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과 연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다. 새로 마련한 어항을 들여다보니, 몸집이 큰 드래곤 구피 한 마리가 인공 수초 잎자락에 기대어 숨을 헐떡이고 있다. 하필이면 유일한 암컷이 상태가 안 좋을 줄이야.. 곁을 떠나지 않고 헤엄치는 드래곤 구피 수컷의 눈빛이 안쓰럽다.
맥이 빠진 구피는 안간힘을 쓰며 헤엄을 치려 한다. 수면 위로 떠오르려 하지만 꼬리지느러미가 자꾸만 아래로 가라앉는다. 어뢰에 맞아 반파된 잠수함처럼 천천히 가라앉으며 옆으로 기울어진다. 눈자위가 거뭇해지고, 여닫히는 아가미의 속도가 점점 느려진다. 뭐가 잘못된 걸까? 식성이 좋은 듯해 먹이를 자주 준 것이 탈이 난 것일까. 기껏해야 하루에 세 번, 한 꼬집 살짝 뿌려준 것이 전부인데.. 성질이 예민한 암컷이라 새로운 환경 적응에 실패한 걸까. 상대적으로 왜소한 덩치의 수컷은 쉴 새 없이 돌아다니며 왕성한 호기심을 보이고 있다. 혹시 일요일에 들렀던 아쿠아 매장 사장님이 일부러 허약하고 노쇠한 구피를 골라 준 것이 아닐까? 설마설마.. 플라스틱 어항에 바닥재, 인공 수초까지 세트로 구매했건만, 왠지 속은 듯한 느낌, 장삿속에 사기를 당한 듯한 기분에 마음이 어지럽고 심란해졌다.
아이들의 표정이 급 어두워졌다. 일전에도 옐로 구피 한 쌍을 들였다가, 암컷이 이틀도 못 견디고 용궁 다리를 건넌 기억이 있기에.. 연이어 죽음을 맞닥뜨리기에는 그 심적 충격이 만만치 않으리라. 이틀 전에 합사한 옐로 구피는 새로운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자꾸 꽁무니를 쫓고 괴롭히길래 원래 머물던 어항으로 격리시켰다. 그 녀석은 바로 옆 어항에서 벌어지는 비극을 모른 체할 수는 없었는지, 투명한 벽에 바싹 붙어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구피에게 다가온 죽음은 일말의 자비도 없이, 재빠르게 그녀의 유선형 몸체를 장악했다. 수초의 이파리에 기대었다가 점차 아래로 몸을 떨구며 바닥으로 하강하는 드래곤 구피. 얼마 지나지 않아 바닥재 자갈 더미에 누워 아가미만 가끔 벌리며 숨을 이어가고 있다. 화사한 몸체의 색과 무늬는 빛을 잃어간다. 잠시 후 그녀의 숨은 멈추었다. 제발 극한의 고통이 엄습해 그녀를 아프게 하지 않았기를.. 솔과 연은 고개를 떨구었고, 난 용궁으로 떠난 그녀를 건져 정중히 장례를 치러 주었다. 홀로 남은 드래곤 구피 수컷은 맹렬히 지느러미를 흔들며 슬픔을 달래고, 단짝 친구의 비극적인 죽음을 기리는 것처럼 보였다. 녀석은 잠시도 움직임을 멈추지 않고 생에 대한 의지를 불태웠다. 부디 녀석은 우리 집에 들어온 이상 오래도록 생존하게 해 달라고, 해양의 신 포세이돈이 보살피길 빌고 또 빌었다.
서로 다른 어항에서 외로이 헤엄치는 엘로우 구피 수컷과 드래곤 구피 수컷은 벽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마주 보고 있다. 이틀 전만 해도 활기차게 어항을 질주하던 암컷 친구에게 닥친 비극은, 장난기 넘치던 그들마저 낙담하고, 망연자실하게 만들었다. 솔과 연은 내게 묻는다. "아빠, 벌써 두 번째예요. 우리 집에만 오면 이렇게 귀여운 녀석들이 일주일도 못 버티고 죽어 나가는 것이.." 난 말문이 막혔다. 불과 오전만 해도 찬란하게 빛나는 지느러미를 휘날리며 생기를 발산하던 구피였는데, 이리도 순식간에 그 빛을 잃으며 마지막 호흡을 뱉고 말다니.. 삶과 죽음의 경계가 실오라기처럼 가는 데다, 분명치 않은 예측불허라는 사실에 난 잠시 치를 떨었다. 부쩍 한산하고 고요해진 어항 안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아빠도 마음이 아프구나. 너희들 말대로 우리 집에 마가 꼈거나 저주가 내린 건 아니야. 누구를 탓할 수 없고, 어느 누구의 잘못도 아니란다. 혹시라도 그리 생각한다면 그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 모름지기 생명을 지닌 모든 것들은 반드시 언젠가 죽음을 맞이하게 돼. 옆에서 꾸물대며 상추를 갉아먹는 저 우렁이들도 마찬가지고, 살아남은 이 구피 녀석들도 언젠가는 숨이 멈추는 때가 올 거야. 아빠도 지금까지 여러 번의 죽음을 목격했지만.. 이런 조그만 녀석들의 마지막 또한 여전히 안쓰럽고 짠하고.. 무심히 넘기기는 어렵구나."
아빠 또한 마찬가지..라는 말은 차마 담지 못했다. 엄연한 사실이지만, 밖으로 내뱉으면 현실이 될까 봐 두려웠으니까.. 난 아이들에게 담담히 말했지만, 어린 내 곁에 머무르다 떠나간 몇몇 강아지들, 십자새들.. 그리고 영영 이별한 아버지를 비롯한 모든 망자들을 떠올리며, 때때로 슬퍼하고 괴로워하는 나 자신에게 건네는 위로의 말이기도 했다. 솔과 연은 그렇게 또 하나의 죽음을 받아들였다. 나 또한 그럴 것이다. 끝내 살아남은 구피들은 잠시의 슬픔과 외로움을 견디면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우울함과 침묵이 고인 어항은 다시 활기를 찾고, 영롱한 빛을 뿜는 지느러미들로 가득 차게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