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치 않을 평생 일미를 맛보다

동해 <만강홍>의 레몬 탕수육

by 라미루이








강원도 동해시는 각종 해산물이 집결하는 항구가 지척인지라, 유명한 중국집이 여럿이다.

그중 역사가 깊고 현지인들 사이에서 명성이 자자한 '만강홍'에서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들렀다. 네비는 동해문화 예술회관 맞은편에 이르러 목적지에 도착했다고 안내 메시지를 띄운다. 대로변에 차를 세우고 나무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오르면 조그만 정원과 양옥집 창문이 나타난다. 좌측으로 시선을 돌리면 만강홍으로 들어가는 자동문이 밖은 무더우니 어서 들어오라! 하고 반긴다.

실내 인테리어는 오랜 시간 공들여 꾸민 트렌디한 카페에 들어선 것처럼 아기자기하다. 원탁 위로 양동이 가득 쌓아 놓은 다양한 콜라병들이 눈길을 끈다. 수납장의 어느 칸은 차이나타운의 성대한 축제를 연상케 하는 장면을 연출한 레고 블록들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비범하고 특출난 열정이 아닐 수 없다. 사장님이 열렬한 콜라병 수집광에 레고 덕후 임에 틀림없으리라.


아이들과 난 각양각색의 화려한 진열 작품들을 둥그레 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몇 장의 사진을 남기고는 창가의 사각 테이블에 앉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구석구석 주인장의 세심한 손길이 묻어난다. 창가에는 미색의 두터운 커튼이 드리워져 강렬한 햇볕을 가려 주었다. 서늘하고 선선한 봄, 가을에는 여닫이 창문을 반쯤 열어 놓으면 하늘거리는 커튼 자락이 운치를 더할 듯싶다. 백열의 실내광을 고루 퍼뜨리기 위해 삿갓을 닮은 전등 갓은 은빛의 주름을 사방으로 펼쳤다. 하늘에 떠오른 열기구를 빼닮은, 다양한 패턴과 형태의 중국식 등롱이 여러 가닥의 기다란 술을 매단 채 에어컨이 뿜는 냉풍에 천천히 흔들리고 있다. 잠시 바라보는 것만으로 들뜬 마음이 차분해진다.






여기 요리 내공이 상당하겠는데.. 깔끔하면서 오밀조밀한, 디테일이 살아 있는 실내 장식만 살펴도 수준급의 음식 솜씨가 절로 떠오를 지경이다. 아니나 다를까. 대표 메뉴인 '레몬 탕수육'을 필두로, 여름 한정 메뉴인 '중국 냉면'과 '짜장면'이 속속 테이블에 놓였다. 만강홍의 탕수육은 당연히 부먹이다!라는 소신을 굽히지 않는 첫 등장이다. 처음부터 진득한 갈색 소스가 듬뿍 부어져서 나오는 게 아닌가. 다행히 우리 가족들은 일관된 부먹파라 별 상관은 없지만.. 주방장의 굳은 소신에 따르고 싶지 않은 찍먹파는 주문할 때 자신의 취향을 피력할 필요가 있다. 저희는 탕수육 소스를 따로 담아 주세요! 주방까지 들리도록 큰 목소리로, 찍먹 의사를 전달한다면.. 어쩌면 달궈진 웍을 손에 쥔 그는 고집을 꺾을지도 모르겠다.

잡다한 생각을 떨치고 이제 맛을 보자. 열기가 식지 않은 고기 튀김을 깨물자 질기지 않으면서 두께감 있는 식감이 입안을 채운다. 튀김옷은 얄팍하고 센 불에 단시간 튀겨내서인지 느끼함이 일절 없더라. 새콤달콤한 소스는 묽지 않고 걸쭉한 농도인지라 튀김의 안쪽까지 고루 배어들어 그 맛이 겉돌지 않았다. 기본으로 뿌려진 소스가 맛이 강한 편이라 따로 스텐 종지에 담아주는 초간장 & 고춧가루를 섞은 소스는 살짝만 묻히길 권하고 싶다. 멋 모르고 별첨 소스를 잔뜩 묻혔다간 과하게 짜고 매운맛에 입맛을 버릴지도 모른다.

