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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게으른 편이라 종종 시를 써요
여긴 꿈 아니면 생시?
by
라미루이
Oct 30.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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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75세 생신날 전야,
잠 못 이루는 늦새벽 꿈에 누군가 나타났다
내 늑골 밟아 누르는 가시 돋친 천장을
밥상머리 삼아 거한 상 차려 눈칫밥 먹는데
맞은편에 앉은 그가 어둑히 바라본다
자세히 뜯어보지 않아도, 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돌아가신 내 아버지.. 이 얼마만인가
독대하고 겸상하여 밥을 먹는 것이
어렴풋이
그는 얼굴에 두 눈만 남았다
입이 막혔는데도 자꾸만 숟갈을 들어 그쪽으로 가져갔다
허공에 뜬 제삿상은 그야말로 난장판에 아사리가 났
지
미친
쌍놈이 아주 지랄을 떨어요
껑충 공중제비를 돌고 물구나무까지 서려
주춤거리고 고개를 뒤로 꺾더구나
난 가까스로 나대는 상다리를 주저앉히고는
아들 된 입장에서 짠한 마음으로
새로 담근 이 겉절이 김치 좀 맛보세요
배추결대로 쭈욱 찢어 그에게 건네는 순간
참다못한 피울음이 터져 버렸다
저거 보소, 독한 건지 무정한 건지
아비 얼굴 빼닮은 상주가 기어코 눈물을 안 보이네 그려
2005년 가을, 외진 독방에 갇힌 그날처럼
억지웃음까지 방긋 떠올리려 했지만
그게 말이지.. 깜박이다 끊어진 불투명 전구처럼
쉬이 재현이 안되더구나
난 옆에 앉은 외조모인지 친조모인지 모를
허연 혼령에게 젖은 머리 기대어 눈물을 쏟고
검은 자개상 위에 놓인 미역국 한 사발
짜디짠 소금국으로 철철 넘쳐흐르고
마주 앉은 부친은 묵묵부답, 막힌 입구녕을
외젓가랑으로 어거지 뚫으려 하고
이러다 영영 못 헤어나겠네 체념하는데
얘야, 네 얼굴빛이 영 맑지가 못하구나
쩌렁한 일성에 소스라치며 깨어났다
요즘 안구건조로 새벽이면 말라붙은 벌건 눈깔 너머로
하마터면 열 오른 눈물 들끓어 오를 뻔했다
여긴 바스러지는 꿈인가 아니면 교묘한 생시인가
도무지 구분할 수 없는 매끈히 이어진 자리
내가 누워 있더라
멀
뚝한 사내가
꿈에서도 서글피 엉엉 처울고
겨우 깨어난 리얼 현실에서도 꺼이꺼이
흐느끼면 그게 무슨 주접떠는 눈물 낭비더냐
터진 울음은 하룻밤 한 번이면 족하니
옆에 누운 헝클어진 아내 뒤척이며 벅벅, 어금니 갈길래
허물어진 그녀 머리맡 대충 고쳐주고는
나도 그 옆에 나란히 누워
새우잠을 청했다
창밖이 어느새 희끄무레하다
* Dominic Miller – Water (from the album Silent Light) | ECM Records
https://youtu.be/OAt6bYH5Bj0?si=IQ9NTzkW9CM91TP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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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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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미루이
여행 분야 크리에이터
지금 이 순간에 마음을 두려 하는 딸둘아빠입니다. 무심히 흘러가는 일상에서 보석처럼 빛나는 글감을 건지려 촉을 세웁니다. 상상을 버무려 잠시나마 현실을 잊는 글을 쓰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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