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TSD 돋는 밤

넷플릭스 <D.P.> 시즌 2를 보고..

by 라미루이






새벽 4시쯤, 옆구리가 배기고 불편했는지 잠에서 깨어나 거실로 나왔다

짙은 어둠에 잠긴 문 열린 화장실, 그 안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애써 눈길을 피하거나 서둘러 방으로 자리를 옮기거나

불을 밝혀 어둠을 내몰지 않았다 담력이 약했던 예전 같았으면 그랬을 텐데..

어쭈구리, 해묵은 쓸개를 떼어내니 겁대가리를 상실하는구나

썩은 장기를 잃음으로써 암흑 악귀 미지의 존재에 대한 항마력이 업그레이드 됐나?

다음 날, 우쭐한 마음에 최근 종영한 <악귀>를 1편부터 정주행 하기로 했다

섬뜩한 장면이 나와도 시선 돌리지 않고, 빨리 재생/스킵하지 않고 표정 변화 없이 끝까지 봐주마

벼르고 별렀지만 넷플릭스에는 <악귀>를 찾으래야 찾을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알고리즘이 추천한 <D.P.> 시즌 2를 완주하는데

매 에피소드를 여는 입대 첫날, 보충대 영상부터 간담이 서늘해졌다

시즌 1을 봤음에도 저 오프닝은 여전히 암울했고 끝까지 지켜보기 힘겨웠다

뜬구름 잡는 저 세상 잡귀들보다 같은 공간에 동고동락하면서 기묘한 표정의 가면을 쓴

옆자리 맞은편에 앉은 저들이 제일 두렵고 공포스러웠다 물론 그들 또한 날 그렇게 바라보았으리라

우리는 서로를 피할 길이 없었고 시시각각 바뀌는 서로의 속마음을 알 수 없는 데다

각자의 다음 행동마저 예측할 수 없었다 저마다 손에 쥔 폭탄이 언제 터질지 몰라 전전긍긍하고

허둥대는 모습이 역력했다 한창 청춘의 26개월을 소진한 그 시절은 전역한 지 20여 년이 지나서도

예비군에 민방위까지 마쳤음에도, 여전히 PTSD를 불러오는

악귀보다 더한 끈질기고 사악한 존재라는 것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혹시나 꿈결에 철원 6사단 훈련소 내무반과 연병장, 강원도 어느 경찰서와 검문소의 삭막한 내부 시설 등이

고스란히 재현될까 봐 마음을 졸였다 후덥 지끈한 열대야에 뒤척였지만 오래지 않아 잠들었고

새벽녘 어렴풋한 꿈길로 갈래갈래 들어섰지만 맥락이 닿지 않는

헛꿈인지라 돌아오기 수월했다 문득

어릴 적 돌아가신 아버지가 잠결에 뒤척이다가 어억,

사자후를 토하면서 깨어난 그날 밤이 떠올랐다

온 가족이 깨어나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그는 어찌나 험한 꿈길을 헤매었는지 진땀이 범벅이었다

그때 어머니가 무슨 숭악한 꿈을 꾸었길래 그리 벌벌 떠느냐 물었더니

그는 다시 군대에 끌려가 성질 고약한 고참에게 무참히 짓밟히는 꿈을 꾸었다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후로 다시 잠에 들지 못한 아버지는 밖으로 나와 어둑한 마당을

뺑뺑이 돌듯, 끝없이 돌아 걸으면서 긴 밤을 지새웠다

우리 가족들이 잠들었던 방 안까지 울리던 저벅저벅

절뚝이는 군홧발 소리 아직도

귓가를 후빈다



PTSD 돋는 그 밤

아득한 꿈길에 가시 박힌 채

서성거린다 언제쯤 동녘을 밝혀

안개가 걷히고 어둠이 뽑힐는지

갈길이 멀기만 하다




* D.P. 2 | 공식 예고편>>

https://youtu.be/WXLfyrmKQU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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