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의 악령은 그를 선택했다

넷플릭스 <데블스 플랜>을 보고..

by 라미루이

* 아래 글은 넷플릭스 <데블스 플랜>의 스포가 담겨 있으니 주의 바랍니다!










더 지니어스, 소사이어티 게임, 대탈출 등 정종연 PD가 기획/연출한 브레인 서바이벌 게임을 챙겨 보는 편이다. 출연자들의 지력과 체력, 사회성과 설득력, 인내심에 표정 관리, 심지어 운까지 저울에 올리는 심리전을 포함한 다양한 게임과 퍼즐들이 호기심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그가 김태호 PD의 TEO 사단에 합류한 이후 제작한 첫 작품, <데블스 플랜>을 흥미롭게 감상했다.


넷플릭스에서 지원한 작품답게 출연자들이 묵는 숙소와 서바이벌을 진행하는 스튜디오, 페널티로 설정되는 감옥 등은 과시적인 스케일이 돋보이고, 시각적 효과 또한 화려하다. 12명의 출연자 면면도 각양각색이다. 낯익은 아이돌 가수/배우/아나운서에 곽튜브, 궤도와 같은 프로 유튜버, 해외에서 개업한 변호사/의사와 같은 전문직도 얼굴을 내밀었다. 왕년의 프로 게이머로 친숙한 기욤 패트리는 중년의 사업가로 변신해 출연했다. 반면에 낯선 프로 바둑기사에 일반 대학생도 눈에 띈다.


이들은 최후의 1인이 상금을 거머쥘 때까지 7일간 숙식을 함께 하며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각축전을 벌였다. 피 튀기는 경쟁도 하고, 때로는 동맹을 맺어 협력도 하면서 최대한 오래 생존하기 위해 노력했다. 초반에 우위를 점한 '궤도'가 약자들까지 포용하고 싶다는 의견을 내비치면서 상금이 걸린 서바이벌 게임의 룰과 의도를 거스르는 게 아니냐는 평이 분분했다. 공정하고 치열한 게임을 통해 패자는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그러기에 약자를 감싸줄 수 없다는 몇몇 플레이어와는 마찰을 빚기도 했다. 하지만 궤도의 공리주의 게임 철학은 얼마 안 가 벽에 부딪혔고, 결국 그도 냉철한 판단을 통해 서바이벌 게임에 적응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개인적으로 이런 두뇌 서바이벌은 초반부터 온갖 편 가르기, 정치질에 속임수, 통수 치기가 난무해야 흡인력이 있고, 시청률이 나온다고 보는 편이다. 그런 면에서 <데블스 플랜>은 참가자들 간의 우애가 너무 끈끈한 탓에, 경우의 수를 고려한 협력/공생 플레이가 과도하여 초반 재미가 심심하고 텐션이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세세한 사전 각본 없이 예측 불가한 게임을 시시각각 펼쳐야 하고, 대다수 출연자들의 성향에 따라 게임 흐름이 바뀌는 프로그램 성격상, 느슨한 초반 플레이에 대해 연출자가 적극 개입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시리즈 중반 이후 몇몇 플레이어들이 노골적인 야심을 드러내면서 <데블스 플랜>은 점점 긴장도를 높인다. 피스에 숨겨진 언어 조합을 푼 '하석진'과 이시원이 그 비밀을 공유하면서 게임은 누군가의 불가피한 희생을 필요로 한다. 스테이지 안팎의 누군가가 승부를 조작하고, 게임 결과에 영향을 끼친 것이 아니다. 저 우주 어딘가에서 게임의 모든 것을 관장하는 '악령'이 그들을 낭떠러지 끝으로 몰아세운 것이다. 승부의 끝은 운명적이고 필연적이었다. 사악하기 그지없는 악마가 치밀하게 계획한, 보이지 않는 각본에 따라 출연자 모두를 총지휘하고 꼭두각시처럼 조종했을 뿐이다. 이렇게 밖에 표현할 수가 없다.

이 모든 비밀을 간파한 시청자는 일부러 감옥에 갇힌 하석진의 몇 수 앞을 내다본 발 빠른 결단에 박수를 칠 수밖에 없다. 이시원을 비롯한 다른 출연자가 어안이 벙벙한 채, 그의 의도를 궁금해하는 것에 일종의 쾌감을 느끼면서 말이다. 그날 밤, 어두컴컴한 감옥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은 자진하여 지하에 떨어진 그가 어떻게 기사회생하여 지상으로 금의환향하는지를 보여준다.



이후 그의 게임 플레이는 타고난 지력에 승부 근성, 초인적인 절제심에 지구력까지 더해졌을 때, 어떤 활약을 보이는지를 여실히 증명한다. 그의 승승장구를 견제하고 왕좌 밑으로 끌어내려야 할 '궤도'는 다소 지쳤는지, 승부처에서 연이은 실수를 저질러 자멸했다. 살아남은 플레이어들은 극도의 압박감과 스트레스를 받는 가운데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편히 보는 우리도 깊은 한숨이 터지고 끝까지 지켜보기가 어렵더라. 허나 그는 홀로 빛을 발했다. '군계일학'은 파이널에 올라온 그와 어울리는 말이었다. 매 게임마다 해법을 일찍 간파하여 상대의 맥을 끊은 그는 시종일관 앞서며 거액의 상금을 차지했다. 그는 압도적인 실력 차이로 우승했다. 하지만 막판 암흑의 지하로 전락했다가 기적적으로 회생한다는, 반전/부활 서사까지 뒷받침했기에 더욱 빛나는 피날레였다. 어딘가 존재하는 악령 또한 그를 최후의 1인으로 우뚝 서는, 필연적 운명으로 이끌었으리라.



만약 <데블스 플랜> 시즌 2가 제작된다면 전 시즌 우승자에게 도전장을 내미는 형태의 서바이벌 게임으로 제작된다면 보다 흥미진진할 것이다. 이와 함께 장동민, 홍진호 등과 같은 두뇌 서바이벌에 특화된 전문 플레이어와 참신한 뉴 페이스들이 어울린다면 멋진 그림이 나올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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