 몰려오는 허기를 견뎠다.
얼마 후, 우리는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치고 복에 겨운 표정으로 밖으로 나왔다. 차례가 되어 식당 문을 벌컥 열고 입장하는 어느 커플의 발걸음이 들떠 보였다. 여전히 밖에 남은 자들은 부러운 표정으로 안을 바라보기도 하고, 서성대다가 가벼운 수다를 떨기도 했다. 기다림에 지친 누군가는 멀찍이 떨어져 줄담배를 태우기도 했다. 그들은 절로 웃음이 터지고 복이 들어오는, '소복소복'한 기운이 가득한 저 세계에 어서 입장하기를 고대하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누군가는 그 문턱을 밟지도 못하고 되돌아갈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모르는 것처럼 보였다. 아니면 그럴 리는 없겠지만 기다림의 시간 자체에 의미를 두고 애써 모르는 척하거나, 발걸음을 돌릴 가능성 자체를 부정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최근에 우리는 그곳에 도착하기도 전에 발길을 돌리며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원하는 모두가 한정된 공간에 들어가기는 어렵다. 시간마저 제한된다면 그 문은 더 좁아진다. 설사 기나긴 대기 줄 끝에 서서 오랜 시간을 기다린다 해도 말이다. 우리는 그 이후를 대비하거나, 다른 대안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몇 장의 사진을 바라보고 글을 쓰면서도 그 사실을 인정하기 어려웠지만, 결국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