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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미루이 Dec 03. 2023

닮은꼴 차창, 스티커의 흔적들, 환상..







어느 지하 주차장..

구석에서 두런대는 소음이 들리길래

귀를 쫑긋 세우고 눈을 번쩍 뜨고 가까이 다가갔다

주차된 빈 차의 뒤 창문, 다닥다닥 붙여진 이런저런

애니 캐릭터에 다람쥐 바나나, 별 하트 등 반딱이 스티커들..

너덜하게 벗겨진 저건 설마 대일 밴드일까?

그들이 한데 어울려 유리창 위에서 춤을 추고, 흩어졌다 모이는가 하면

심지어 한바탕 수다까지 떨고 있다

살며시 누군가 발소리 죽여 다가온 줄도 모르고

그들은 올겨울 추위는 예년보다 더 혹독할 거라네

우리가 정착한 이 똥차, 덜덜거리는 진동은 시골 경운기 뺨친다

이 집 아이 카시트에 앉아 멀리 실려가기만 하면 우웩, 헛구역질에 멀미 도지는데

난데없이 우리 안면에 뜨근한 토악질 쏟지는 않겠지 

온갖 하소연 늘어놓는데 찰칵!

바로 앞에서 들리는 셔터 음에 이 녀석들,

부산한 몸놀림 멈추어 삽시에 얼음장처럼 싸늘해지더라

 


- 아빠, 뭐해? 남의 차 유리창은 왜 몰래 찍고 그래?

- 그거 나쁜 사람이 찍는 몰카 아니야?

난 엉거주춤 차로 돌아와 후석에 앉은 솔과 연에게 말했다

- 우리 차랑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어서, 반가운 마음에 사진 한 장 남겼어

솔과 연이 앉은 차창 안쪽은 온갖 다양한 스티커로 도배되어 있다

가끔 지나가던 차가 서행하며 눈여겨볼 만큼 요란스럽게..

언제 한 번 날 잡아서 WD40 윤활 스프레이 뿌려 깔끔히 지워볼까

결심도 했지만 이내 마음을 접었다

이것도 겹겹이 쌓인 아이들 추억이고, 과거를 기록한 소중한 흔적이다

억지로 지우고 뜯어내 함부로 훼손하고 변형해서는 안 되는 것

난 우둘투둘 차창에 눌어붙은 여러 스티커 자욱을 어루만

아이들과 함께 한 시간들이 낱낱이 흩어져 한데 결집한,

모래밭에 비스듬히 꽂힌 옥색 호리병 안에 퇴적된

기묘한 건축물의 실루엣을 더듬을 수 있었다



어슴푸레한 그 형체가 초점에 맺힌다

황량한 모래사막 가운데 우뚝 세워진

미지의 탑과 교각, 성한 사원의 모습이..

탐스카멜리아 가득 피어난 중정에서

뛰노는 아이들과 내 모습이 어둑한 유리창

너머 어른거린다

난 그들의 동선과 그림자를 좇다가 차가운

유리창에 손바닥을 마주 대었다

소란스레 장난을 치고 정신없이 재잘대던

스티커들이 일순

숨을 멈추었다

고 녀석들 남몰래 벌이는 요상한 홀레

밉지 않고 귀엽기만 하다




우리 차와 닮은 구석이 많아, 반가운 마음에 찰칵! 사진으로 남겼습니다. 덕분에 모티브를 받아 짧은 글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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