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하게 '물생활'을 시작했어요. 원래 옐로 구피 한 쌍을 길렀는데, 한 마리가 적응을 못하고 이틀 만에 용궁으로 떠나버렸지요. 비극을 겪은 첫째 솔이 어항을 비우면서 눈물을 흘리던 때가 기억나요. 오늘 롯데마트 청량리점에 들렀다가 아쿠아 매장에 진열된 여러 구피들을 보고 아이들이 호기심을 보이더군요. 레드 턱시도 구피, 블루 그라스 구피, 블랙 구피, 드래곤 구피 등등. 이름도 기억하기 어려운 다종다양한 구피들이 각각의 어항에 떼 지어 모여 있어요. 여기 사장님이 구피는 웬만한 수질에 적응 가능하고 튼튼한 데다, 번식력이 강해 물생활 입문용으로 추천한다고 해요.
집에 정착해 있던 터줏대감, 엘로우 구피. 원래 한 쌍이었는데 솔이 기르던 구피가 이틀 만에 세상을 하직했다.
맑은 물에서 헤엄치는 화려한 구피들이 서로 자기를 입양해 달라고 다가와 입을 뻐끔대고, 지느러미를 흐늘거려요. 마음 같아서는 종류 별로 한 마리씩 사서 집으로 데려오고 싶지만, 귀한 녀석들을 용궁으로 떠나보낼 수는 없기에 소소하게 시작하기로 해요. 사장님이 처음 입문 용으로 '드래곤 구피'를 추천하네요. 은빛 몸통에 주홍 지느러미 가득 퍼진 검은 점들이 매력적입니다. 활달해서 아이들이 좋아하고, 가격도 저렴한 편이라 부담이 없어요. 기존에 구비한 플라스틱 어항이 너무 비좁아서, 더 널찍한 어항과 바닥재, 인공 수초까지 마련했습니다. 물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 여과기에 히터, 조명, 청소 도구 등을 질러야 한다지만, 우리는 그런 덕질 수준까지는 빠지지 않기로 해요.
집으로 돌아오는 차 뒷좌석에서 솔과 연은 드래곤 구피 한 쌍이 담긴, 빵빵한 비닐봉지를 소중히 품에 안고 있어요. 혹시나 덜컹대는 차 안에서 스트레스를 견디다 못해, 꼴까닥 비명횡사할까 봐 아빠! 운전 조심히, 천천히 해요! 하고 잔소리를 거듭하네요. 노심초사에 전전긍긍하며 구피들을 감싸고 지킨 아이들 덕분에 집에 무사히 도착했어요. 조심조심 비닐 꽁지를 묶은 매듭을 풀어 새로운 어항에 물 채로 쏟아요. 구피들이 이제야 풀려났다며, 여기가 새로운 보금자리인가 보다 하고 이곳저곳 두리번거려요. 내친김에 먼저 입주해 있던 옐로우 구피 한 마리도 더 넓은 터전으로 옮겨 주었답니다. 친구라곤 딱딱한 껍질 속에 움츠러들어, 주위 청소만 하던 과묵한 우렁이들 뿐이었는데, 새로운 동종 친구들이 생겼으니 얼마나 반가울지 상상이 가질 않아요. 만나자마자 서로를 탐색하고, 꼬리지느러미를 물고 쫓으며 통성명하기 바쁘네요. 앞으로 쓸데없이 싸우지 말고 친하게 지내길 바라 마지않아요. 괜히 힘자랑하고 텃세 부리고, 친구를 상처 입히는 녀석은 좁아터진 독방에 격리 조치하겠다고 미리 엄포를 놓았어요.
쬐그만 우렁 미니미들이 엄마, 아빠 곁에 머물러 있다.
기존에 자리를 지키던 우렁이들은 이제 '10마리'로 늘어났어요. 이제 2리터 페트병 외벽에 달라붙은 자그마한 우렁 새끼들을 찾아볼 수 있어요. 물을 자주 갈아주고 상추가 아닌 다른 가루밥에도 적응하면서 가족들이 불어났네요. 이 친구들은 무던한 성격에 건강 체질이라 수돗물을 바로 갈아주어도 비실대지 않고, 수질에 적응하는 애들이랍니다. 우리나라 수돗물이 그만큼 깨끗해서 그런지 모르겠어요. 나중에 구피들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면 우렁이 두세 마리를 넣어줄까 해요. 우렁이는 타고난 청소부라 어항 벽에 낀 이끼라든지 불순물을 깨끗이 닦아주거든요. 물생활을 편히 하려면 우렁이들을 잘 대접해 줘야, 반짝거리는 투명한 어항을 유지할 수 있답니다.
유유히 헤엄치는 구피들을 바라보다.
알록달록한 열대어들이 헤엄치는 어항이 거실 한구석에 자리 잡으니, 집이 한결 따뜻하고 밝아 보이고, 활기가 도는 거 같아요. 모두의 마음이 청량해지는 듯해요.
사실 아이들은 냥이를 기르고 싶어 했지만, 아내가 너무나 냥이를 꺼려하고 무서워하니 들일 수가 있어야지요. 솔과 연이 많이 실망하고 낙담했지만, 새로운 구피 친구들이 들어오면서 표정이 꽤나 밝아진 거 같아요. 이제는 구피들도, 우렁이들도 우애 좋게 어울려 지내면서 어여쁜 아이들을 많이 많이 늘려주었으면 해요. 이러다 어항이 미어터질 정도로 쪼그만 '미니미'들이 바글대면 어찌할까 싶지만, 그건 그때 가서 걱정하기로 해요. 이상 시작은 미미하지만, 끝은 창대하길 바라는 라미루이의 물생활 입문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