대신에 메뉴 위에 고명처럼 얹은, 레몬 슬라이스를 곁들여 함께 맛보길 추천하는 바이다. 이 집의 탕수육을 타 식당과 차별화시킨 포인트는 바로 살짝 튀겨낸 레몬 조각에 있다. 혀를 자극하는 강한 신맛이 기름과 함께 빠지고 튀김 안으로 스며들어서인지, 적절한 새콤함이 튀김 특유의 느글거림을 확, 잡아 주었다. 두툼한 고기 튀김에 부먹 소스를 골고루 묻혀 레몬 슬라이스로 살포시 감싸 먹는 그 맛은.. 굳이 표현하자면 죽기 전에 떠오를, 평생 일미 중에 하나로 꼽고 싶을 정도로 인상적인 미식 경험이었다. 살짝 아쉽게도 레몬 슬라이스는 서넛밖에 올려져 있지 않아 좀 더 제공되었으면 만족도가 보다 높지 않을까 하는, 소소한 희망 사항을 귀띔해 주고 싶다.


만강홍의 대표 메뉴, 레몬 탕수육의 영롱한 자태


솔과 연은 탕수육에 홀릭한 나머지 젓가락질을 멈추지 않았다. 난 아쉽지만 남은 탕수육을 아이들에게 양보하고 중국 냉면을 맛보았다. 살얼음을 잔뜩 올린 국물이 너무나 시원해 보인다. 한 술 떠서 들이켜니 콩국물의 진하고 고소한 맛에 땅콩 소스가 가미되어 그 맛을 한층 더했다. 다른 중국집처럼 겨자액을 뿌리지 않아 코 끝을 치는 쨍하고 매운맛이 뒤에 따라오지 않는다. 어린아이들도 달달하면서 시원 고소한 콩국수가 취향에 맞는다면 능히 즐길 만한, 자극적이지 않은 맛이다. 진한 국물과 고명 아래 잠긴 국수를 한 젓갈 들어 올려 후루룩, 삼키니 쫄깃하면서 과하게 질기지 않은 면 식감이 제대로다. 중간중간 씹히는 해파리 냉채의 오도독한 식감은 보너스다. 냉새우와 오이채, 목이버섯을 함께 올려 먹으면 한여름 불볕더위는 어느새 창 밖으로 멀리 물러난다.

짜장면은 달짝지근한 유니 짜장 스타일이라 아이들이 좋아할 만하다. 면발의 두께가 고르지 않은 것으로 보아 수타로 빚은 듯한데, 주방 안에서 쿵더쿵, 반죽을 치대고 힘쓰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 확실치는 않다. 얼마 지나지 않아 면은 다 해치우고 짜장 소스만 남았는데, 밥 반 공기 정도 덜어 쓱싹 비벼 먹으면 근사한 짜장밥이 될 듯싶다. 밥 한 공기를 추가 주문하는 건 과한 것 같아, 아쉬운 마음에 건더기를 한 술 떠서 맛을 보니 잘게 간 고기가 더듬더듬 씹힌다. 차가우면서 고소한 냉면을 맛보다가 따뜻하고 자극적인 맛이 당길 때마다, 짜장 건더기를 덜어 먹으면 입맛의 균형이 얼추 맞겠다 싶다.


무더위를 물리는 시원 고소한 중국 냉면



얼마 후 우리 가족은 탁자 위에 놓인 빈 그릇을 바라보며 부른 배를 두드리다가 식당을 나섰다. 동해시를 다시 찾는다면 '만강홍'은 언제든 허기를 면하기 위한, 차량 네비의 즐겨 찾는 목적지가 되지 않을까 싶다. 다음에는 이 식당을 찾는 단골들이 원픽으로 추천하는, 매콤 칼칼하면서 불 맛 가득한 '볶음짬뽕'을 시켜볼까 한다.


중국 송나라의 충신이자 명장으로 이름난 '악비'를 기리는 그 시처럼, 빛나는 붉음을 잃지 않고 거세게 흐르는, 혈기 넘치는 무릉천을 닮아.. 대를 이어 오래도록 변치 않는 요리 솜씨와 맛을 자랑하는 동해시의 명소로 남았으면 한다.









* <만강홍 满江红> 예고편_장예모 감독, 2023>>

https://youtu.be/5bMiCGgTIKw?si=sKxn0To4AO408To7

식당과는 아무 관련이 없지만.. '악비'의 일화를 소재로 한 장예모 감독의 동명 연출작 예고편이 눈에 띄어 공유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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